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21세기 세계정치혁명, 버니 샌더스와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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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21세기 세계정치혁명, 버니 샌더스와 안철수
  • 오시영
  • 승인 2016.02.0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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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 / 변호사 / 시인

21세기 세계정치혁명이 미국에서 풀뿌리민주정치로 꽃피어나고 있다. 바로 버니 샌더스의 돌풍이 그 진앙지이다. 그의 홀로외침은 34년 전인 1981년 미국 버먼트주의 작은 도시 벌링턴시의 시장으로 당선되면서부터 지금까지 초지일관이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거대 양당 체제 속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유일한 무소속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의 외침이 2016년 미국민들의 심장을 파고들어 영혼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월스트리트 금융가에서 뿌리는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기성정치가들에 의해 포박되어 있는 정치, 무기제조업체의 정치자금로비에 발목이 잡혀버린 정치가들의 불필요한 전쟁놀이에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전쟁터가 되어버린 국제현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성실하게 노력해도 헬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미국 서민층 빈곤의 악순환, 이로 인한 교육의 불평등과 의료혜택의 불평등 등 수많은 미국의 사회적 구조적 고질병들이 “바로 정치기득권층의 탐욕과 무능에서 빚어진 무책임”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민들이 가슴으로 느끼기 시작하고 “이래서는 안 돼!”라는 변화의 욕구가 일어나는, 다중의 지성이 깨어나는 놀라운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지난 2월 1일 치러진 아이오와주 코커스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는 49.9%와 49.6%의 득표를 하여 그 표차가 불과 0.3% 정도에 불과하였다. 2월 9일에 치러질 뉴햄프셔주에서 버니 샌더스가 20% 이상 앞서나가고 있다는 여론조사결과가 맞다면 이야말로 미국이 천지개벽하거나, 경천동지의 새로운 세상, 꿈이 현실이 되는 정치사적 혁명이 성공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정치권은 국민의 행복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국민을 더욱 가난하게 하는 잘못된 정책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수없이 해 왔다. 부자들과 권력자들에 의해 휘둘러지는, 결국 정치가들과 어떻게든 끈을 맺고 있는 기업가들을 살찌게 하는데 “국민의 행복을 위한다는 미명”이 동원되어 악용되어 왔던 것이다. 그로 인해 1%의 부자들이 증가되는 부의 거의 모두를 가져가는 불평등사회로 악화되어가고 있었음에도 탐욕스런 부자와 정치가들의 조작된 정보와 감언이설에 의해 집단최면상태에 빠져 있던 미국민들이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Movement)” 운동을 전개하여 월가를 점령한 후 깨어나기 시작했고, 그 화약고에 불을 붙여 변화의 동력을 결집시킨 이가 버니 샌더스라고 할 수 있다.

여태까지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일하며 당하는 것에 길들여진 서민들의 자포자기적 습성이 “어, 이건 아닌데” 하고 자각하게 되면서 “저항하는 행동”으로 결집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번 미국 대통령예비선거에서 벌어진 아이오와주의 대접전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주류의 벽은 높고 깊고 강고하다. 아마 모르긴 해도 지금 어디쯤에서는 월가와 무기업체, 석유업체 등 수많은 부자기업들과 주류 언론 또는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 버린 기성정치가들이 모여 “자기들에게 길들어 있지 않은 버니 샌더스에 대한 낙선 프로젝트”를 암암리에 추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자 기업들에게 세금을 많이 물려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버니 샌더스, 세계 분쟁을 전쟁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나가겠다는 버니 샌더스, 전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하고 국공립대학의 무상등록금제도를 도입하여 돈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젊은이가 없게 하겠다는 버니 샌더스, 최저시급을 15달러까지 점차 인상하여 부부가 열심히 노력하는 가정이 돈이 없어 고통받는 불공정한 세상을 뜯어 고치겠다는 버니 샌더스의 대통령 당선은 그들에게는 재앙이고 악몽이고 끔찍한 지옥이겠기에 그들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버니 샌더스의 당선을 막으려 할 것이다.

버니 샌더스는 주장한다, 미국인들은 화를 낼 권리가 있다고. 자신의 정책을 과격하다고 비판하는 기득권층에 대해 1%가 수익 거의를 가져가고 있는 것이 진짜 과격한 정책이라고, 이를 결정하는 기존 정치가들이야말로 진짜 과격분자라고 공격한다. 아직 그의 혁명은 시작단계이다. 아이오와 선거가 치러지는 하루에 300만 달러의 정치자금이 모집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모두 소액기부자들로 이루어지고 있고, 유급 선거운동원이 아닌 자발적 선거운동원들이 속속 대선캠프로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즐거워서 돕고, 기분 좋아서 돕고, 돈 안 받고 자기 돈 써가며 선거운동을 하는 자발적 지지자들의 웃는 모습에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행복과 희망으로 가득차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기존정치가들과 부자들에게는 날카로운 송곳이 되고 비수가 될 판이니, 그들은 어떻게든 버니 샌더스의 당선을 막기 위한 모든 방책을 수립하려 할 것이다. 여태까지 무시되고 백안시되었던 버니 샌더스는 이제 새로운 보이지 않는 주류사회로부터의 강고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를 자발적 지지자들, 소액기부자들, 뿔뿔이 흩어져 있는 그들을 예비선거가 종료될 때까지, 대선이 있는 날까지 어떻게 결집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가 그의 가장 큰 선거전략 중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자발적 지지자들이 자기 돈 내어 가며 선거캠프에 모여드니, 이러한 “즐거운 손해, 행복한 손해”는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안철수 의원의 신당 국민의당이 창당되었다. “새정치”를 주장하는 그의 이상이 실현되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필자는 지난 보궐선거에서 안철수 대표가 노원구병에 출마하는 것을 보고 “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왜냐하면 그가 국회의원이 되는 순간 그의 힘은 상당한 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중량감 있는 대권후보에서 국회의원 300명 중의 1인이 되어 그의 힘이 한없이 약화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가 권력의 공격을 감당할 배짱과 인내력이 부족하구나.”하는 실망감 때문이었다. 그가 국회의원이 아닌 홀홀단신 정치가로 머물러 있을 경우 박근혜 정권은 그를 다음 대통령 후보군에서 배제하기 위해 집요한 공격을 가해올 것인데, 그가 이를 버티어 낼 배짱과 집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럴 경우 그가 운영하는 회사의 존망이 위태로울 수도 있고, 손발이 묶여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도 있지만, 그는 300명의 1인이 되어 그의 위상이 왜소해지는 쪽보다는 34년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무소속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처럼, 광야에서 “천국-올바른 세상이 가까웠다.”고 외쳤던 2천 년 전의 예수처럼 자신의 새정치에 대한 외침을 일관되게 이어가야 했었다고 하겠다.

아니나 다를까 지역구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순간 안철수 의원은 화려한 정치가로서의 변신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왜소한 정치가라는 실패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합당으로 새로운 모색을 했지만 겨우 1년 남짓 버티다가 스스로 탈당함으로써 결국 커다란 실패를 또다시 맛보고 말았다.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의 정체”는 무엇인가? 현재까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고, 가슴에 와 닿지 않고, 영혼을 뜨겁게 하지 않는다. 애매모호하고, 막연하다.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뜬구름잡기처럼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 의원은 버니 샌더스가 34년 동안 일관되게 기득권층에 대항하며 잘못된 선택을 통해 일부 계층만을 위해 존재해 온 정치를 온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이 가는 정치로 탈바꿈하겠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주장했어야 했는데, 스스로 300인 중의 1인이 됨으로써 자신을 왜소하게 만들고 초라하게 만들고 말았다. 

누가 주장하든 2016년 대한민국에 필요한 새정치는 “가난하고 힘이 없다고 해서 무시당하지 않고, 부유하고 힘이 세다고 하여 갑질하지 않는 상호 존중의 세상”을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것이다. 모든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자발적 참여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며, 성실하게 노력하는 자가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고 의식주를 풍요롭게 해결할 수 있는 사회, 복지실현을 통해 국민이 실직하고 병들고 노쇠해졌을 때 최소한도의 문화적 생활인으로서의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버팀목이 되어 있는 사회, 튼튼한 국가안보체계를 바탕으로 남북대화를 통한 긴장완화 및 궁극적 통일조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비전을 실현시켜 나갈 수 있는 국가, 동서로 분열되어 있는 지역이기주의를 극복하고 거의 병적 수준에 이른 영남패권주의의 폐해를 시정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의 제시, 경제적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갖추어져 범죄가 감소하고 재범율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의 제시, 청년 일자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용증대방안 및 산업활성화방안 제시 등 새정치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수없이 많다.

그런데 야당을 뛰쳐나간 안철수 의원은 위와 같은 비전 제시에 실패하고 있다. 우선 그의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새정치를 실현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무엇보다도 호남지역주의에 의존하려는 그의 새정치 시동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새정치의 첫 출발은 대구 경북을 비롯한 영남권의 개혁 주장의 부르짖음에서 시작되었어야 했다. 현재 대한민국이 해결해야 할 상당한 문제들은 영남패권주의, 대구를 중심으로 한 영남권의 곤고한 기득권화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국가 권력기관의 독점, 대학 내부 구성원들의 영남권 인사의 세력화, 삼성을 비롯한 상당한 대기업들의 영남인사의 편중, 영향력 있는 언론기관의 주요인사의 영남인사의 포진, 군 고위층의 영남권 인사의 편중 등등 영남권에서 회자되고 있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건배사로 상징되는 영남패권주의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새정치의 방점이 모아졌어야 했다. 그런데 안철수 의원은 부산출신이면서도 뜬금없이 호남지역을 찾아가 친노패권주의를 물리쳐야 한다며 호남지역주의에 호소하고 있으니, 이는 본말이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되었고, 주객이 바뀌어도 완전히 바뀌었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버니 샌더스 의원이 34년간 광야에서 외치듯 무소속 시장으로, 무소속 의원으로 외쳐왔던 불평등사회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번 미국대선을 통해 미국민들의 심금을 울리듯 외롭게 외쳐야 한다. 군사독재권력에 저항하며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들이 40대이던 때부터 줄기차게 외쳤던 광야의 외침이 그들의 60대, 70대에 실현되었던 것처럼, 영호남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며 40대 때부터 부산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끊임없이 시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자는 외롭고 고독한 길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광야에서 진리를 외치는 자는 핍박과 박해를 받더라도 진정코 외롭지만은 않다. 외로운 듯 보이지만 외롭지 않다. 수많은 같은 뜻을 가진 지지자들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주변에 모여들었고, 그들은 군부독재세력과 맞서 대통령직을 쟁취하였다. 다소 방법에 차이는 있고, 절차에 차이는 있었지만, 광야에서의 외침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한다.

성경은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가르치고 있다. 유목민이었던 유태인에게 있어, 가죽부대에 들어가게 되는 새 술은 발효를 하게 되면 양이 팽창하기 때문에 가죽부대가 튼튼하지 못하면 터져 버리게 된다. 새 부대여야만 내구력이 있기 때문에 술의 발효팽창으로 인한 양의 중압감을 견디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는 이렇게 발효되고 팽창되는 세력을 결집할 수 있어야 한다. 새정치는 새사람이 해야 한다. 헌사람이 새정치를 결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 대부분은 헌사람들이다. 호남지역주의에 기대려고 하는, 더불어민주당에 있었다가는 공천조차 받기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던 능력 저평가의 헌세력들이라는 것이 세간의 평가이다. 75세의 늙은 버니 샌더스에게 자발적 지지자들인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모여들 듯이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에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자발적 지지자들이 모여들어야 하는데, 현재까지는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자금을 국고로부터 지원받으려면 20명의 현역의원이 있어야 한다. 국고지원금 받기에 혈안이 되어 20명의 현역 의원이라는 조건을 맞추기 위해 어중이떠중이 현역의원들을 모두 영입하는 것은 소탐대실이다. 

지금이라도 안철수 대표는 새정치의 깃발을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선전포고,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의 잘못된 국정수행에 대한 비판 및 개선방안의 제시에 집중하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새정치의 실체를 보여주어야 한다. 진짜 영남패권주의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친노패권주의를 영남패권주의로 몰아가는 여론조작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친박, 진박에 대항할 수 있는 영남세력을 확보하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현재로서는 그 강고한 영남패권주의를 무너뜨릴 구체적 방안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라, 무소속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34년간 광야에서 외쳤다. 예수도 공생애 시작하기 전 40일 금식하며 광야에서 외쳤다. 불평등한 사회를 개혁하겠다고, 천국-올바른 세상이 가까웠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주류 언론은 버니 샌더스의 정치혁명에 대한 보도가 크지 않다. 버니 샌더스의 정치혁명이, 영향력이 대한민국에 전염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주류 언론의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안철수 대표도 외치라, 새정치를. 지금은 광야에 내쳐져 있다. 광야는 외로운 곳이 아니라, 도처에 흩어져 산재해 있는 외로운 이들을 하나로 결집하는 축복의 광장이다.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 당이 새정치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호남지역주의에 기대는 낡은 헌정치를 계속하거나 영남패권주의를 쳐부수기 위해 온몸을 부딪쳐 가는 결기를 보여주지 않는 한, 이번 20대 총선에서 야권 자멸의 모든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래도 이념의 스펙트럼에 공유될 부분이 많은 야당이다. 더불어민주당을 공격하는 것은 헌정치일 뿐 결코 새정치가 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권력투쟁을 하고 문재인 대표를 물러나라고 한 것은 더불어민주당의 환골탈태를 통해 새누리당의 영남패권주의에 맞서기 위함이었을 것인데, 탈당하고 나왔다고 하여 공격의 대상을 더불어민주당으로 삼는 것은 자가당착이자 모순된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버니 샌더스는 외친다, 불평등한 국가정책결정으로 망가진 국민의 삶의 질을 회복해야 한다고. 안철수 대표도 외치라, 영남패권주의에 물들어 있는 현실정치로 망가진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회복해야 한다고, 그게 새정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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