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응답하라 1988』과 쌍문동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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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응답하라 1988』과 쌍문동비망록
  • 신희섭
  • 승인 2016.01.2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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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맥이 풀렸다. 이제 무엇으로 한 주 한 주를 버틸까?

드라마 『응답하라 1988』 가 막을 내렸다. 나는 1988년 바로 그때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쌍문동에서 그 시절을 보냈다. 이 인연 탓에 마지막방송에서는 많이 울었다. 마지막방송이 끝날 때는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 같았다. 아쉬움과 서운함에 더해 아직 살아있는 1988년의 기억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드라마에 빠진 두 달동안의 감정의 잔상들이 깊었다.

아버지를 지난 번 뵈었을 때 여쭤보니 아버지는 이 드라마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그 장면들을 보면 그 시절 어려웠던 기억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사업실패이후 어렵게 버텼던 그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거의 30년 뒤 회상 속에서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다. 사실 그 때는 하루하루 버티기가 어려워서 미래가 있을지도 잘 몰랐다.

세상일이 그렇듯이 어떤 것이든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응답하라 1988』 은 그 시절을 기억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듯 하다. 마지막 회 평균 시청률이 19.6%였고 최고 시청률은 21.6%를 기록했다는 것을 보면. 케이블 채널에서 만든 드라마라고 할 때 이것은 기적적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시절로 치면 거의 50%대의 시청률에 육박할 기록을 메이저방송사가 아닌 케이블 채널이 기록한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공명(共鳴: response)을 가진 것이다. 공명의 차원에서 드라마에 대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응답을 했을까? 무엇이 이 드라마를 통해서 공감하고 공명하게 했을까? 좀 더 정확히 하면 드라마에 열광한 이들은 무엇을 회고하고 싶었던 것일까?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의 사회적 의미를 생각해 보기 위해 비망록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썼다. 거창한 제목을 사용한 것은 1988년과 2016년 사이의 28년간 잊고 있었던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이다. 진부할 수 있겠지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바쁘게 살다가 다시 28년이 지난 2044년에 『응답하라 2016』 를 만든다면 2016년은 무엇으로 기억될 것이고 무엇으로 화두를 잡을까? 청년실업, 헬조선, 양극화, 국민소득 30,000불, 리니지게임, 해외여행, 중국요우커....

아마 『응답하라 2016』을 만든다면 2044년의 시점에서 좋은 쪽으로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쁜 기억으로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응답하라 1988』이 불러온 기억들도 똑 같다. 이 드라마는 보통 드라마가 갖추어야 할 요소들로 ‘대립’도 없고 ‘악당’도 없으며 극단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영웅’도 없다. 등장인물들 모두는 잘 화합하고 모두 착할 뿐 아니라 첫사랑을 고백 못하고 속알이를 하는 찌질한 순박함이 있다.

그런데 과거로 돌아가 보면 그때 현실도 그랬을까? 1988년에는 드라마처럼 정말 좋은 사람들이 모여 소소한 일상을 큰 걱정 없이 살았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내가 살았던 쌍문동은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평범하게 가난한 사람들도 많았다. 늘 그렇듯이 가난은 부족을 가져오고 부족은 고통을 가져왔다. 낮이고 밤이고 술에 찌들어있는 아저씨들, 밤에 들려오는 “차라리 죽여라”는 아줌마들의 비명소리, 많이 낳았지만 보호 받지 못하는 자식들의 악다구니. 넝마쟁이도 아직 있었고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를 수많은 동네 깡패들도 있었다.

반면에 좋은 것들도 많았다. 소득이 전반적으로 올라가면서 나이키 신발은 좀 더 신을 가능성이 높았고 자동차도 많아졌고 아파트들도 늘었다. 게다가 지금 보면 재미있게도 학교는 일종의 사회적 재분배 역할을 했다. 부유한 친구들이 매점에서건 밖에서건 집안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많이 샀다. 빈약한 국가를 대체한 사회의 훈훈한 재분배기능. 골목에는 저녁밥 때를 알리는 냄새와 엄마들의 호출이 있기도 했다. 착한 가게주인아저씨 덕에 삼립빵을 외상으로 먹었던 기억도 있다. 물론 몰래하다 엄마에게 걸린 나쁜 기억도 같이 있지만.

이런 개인적 기억을 넘어서 당시를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들까지를 드라마에 응답하게 한 좀 더 사회적인 요인도 있다. 특히 3가지 요인이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첫 번째, 가족과 가족으로 엮어 있는 일상의 소소함이다. 그 시기는 가난하고 부족하지만 가족이 같이 지낼 수 있었고 가족들 간에 나눌 수 있는 정이 있었다. 또한 그 정이 소소한 일상을 잘 버티면서 살아가게 했다. 그럼 점에서 현재의 바쁜 일상생활과 부족한 대화와 높은 소득대비 퍽퍽한 삶이 1988년에 그려진 시대의 소박한 과거를 불러내고 싶은 것이다.

두 번째는 골목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향수가 사람들을 자극한 것이다. 지금은 보기 어려워진 골목의 삶은 그 시절을 살았던 부모들이 만들고 자식들이 같이 가꾼 공간이다. 아파트 단지가 아닌 주택가에서 가질 수 있었던 나눔의 공간. 이 공간에는 공동체적인 요소들이 많이 있었다. 음식을 나누고, 사람들끼리 지지고 볶고 싸우지만 또 이내 화해하는 나름 공존의 원칙이 있었다. 그럼 점에서 차가운 아파트공동체에서 과거의 골목을 불러낸 것이다.

세 번째는 ‘이야기를 가진 삶’을 이끌어낸 것이다.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모두 우리인생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단지 역할이 다를 뿐 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우리인생의 주인공이 일반사람들인 우리가 아니고 특별한 사람들과 뛰어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확인하고 살아 왔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등장인물들 모두를 주인공으로 보이게 하고 주인공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역할이 작든 크든 자신의 독특한 캐릭터로 자기 삶을 열심히 산다. 그런데 그게 너무 좋다.

그 많은 캐릭터들 사이에서 나와 같은 캐릭터도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 이 드라마는 나의 드라마가 된다. 그리고 여러 등장인물들이 중심을 이루면서 만들어지는 무대에서 나를 닮은 캐릭터를 통해 나의 과거가 인생 드라마의 한 귀퉁이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발을 디디고 살고 있는 이 현실에서도 그렇다.

이 드라마가 공감대에 성공한 3가지 요소에는 공통된 것이 있다. 그것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드라마지만 왜 이들은 소소한 일상에서 대화를 그리 많이 나눌까? 답은 명확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으니까. 그런데 한편으로 다른 사람이야기도 잘 듣는다. 왜? 서로 속을 뻔히 아니까. 그래서 어울렁 더울렁 살아가는 것이다.

모순적이지만 응답하라고 했던 드라마 속의 1988년은 지금 살고 있는 현재가 구현하고 싶은 과거이다. 어쩌면 동화일 수도 있다. 이런 동화들은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돌아가고 싶은 것은 명확하다. 모두 비슷하다는 심리적인 안정감, 더 발전된 사회로 갈 것이라는 기대감, 힘들지만 같이 하고 있다는 동질감. 28년 뒤 『응답하라 2016』에서 지금 시대는 어떤 동화로 그려질까? 그때는 무엇으로 응답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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