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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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22)
  • 박준연
  • 승인 2016.03.04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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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로펌과 긍정의 힘

오늘은 회사에서 실시한 긍정적인 심리와 관련된 트레이닝에 다녀왔다. 행사 안내에는 최적의 심리(optimal mind)라고 되어있지만 자료 책자에는 긍정의 심리(positive mind)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긍정의 힘이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데 그때마다 좀 복잡한 기분이 된다. 긍정적인 마인드에 기반한 노력은 물론 중요하지만 거기에 너무 천착하면 보다 근본적인 제도나 시스템의 문제를 가리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최근 읽기 시작한 책이 “부정적 심리의 긍정적 측면(The Upside of Your Dark Side)”이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고 있다. 중간에 변호사 직업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사람들이 과연 행복하고 자세한 내용쯤은 관대하게 넘어가는 변호사를 원할까?” 대략 이런 얘기였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최근에는 변호사 생활이나 업무 관련 블로그에서도 많이 접하는 긍정적인 심리나 명상, 배려(mindfulness)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비판하려면 일단 찬찬히 내용을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번 트레이닝은 회사에서도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는 이야기도 듣고 보니 한번 가보고 싶었다. 

트레이닝은 영국 출신의 의학 및 심리학 박사인 강사가 홍콩 오피스에서 강의를 하고 싱가포르와 도쿄 오피스가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진행되었다. 뉴욕 오피스에서 세계 직원 복지 매니저(Global Wellness Manager)도 화상회의로 참여했다. 알고 보니 그는 원래 우리 회사의 어소시에이트 변호사였다고 한다. 트레이닝 시작 전에 생긋생긋 웃으면서 여러 오피스의 연결 상태를 점검하는 그를 보고 나는 참지 못하고 농담을 했다. “나도 시켜주면 잘 할 수 있을텐데.” 마침 맞은 편에 앉은 파트너 변호사인 상사가 바로 받아쳤다. “네가 참도 잘하겠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서 그런지 트레이닝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전혀 모르는 분야라서 얼마나 최신 이론인지는 모르지만 의학, 심리학 이론을 소개하면서 설명은 이해하기 쉽게 진행되었다. 다만 이야기가 너무 추상적이라는 느낌이었다. 여러 심리 상태, 그에 따른 정보 처리 방식과 동료를 접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실제 회사 생활을 할 때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어서 아쉬웠다. 

그래서 질문이 있냐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손을 들고 늘 생각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직업은 클라이언트의 걱정과 스트레스를 대신 짊어지는 거잖아. 우리는 돈받고 남의 스트레스를 대신 해결해주는 일을 하는 거 아니니.” 여기까지 얘기했는데도 강사가 고개를 갸웃하길래 아예 직접적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긍정적인 심리를 갖자는 지금의 이야기가 남의 고민과 걱정, 스트레스를 대신 해결해주는 우리 직업에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궁금해.” 그제서야 강사는 참 좋은 질문이라고 하고는 스트레스가 불가피하다면 정도를 조절하고 경계 (boundary)를 확실히 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냐는 얘기를 했다. 

물론 추상적인 수준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실제 겪는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하여 도움을 받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실제로 이 트레이닝은 미국에서 먼저 실시되었는데 평이 꽤 좋았다고 들었다. 다만 나 개인적으로는 정도를 조절하라는 얘기보단, 이런 얘기를 들으면 더 도움을 받을 것 같다. “잘 모르는 내용의 업무를 처음 받았는데 업무 지시로는 불명확한 부분이 많아. 업무를 지시한 선배 직원은 출장중이라 질문을 해도 바로 답이 오지 않아. 혼자 짐작한 대로 일을 시작할 수도 있지만 그 방향이 완전히 틀린 걸 수도 있어. 이런 경우 어떻게 하겠니? 또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겠어?” 나도 정답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은 꽤 많이 경험한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런저런 불만을 갖다니 나도 참 긍정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면 아직 멀었지 싶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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