신희섭의 정치학-새로 시작하는 이들을 위한 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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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새로 시작하는 이들을 위한 충언
  • 신희섭
  • 승인 2016.03.1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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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3월이지만 며칠 꽃샘 추위다. 겨울을 보내는 것이 아쉬운가 보다.

자연도 이리 새로운 계절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이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이 쉽겠는가? 출발은 낯설음과 걱정과 “잘 해보겠어”의 욕심과 “나는 달라”의 자기 확신과 너무 많은 환경변수들을 가지고 있다.

1주일 전에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언니와 함께 학교에 간다는 것에 굉장히 신이 나있다. 어린이 집이 아닌 학교에서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는 것,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것, 언니와 손을 잡고 학교에 같이 간다는 것, 그리고 언니가 했던 방과 후 수업을 같이 하게 되었다는 것, 이런 것들로 둘째는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는 부담을 이겨내게 만드는 것 같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면 새로 알게 된 친구와 마음이 맞지 않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오랜 기간 교사활동을 하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주의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갑자기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할 일들이 생길 수도 있다. 새로운 시작은 이처럼 변화무쌍하다.

나이가 점차 많아지면 무엇을 새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진다. 대학교진학준비, 대학입학, 대학대신 빠른 취업, 대학졸업이후의 취업, 취업이후에 진급, 빨라진 퇴직이후에 창업, 고되고 팍한 일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고단한 과정은 설렘보다는 걱정으로 다가온다. “새로 시작을 했는데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인생은 이 질문의 연속이다.

무엇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은 나이가 더 들어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준비를 많이 하고 국민을 위한 대표가 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세월 호와 같이 준비 못한 일들이 터져나오고, 미쳐 돌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반영해 달라고 요구한다. 누군가를 위해서는 이익이 될 것이 다른 이들에게 비수가 될 수도 있다. 2008년 미국산소고기 촛불집회처럼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일이 너무나도 큰 저항을 받을 수도 있다. 새로운 시작은 예측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건 대학에서건 3월은 새로운 출발을 하는 때이다. 수험가도 마찬가지다. 새로 출발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운’에 관한 ‘나’의 이야기이다.

과거에 외무고시를 준비했었다. 시험기간 동안 총 3번에 걸쳐서 2차를 볼 수 있었다. 8년이라는 긴 수험기간동안을 준비하여 2002년에 2번째 2차 시험을 보았고 2003년에는 마지막 2차 시험을 보았다. 2002년 시험은 다른 1차 합격자들과 마찬가지로 2차에만 매달려서 준비를 하였으니 제법 많은 시간을 들여서 시험을 보았다.

경제학 시험을 보기 전날이었다. 고시반 독서실에서 내일 나올 몇 가지 주제들을 뽑아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재정정책 모의고사를 답안지로 만들다 쓸 말이 별로 없어서 후배에게 책을 한 권 빌렸다. 이 책은 그전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책이었다. 그런데 너무 쉽게 설명이 잘 되어 있었다. 계속 잘 읽혀서 그날 저녁시간에 일독을 하였다. 그 책 내용 중에서 성장론에 관련된 모형에 눈에 띄어 집에 가는 버스에서 다시 한 번 그 모형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책에 나온 8개의 그림이 정확히 다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7개는 정확히 그릴 수 있었다.

다음 날 시험장에 가서 가슴을 졸이며 문제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 받아본 시험지에는 밤에 풀어 본 성장 모형이 그대로 출제되어 있었다. 그것도 50점 정도로 가장 큰 문제로. 게다가 2002년 시험에의 폭탄문제로. 대다수 수험생들이 이 문제에 피폭을 당했다. 하늘이 도와 전날 그 문제를 풀어보았으니 그해 경제학 점수는 63점으로 주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시험은 낙방. 믿었던 과목들의 배신.

심기일전하여 2003년에 다시 2차를 보았다. 그 해 시험은 1차 시험에서 우여곡절이 있었다. 1차 시험장에서 답안지에 기록을 늦게 하여 감독관이 요구하는 시간을 넘긴 것이다. 화가 난 감독관은 내 답안지를 거두지 않고 나가 버렸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지옥을 경험하면서 감독관실로 찾아갔다. 화가 난 감독관을 30분 넘게 사정사정하여 가까스로 1교시 답안지를 냈다. 그때 난 살아서 천국을 만났다.

1차 합격이후에 2차 시험을 보았다. 나이 제한으로 더 이상 시험을 볼 수 없었지만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2차 시험을 치렀다. 시험을 치루고 난 뒤 느낌이 좋았다. 2차 합격자 발표가 났다. 이번에도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점수를 확인해 보니 경제학이 29점으로 과락이란다. 몇 해를 본 시험에서 처음 과락을 맞았다. 내 평균 점수는 합격평균점수보다 2점 높았다. 경제학이 29점인데 합격점수보다 높았으니 다른 과목들은 꽤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하필 이때 과락을 맞았을까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경제학을 40점으로 면과락만 했어도 평균보다 높은 점수로 합격을 했을 것이고 2002년 시험처럼 63점을 획득했으면 그 해 시험에 차석정도는 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시험이 끝나고 나서 결과를 받아보면서도 나는 “그럼 그렇지”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경제학점수가 항상 내점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험기간 내내 경제학은 내 과목이 아니었다. 겉돌며 공부를 했고 누가 경제학에 대해 질문하면 머뭇머뭇했다. 이런 과목에서 과락을 맞은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29점이나 받은 것을 너무나 편하게 수긍하게 되었다.

그해를 끝으로 접게 된 시험은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 공부를 하거나 무엇을 하건 ‘운’에 맡기기는 공부나 준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때는 운이 좋아서 고득점을 하고 어떤 때는 운이 따르지 않아서 과락을 하는 것은 내가 경제학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험의 난이도에 따라 혹은 그 전날 본 것에 따라 성적을 받은 것이다. 만약 2002년 시험전날 그 책을 보지 않았다면 2002년 시험에서 경제학 과락을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2003년 경제학은 어땠을까?

경제학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결론은 이렇다. 내 인생을 만들겠다고 준비한 시험에 내 인생은 그저 ‘운’에 저당을 잡힌 채 8년을 공부한 것이다. 그러니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운’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정치학을 더 공부하면서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들었을 때 그에게서 내 인생을 뒤 돌아 보게 되었다. 마키아벨리는 '운명의 여신(Fortuna)'인 운이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잘 준비되고 훈련된 강력한 지도력인 '미덕(Virtu)'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약자인 분열된 이태리를 통일로 만들기 위해서는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것. 그래서 운이라는 그 확률마저도 극복해 낼 수 있는 것. 그래야 운에 지배당하지 않고 운을 지배해 갈 수 있는 것.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을 ‘지배’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시험이 되었던, 정치입문이 되었던, 새로운 창업이 되었던 새로운 출발을 하는 이들에 대해 드리는 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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