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120 / 정보제공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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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120 / 정보제공과 평가
  • 이용훈
  • 승인 2016.02.0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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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초행길, 행인에게 관공서 위치를 묻는다고 사례를 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 적령기 남녀가 선배로부터 결혼에 대한 자문을 들을 때 역시 마찬가지다. 밥 한 번, 차 한 잔 사 드리는 부담을 ‘사례’라고 부르긴 민망하다. 소개를 받고 결혼에 성공한 이들은 생색을 내야 한다. 양복이나 외출복 정도가 통용되는 사례금이다. 그러나 경제활동의 영역에서, 전문가에게서 듣는 상담은 유료다. 대학입시 컨설팅 기관의 상담 시급 역시 웬만한 전문가 상담료 이상이다.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제 29조는 감정평가업자의 업무를 나열하고 있다. 표준지, 표준주택 평가와 개별토지와 개별주택의 검증업무, 소송이나 경매, 담보평가 업무 등이 그것이다. 이 중 제 7호는 ‘감정평가와 관련된 상담과 자문, 8호는 ’토지등의 이용 및 개발 등에 대한 조언이나 정보 등의 제공‘이다. 따라서 감정평가사도 상담과 자문을 할 수 있고 조언이나 정보 제공을 통해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감정평가 수수료는 법정 요율이지만, 자문과 정보제공 등에 대해서는 딱히 준수해야 할 수수료 기준선이 없다. 

『감정평가에 관한 규칙』제 27조는 ‘조언·정보 등의 제공’과 관련해 지극히 당연한 지침을 세우고 있다. 이런 업무를 수행할 때 ‘모든 분석은 합리적이어야 하며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지 소유자가 찾아와 꽤 큰 땅을 갖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 개발해도 되는지 묻는다고 치면, 토지 활용 방안에 대한 검토를 하고 이를 문서로 제공할 것이다. 감정평가가 전제하고 있는 ‘최고최선의 이용’에 대한 분석과 관련돼 있다. 이런 것이 대표적인 조언과 정보제공이다. 투자수익률이나 순현재가치 등이 이 보고서에 실릴 것이다. 그런 분석이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합리적으로 수행되기만 하면 된다. 수수료는 업무의 난이도에 따라 청구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업무의 수주 시 경쟁을 피할 수 없는바, 적정한 수준의 수수료로 귀결될 것이다. 

혹 요청하는 것이 ‘시세조사 보고서’라면 어떨까. 어떤 경우에는 ‘가격조사 보고서’라는 제목을 띠고 있다. 특정 부동산의 시세나 가격을 담고 있으므로, 누군가는 감정평가서로 오해할 소지가 크다. 그래서 이런 정보제공 보고서는 하나같이 표지에 ‘감정평가서가 아닙니다.’문구를 정 중앙에 배치했다. 감정평가서만큼의 정확성은 없다는 얘기일까? 아니면, 감정평가서의 양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걸까? 만약, 정밀한 보고서이면서 감정평가기법이 동일하게 사용되고 형식 역시 다르지 않다면, 내막은 ‘법정 수수료’를 받지 않아도 되는 보고서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평가에 관한 규칙』제 13조는 감정평가서를 작성할 때 포함해야 할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1. 감정평가업자의 명칭 2. 의뢰인의 성명 또는 명칭 3. 대상물건(소재지, 종류, 수량, 그 밖에 필요한 사항) 4. 대상물건 목록의 표시근거 5. 감정평가 목적 6. 기준시점, 조사기간 및 감정평가서 작성일 7. 실지조사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이유 8. 시장가치 외의 가치를 기준으로 감정평가 한 경우 해당 시장가치 외의 가치의 성격과 특징 및 시장가치 외의 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감정평가의 합리성 및 적법성 9. 감정평가 조건을 부가하는 경우 그 이유와 감정평가조건의 합리성, 적법성 및 실현가능성 10. 감정평가액 11. 감정평가액의 산출근거 및 결정 의견 12. 전문가의 자문등을 거쳐 감정평가 한 경우 그 자문등의 내용 13. 그 밖에 이 규칙이나 다른 법령에 따른 기재사항이 그것이다. 

이 모든 사항이 누락돼 있다면, 제대로 된 감정평가서의 양식이 아니다. 반대로,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고 ‘감정평가서’ 명칭을 ‘가격 추정 보고서’로, ‘감정평가’를 ‘가격 추정’등으로 말 바꾸기 했다면 어떨까. 진의는 뻔하다. 의뢰처의 수수료 부담을 고려해 외관만 살짝 바꾼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감정평가협회는 감정평가서와 유사한 컨설팅 보고서 제공을 내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관련 법령 위반으로 다루자니, 감정평가에 관한 보수기준 위반정도일 텐데, 경계가 애매하다. 명칭을 바꿨고, 감정평가서로 오해하지 말라고 표지에 대문짝만하게 실어놨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컨설팅 혹은 가격 조사 보고서, 시세 자문서 등의 결과물이 버젓이 ‘공인된 자산 가치’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IFRS 자산재평가를 이런 식으로 해 놓고, 보고서의 수치를 재무제표에 올려놓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손상 차손을 인식하고, 재평가 차익을 셈하고 있으니 우려스럽다. 과연 제공한 자의 잘못인가, 아니면 오용한 자의 허물일까. 

금융감독원 등의 감독기관이 정식 ‘감정평가서’가 아닌 경우, 회계 목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가격 조사 보고서는 일반 감정평가서와 같은 심사를 거치지도 않는다. 일부 평가법인은 이 영역을 특화해 아예 ‘시세 조사 보고서’를 남발하고 있다. 어떤 컨설팅 보고서는 하한과 상한의 금액으로 최종 추정 가치를 기재해 놓는다. 회계 목적으로 활용할 수 없을 것 같지만, 해당 보고서의 작성자가 그 범위 안의 특정한 금액을 비공식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제 살 깎아 먹는 우울한 일들이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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