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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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19)
  • 박준연
  • 승인 2016.02.0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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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IT와 로펌 

오늘 오후에 업무용 랩탑 컴퓨터를 신형 모델로 교체하기 위해 사무소에서 IT 업무를 담당하는 B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 둘다 일이 잠잠할 때라서 밀린 잡담이 이어졌다. B는 영국인인데 일본 정부에서 실시하는 교환 프로그램 (JET)으로 일본에 처음 왔다가 이곳에서 직장도 구하고 결혼도 했다. B의 역할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점에서 변호사의 역할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는 컴퓨터나 전화, 다른 기기의 문제, 아무리 전문가라도 때로는 원인도 쉽게 파악하기 문제를 급하게 해결해줘야 하기에 더 스트레스가 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도 B는 늘 여유가 있고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런 B에게 이 칼럼 이야기를 하면서 이번주에는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할지 생각중이라고 했다. B는 잠깐 생각하더니 로펌과 IT에 대해 쓰면 어떻겠냐고 했다. 좋은 생각이라고 하고 퇴근길에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쓸지 생각했다. 문득 뉴욕의 예전 회사의 IT 부서에서 일했던 T가 생각났다. 

뉴욕에서 로펌 근무를 처음 시작하고 느낀 놀라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로펌에서 소속 변호사들이 쾌적하게,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직원에 대한 배려라는 측면도 없지는 않겠으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로펌의 수익은 소속 변호사가 일하는 시간에서 창출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회사의 지원 중에서 큰 부분이 IT 업무 환경과 관련된 것이다. 블랙베리 내지는 스마트폰을 통해 업무 이메일을 확인하도록 하고, 업무용 랩탑 컴퓨터를 지급하고 회사의 전화와 같은 기능을 갖춘 전화기를 자택에 설치해주기도 한다. 또 중요한 것이 컴퓨터에 문제가 있을 때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지금 회사도 그렇고 예전 회사도 이름은 다르지만 24시간 언제든 질문이 있을 때 전화할 수 있는 IT 담당 부서가 있었다. 같은 건물이어도 층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얼굴을 볼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아침 근무를 주로 했던 T의 경우엔 거의 매일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이 바빠지면서 IT 부서의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정말 다양했다. 회사 시스템 비밀번호를 세 번 잘못 입력해서 재설정해달라고 전화를 걸면, T는 상냥하게도 “지금 다시 로그인해봐. 그리고 바쁘겠지만 일 시작 전엔 커피 한잔 마시고 한숨 돌려.” 

그렇게 친해지다보니 나는 컴퓨터 관련 질문을 하기 위해 전화를 해서 T에게 전화를 걸어선 일이 바쁘고 힘들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어느날은 T가 그랬다. “네가 요즘 일이 많이 힘든 것 같아서 명상 좀 하라고 좋은 문구를 모았어.” 그리고 그는 마음의 평화를 위한 금언 같은 걸 전화기 너머로 읽어주었다. 

그런 T는 직접 만나서 인사를 나눌 기회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회사에서 IT 업무를 아웃소싱하기로 결정하고 그때 T도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던 것이다. 로펌에서 IT, 문서 복사나 수발신 업무를 아웃소싱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그런 정황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T가 회사를 영영 떠나기 직전에 그가 보낸 이메일을 보고 그 사실을 알게되어서 아쉬운 마음이 정말 컸다. 

그리고 몇 달이 흘러, 길에서 그때 함께 회사를 그만두었던 다른 IT 부서 직원을 뉴욕 미드타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만나서 안부 인사를 나누고 T의 안부도 물었다. T는 얼마 안있다가 예전 회사보다 더 큰 로펌에 취직을 했다고 들었다. 

직접 만나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할 기회는 없었지만, 1, 2년차때 모든 게 낯설고 모르는 게 참 많았던 시절에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고 T도 그 중의 한 사람이라서 지금도 가끔 그때 생각을 한다. 예전 회사 근무를 막 시작했을 때 옆 방의 선배 변호사가 나와 오피스를 같이 썼던 동기에게 해줬던 이야기가 이것이다. 로펌이라는 환경에서 일하다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평안하게 일하는지 잊기가 쉽다고. 정말이지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기가 쉽지 않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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