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개념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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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개념의 정치
  • 신희섭
  • 승인 2016.02.0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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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요즘 언론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개념 중에 가장 재미있는 표현은 뭐니뭐니해도 ‘진박’이다. 2015년 11월 10일 박근혜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발언한 이후에 “O박”사전에 새롭게 진박이라는 용어가 추구되었다. 여기서 ‘진박’은 “진짜 친박” 혹은 “진실한 친박”이라는 의미이다. 자연스레 진박이 아닌 사람들은 ‘가박’이 되었다. “가짜 친박” 혹은 “진실하지 못한 친박”이 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이든 ‘진박’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배력을 옹호하면서 대통령과의 친분관계의 기준을 얼마나 진실한가의 도덕적 잣대를 세웠다는 것이 흥미롭다. 정치학 교과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진실함의 기준을 무엇으로 잡을지 또한 궁금하다. 몇 사람들은 진박과 가박을 구분하는 자가 진단법을 만들어서 21세기의 새로운 1인 우상화를 조롱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이 다가오는 현재까지 진박과 가박은 한국정치를 주도하는 개념으로 작동하고 있다.

진박이나 가박을 비판적으로 보건 우호적으로 보건 이 상황은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정치학의 기원 중 하나는 수사학이다.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이 발전시킨 수사학의 강력함과 두려움을 플라톤은 사실에 대한 '지식(knowledge)'이 아닌 ‘의견(opinion)’이라고 했다. 그리고 동굴의 비유를 통해서 지식이 아닌 의견에 지배를 받는 일반인들을 묘사하기도 했다. 개념 오용이나 개념을 통한 현혹을 걱정한 것이다.

수사학이 중요하다면 수사학에서 사용하는 개념과 용어 역시 중요하다. 개념은 자신의 입장과 그 반대 입장을 명확히 나누기도 하지만 그 개념 안에 도덕적 옹호와 비난을 담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념은 중립적인 부석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상대를 해치는 날카로운 검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정치이다. 개념은 적과 동지를 구분시켜주고 도덕적 가치를 잉태한 채 개념 스스로를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정치에서 2000년대 사용되기 시작한 ‘진보’라는 용어는 그간의 혁신세력가들과 진보세력들 그리고 신사회운동을 주도했던 다양한 스펙트럼내의 인사들을 한 지붕으로 모아준 ‘개념적우산’이다. 이후 ‘진보’는 보수의 대척점이 되면서 빠른 시간에 대중들로부터 혁신, 좌파, 극좌, 빨갱이와 같은 개념들이 가진 두려움을 걷어냈다. 그런 점에서 한국정치에서 가장 성공적인 단어명명이 되었다.

개념이 정치이해와 정치운영에 가장 중요한 단위라고 하면 개념에 대한 명확한 의미를 규정하는 것에서 정치현상의 파악이 시작되어야 한다. 정치발전은 공유하는 개념을 두고 논쟁을 할 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실정치 발전 역시 다양한 노력에 의해서 가능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현상을 보는 시민들이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에 있다. 불필요한 논쟁과 왜곡된 상상력을 줄이기 위해서도 개념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많은 개념적 오용이나 모호함이 있겠지만 상징적으로 세 영역에서 개념적 오용과 모호함을 짚어보겠다. 정치학 강의를 할 때 처음 시간에 “중국이 전체주의국가인가?”와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인가?”와 “중국이 민주주의국가인가?”를 질문하곤 한다. 대학교육을 받고 있거나 대학교육을 마친 사람들도 이 질문에 선뜻 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사용하지만 정확히 구분하지 않고 쓰는 것이 정치체제분류이다. 체제구분의 기준은 정치적 권력의 소유문제, 자유의 부여여부, 자본의 통제주체라는 세 가지를 사용한다. 이 기준에 따라 중국을 적용해보자. 중국은 정치적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가의 기준에서 인민다수의 지배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특정집단이 권력을 독점한 ‘권위주의’국가이다.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가의 기준에서 볼 때 중국은 개인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부정한 ‘전체주의’국가는 아니고 경제적 자유를 인정한 국가라는 점에서 ‘부분적 자유주의’ 국가이다. 반면에 자본의 통제주체라는 기준으로 보면 자본이 전적으로 국가소유가 아니기에 ‘사회주의’국가는 아니고 사적소유가 인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에 가까운 국가이다. 정리하면 ‘자본주의 vs. 사회주의’의 대립과 ‘자유주의 vs. 전체주의’의 대립과 ‘민주주의 vs. 권위주의’의 대립이 있는 것이다.

지리적 개념의 경우는 모호성보다는 지리적 개념에 담긴 정치적 의미와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 자주 사용되는 ‘동북아시아’가 누구를 기준으로 하는 개념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은 동북아시아라는 한정된 지리적 개념에 관심이 적다. 따라서 이 개념은 한국이 유독 관심이 있는 용어다. 가장 어려운 것은 미국이 동북아시아국가인가 혹은 동아시아 국가인가라는 질문이다. 지리적 개념으로 볼 때 미국은 이 지역에 속하지 않지만 지정학적 개념으로 볼 때 미국은 동북아시아에 속하는 국가이다. 지정학적인 이해관계가 지역 국가로 분류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전쟁과 관련한 명칭도 흔히 사용하지만 정확한 취지를 가지고 사용되지는 않는다. 이따금 수업 시간에 ‘1950년 6월 25일 날 벌어진 한반도에서의 전쟁’의 명칭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6.25전쟁, 6.25동란, 한국전쟁, 한반도 전쟁, 조선전쟁 중 어떤 개념이 타당한지를 묻기도 한다. 그럼 예상외로 개념을 정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위의 명칭들 역시 가정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한국전쟁이 가장 객관적인 용어이다. 반면에 6.25전쟁은 날짜를 지칭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명칭이다. 6천만명이나 죽음으로 몰고 간 2차 대전이 몇 월 몇 일에 개전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까? 그만큼 ‘6.25전쟁’은 그 이전에 있었던 국지적인 상호도발을 잊고 6월 25일 있었던 북한의 전면적인 도발과 침략을 강조하기 위한 명칭이라고 볼 수 있다. ‘6.25동란’은 북한의 침략을 전쟁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정의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반란단체로 몰아붙이기 위한 것이다. 한반도 전쟁은 한반도라는 공간을 명칭화하여 남과 북을 중립적으로 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마지막 조선전쟁은 북한과 중국의 명명법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조선왕조에서 북조선으로 이어진 조선이라는 명칭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취지에 있다.

이처럼 어떤 개념을 사용할 것인지는 정치현상을 분석하거나 현실정치를 운영하는 사람이 어떤 부분을 강조할 것인지 의도에 달려있다. 개념들이 혼용되고 오용되는 현실에서 개념의 명확화는 복잡한 정치현상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있어 첫걸음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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