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법의 여행계약 규정이 시행되면 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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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민법의 여행계약 규정이 시행되면 달라지는 것들
  • 백태승
  • 승인 2016.02.1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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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승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법무부 민법개정 계약법분과위원장)                               

2월 4일부터 민법의 여행계약 규정이 신설되어 시행되고 있다. 이는 필자를 비롯하여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매해 30-40명의 민법학자, 법관, 변호사 등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이루어낸 법무부의 민법개정작업의 성과물이다. 여행계약을 민법에 규정하자는 논의는 이미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이제야 빛을 본 것이다.

여행은 우리 생활 속에 일상화·보편화되어 국내여행자 숫자는 일찍이 4000만 명을 넘어섰고 해외여행자 숫자도 2015년에 이미 1900만 명을 초과하며 매년 급속도로 증가추세이다. 연휴 때만 되면 인천공항은 북새통으로 일상적으로 보는 사회현상이 되었다. 더욱이 수명이 길어지고 삶의 질이 높아지는데 비례하여 여행은 더욱 활성화 될 것이다. 어느 계약이 일반 시민사이에서 일상화되고 분쟁이 많아지면 이에 대한 합리적인 규율이 필요하게 된다. 이에 따라 독일은 우리 보다 앞서 이미 1978년에, 이웃 대만은 1999년에 여행계약을 민법에 새로 두었다. 대부분의 국가는 여행업을 규제할 목적으로 하는 ‘여행법’ 또는 ‘관광법’에서 여행계약도 부차적으로 일부 규율한다. 우리나라에도 ‘관광진흥법’이 있다. 그러나 규제의 목적이 아니라 누구나 일반적으로 체결하는 계약이라면 특별법 보다 일반법인 민법에서 규정하는 것이 옳다.

여행사와 같이 여행주최자가 단체를 모집하여 실행하고 있는 단체여행의 경우는 (i) 계약취소 거부 (ii) 여행지의 안전사고를 비롯하여 (iii) 일정·숙박지 임의 변경 (iv) 추가요금(팁 등) 부당청구 (v) 이른바 랜드 여행사라 칭하는 현지 소규모여행사의 횡포 등 다수의 피해사례 등 법적분쟁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여행계약을 민법에서 정면으로 규율하지 않고 표준 약관의 가이드라인에만 의존하다 보니 많은 여행자들이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번에 시행되는 규정의 주요내용은, 여행 출발 전 계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상대방이 입은 손해를 배상하는 것을 전제로 보장하고(제674조의3), 불완전한 여행서비스에 대하여는 여행자가 곧바로 시정조치를 요구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여행주최자의 담보책임을 부과하였고 중대한 하자의 경우에는 여행자에게 해지권을 보장하였다(제674조의6-7). 또한 해외여행 중 부모의 사망과 같이 부득이한 사유가 발생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음은 물론 여행자가 해외에 있더라도 귀환운송에 따른 추가비용문제를 각 사정에 따라 합리적으로 조정하였다(제674조의4). 무엇보다 여행주최자의 담보책임 부분이 앞으로 가장 빈번히 문제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행자의 이와같은 권리와 어긋나는 합의는 무효로 보아 그 실효성을 담보하였다(제674조의9). 대부분의 여행계약이 여행표준약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민법과 어긋나는 부분은 약관개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전형적인 한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초등교사로 퇴직한 A녀는 친구 5명과 요즈음 인기있는 여행지인 크로아티아 등 발칸 3개국 11박 12일 단체여행을 239만원의 여행요금으로 국내 굴지의 X여행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일정표를 교부받았다. 그러나 90세 노모를 모시고 있는 A녀는 출발 하루 전 모친의 노환이 심각하여져 계약 취소를 여행사에 문의하니 처음에는 거부하고 나중에는 고액의 취소 수수료(현재는 요금의 반액)를 물어야 한다기에 그냥 여행을 강행하였다. 출발 후 첫 여행지인 크로아티아 숙소는 일정표에 적힌 특급호텔이 아니라 우리 모텔수준이었고 더욱이 인근의 공사장 소음으로 인하여 숙면을 못하였고 또 일정표에 있는 유람선 여행도 일방적으로 생략되어 3박의 크로아티아 여행은 끔직했다. A녀의 모친은 두 번째 여행지인 슬로베니아 여행 중 결국 별세하였는데 A녀는 비보를 듣자마자 여행을 중단하고 급거 귀국하느라고 추가비용이 100만원이 들었다. 나머지 일행은 여행을 계속하였으나 보스니아는 내전 중으로 인하여 그 나라 여행은 생략, 일정을 단축하고 귀국편 비행기를 부랴부랴 마련하느라고 각자 50만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하였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 지금의 해결을 살펴보면, 귀국 후 여행자가 집요하게 또 야무지게 권리를 주장하면 여행사가 위로금 또는 보상금이란 명목으로 적당히 타협하거나 또는 현지에서의 시정조치는 랜드 여행사를 핑계대며 어쩔 수 없었다고 사과 또는 항변한다. 또한 보스니아 여행처럼 부득이한 경우 일정을 단축하고 돌아오면 귀국에 소요된 추가비용은 현재의 약관에 따라 원칙적으로 여행자의 부담이다. 

그러나 시행되는 민법 규정에 의하면 A녀는 출발 전 여행사가 입은 손해를 배상하고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고, 크로아티아 숙소에서 소음으로 숙면을 못했다면 현지에서 즉각 숙소 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유람선 여행 생략에 따른 피해는 귀국 후 대금 감액 또는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 또한 현지 여행사의 횡포에도 담보책임을 함께 물을 수 있다. 이 점은 규율이 없었다. 한편 A녀 모친 사망에 따른 귀국추가비용은 A녀의 사정으로 인하여 발생하였으므로 그가 부담하여야 하지만 그러나 보스니아 여행 생략 부분은 여행요금에서 당연히 감액되어야 하고 여행사의 귀책사유가 없더라도 귀국에 따른 추가비용은 여행사와 여행자가 반분하게 된다. 이 점도 다르다.  
 
여행계약에 관한 민법 규정은 여행업자를 규제하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분쟁을 조장하는 것은 더욱 아니며 여행자를 불편하게 하거나 이른바 진상 고객에게 권리를 하나 더 얹혀 주는 것도 결코 아니다. 공평하고 성숙하게 여행계약질서를 바로잡고자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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