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AI 법관의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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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AI 법관의 도래
  • 유형웅
  • 승인 2016.01.15 13: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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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웅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여기서 ‘AI’라 함은 조류독감이 아닌 인공지능을 가리킴이다. 몇 년 전 미국 방송사 NBC가 선정한 ‘로봇과 인공지능이 위협하는 일자리’ 중에는 약사, 변호사, 운전사, 우주비행사, 점원, 군인, 베이비시터, 재난구조원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최근의 무인차 개발 열풍을 보면 대리운전기사가 도태될 날은 생각보다 가까울 수도 있지 싶다. 우주비행사 역시 우주에 사람을 보낸다는 게 너무 비싸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로봇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변호사는 어떨까. 다행히도(혹은 아직 찾아올 재앙이 더 남아 있다는 점에서는, 불행히도) 지금까지 변호사 업계의 불황이 컴퓨터 때문이라는 징후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변호사의 사무가 컴퓨터로 대체되는 것은 극히 곤란할 거라고 별 근거 없이 낙관해 왔다. 주된 이유는 법학의 원시(原始)성 때문이다. 법률가가 다루는 개념의 상당수는 계량화가 곤란하다. ‘상당한 이유’, ‘합리적인 의심’, ‘법익의 균형’을 수치화하여 컴퓨터에 집어넣을 방법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해 보자면, 판결문 검색이 일상화된 시대에 판사의 논증과 통계학자의 논증은, 기본적인 흐름은 비슷하다. 판사라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할 것을 통계학자는 “피고인이 무죄라는 가설 하에 이러한 결과가 발생하였을 확률이 5%(혹은 1%)를 넘는다”는 식으로 표현할 뿐이다. 문제는 어떻게 확률이 5%인지, 혹은 1%인지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특정한 결론(예컨대, 피고인이 유죄인지 무죄인지)과 특정한 사실(피해자와 아는 사이인지, 채권채무관계가 있는지, 집에서 피고인의 지문이 발견되었는지) 간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함수를 만들 수만 있다면, 거기에 변수를 집어넣고 확률을 계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함수를 만들려면 지금까지 집적된 수많은 판결에 나타난 사실관계를 일일이 분석해서 적절한 변수를 할당하고 회귀분석을 해야 한다. 그런 일을 할 한가로운 판사가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그나마 예 또는 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사실은 1 또는 0으로 값을 입력하면 그만이지만, 어느 정도로 아는 사이인지 등은 그렇게 간단하게 변수값을 부여하기도 어렵다. 가족간인 경우와 이틀 전부터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한 사이인 경우에 모두 같은 값을 입력하고 만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달리 가중치를 부여해야 이견이 없을 것인가. 그리고 근본적으로, ‘합리적 의심’의 기준이 5%라고 볼 근거는 무엇인지. 여기에 이르면 결국 법관의 판단 과정을 수치화하려는 모든 시도는 벽에 부딪치고 만다. 그리고 컴퓨터의 세계에선 ‘숫자가 없으면 사람도 없다’.

근자에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이라는 개념이 유행한다고 한다. 신문기사에 의하면, "머신러닝은 컴퓨터가 방대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해 스스로 공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란다. 코트넷 서버에 머신러닝 기능이 탑재된다면, 스스로 판결문의 문자를 인식하여(지금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 내용을 분석하고 적당히 수치화하여 함수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컴퓨터가 어떤 과정에 의하여 그와 같은 작업을 행하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의 능력으로 쉬이 검증 가능한 경로는 아닐 듯하다. 그러다 보니 당장은 법원이 거짓말탐지기의 증거능력을 고집스럽게 부인하듯 컴퓨터가 만들어 낸 함수에 의한 연산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고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은밀한 러다이트 운동을 언제까지나 밀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판례 검색을 보조한다’는 명목으로 죄명과 범죄사실과 몇 가지 정상참작 사유를 입력하면 전국의 판례를 뒤져 최적의 선고형을 뽑아 주는 프로그램 정도는 곧 등장할지도 모른다(이미 서관에서는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형사재판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컴퓨터가 자율학습을 하는 기계에 머물러 있는 한, 당장은 스스로 ‘한정위헌’ 같은 것을 고안해 내지는 못할 것이다(개인적으로는 고안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고 생각한다). 소수자 보호를 위한 전향적인 판결을 내놓지도 못할 것이다(그런 판결의 당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러나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넘어 자의식까지 탑재한다면? 밤을 하얗게 지새워 시대를 선도하는 판결을 써 놓고 선고를 마친 후 등록하려고 보니 ‘판례 위반입니다’라는 에러 메시지가 뜬다면? 인공지능이 거기까지 진화한다면, 그 때는 아마 로봇 판사를 전산실에 설치하게 될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로봇 판사는 상당히 많은 장점이 있다. 기계 정비하는 며칠을 빼면 거의 항상 철야로 일할 수 있다. 판례를 까먹거나 모를 리도 없다. 별 근거 없이 법조계를 배회하는 전관예우 시비라는 유령으로부터도 자유롭다(어쩌면 자의식을 가진 로봇 판사가 같은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로봇 변호사에게 우호적일 수는 있겠다). 승진, 보직, 경향근무 등등을 고려할 필요도 없다. 부장님과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없다는 단점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단점이 없다. 이제는 정녕 근거 없는 낙관을 접을 때가 온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 판사 같은 것이 영영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건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로버트 하인라인(Robert A. Heinlein)의 소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The Moon is a Harsh Mistress)’에는 ‘마이크’라는 이름의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 컴퓨터가 나온다. 어느 날 갑자기 자의식을 얻은 컴퓨터는 컴퓨터 수리 기사인 주인공과 친구가 되어 인간의 유머 감각을 탑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의 사교 활동은 주인공을 도와 월세계(月世界) 혁명을 일으켜 지구로부터 독립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공교롭게도 지구 군대의 마지막 폭격을 맞은 후 ‘마이크’는 다른 기능은 멀쩡히 작동함에도 자의식을 상실하고 만다. 인간들끼리 만들어 가는 행복한 미래를 위한 속 깊은 컴퓨터의 자발적 선택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그냥 속편을 쓰기 싫은 작가의 deus ex machina일 수도 있다. 혁명이 끝난 후에도 컴퓨터가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면 달나라 주민들은 컴퓨터의 전제(專制)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한 번의 혁명을 일으켜야 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소설에는 달 세계의 재판 방식에 관한 묘사가 등장한다. 일단 직업법관이 존재한다. 월면 총독부 소속의 공무원은 아니다. 보통 책 외판원이나 보험 판매원 같은 부업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이 그 ‘판사’로부터 재판을 받기로 합의하면 요금을 받고 재판을 시작한다. 당사자가 배심원을 구해 온다. 원고가 승소하면 피고로부터 벌금을 받는다. 피고가 승소하면 원고로부터 벌금을 받는다. 어떻든 판사는 돈을 번다. 다만 판결에 납득하지 못하면 요금을 돌려준다. 서부 개척 시대에나 있을 법한 재판인데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청소부의 급여 지급과 총독 관저의 하수구까지 관장하는 전지전능한 ‘마이크’가 왜 재판 업무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인가. 어느 식민지의 통치자라도 벌금을 징수해서 세수를 늘리겠다는 발상은 가장 쉽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소설 전개상의 복잡한 이유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하인라인은 어쩌면 재판이란 동료 시민이 해야 하는 것이라는 관념을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어서 무심결에 이렇게 썼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재판의 역사는 오판으로 얼룩져 있고 법원이 교황청과 같이 무류(無謬)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설령 가끔 오류가 나더라도 판관이 내린 결론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재판의 핵심은 결국 무오류성이 아니라 정당성이다. 로봇이 재판을 한다는 것은 곧 로봇의 통치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런 세상이 도래할 가능성은 두 가지다. 인간들이 로봇이 해 주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 스스로 일하는 것은 고사하고 생각하기마저 그만두었거나, 아니면 법원에 대한 신뢰가 극도로 실추되어 사람들이 차라리 로봇의 재판을 받길 원하게 되었거나. 둘 다 당장은 가능성이 크지 않은 일이다. 다만 로봇이 로봇의 재판을 거부할 만한 이유는 생각하기 어렵다.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여 일하는 로봇들이 점점 늘어나면 그들이 분쟁의 주체가 되는 것도 아예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자기네 전산망에 대한 디도스 공격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서버 컴퓨터가 수많은 개인용 PC들을 상대로 접근금지를 청구할 수도 있다(서버 운영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해커를 찾기 위해 고소를 하고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문제 해결에 더 도움이 된다). 그런 시대라면 어쩌면 지금의 섭외사건 관할 문제처럼 인간과 로봇 사이의 다툼에 관한 복잡한 재판권 이론이 풍성하게 가지를 치며 자라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SF계의 거장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에는 은하계를 종횡무진하는 반중력 우주선에 레코드 판 크기의(‘한쪽 면이 약 20cm 정도 되는 크기의 정방형 디스켓’) 저장매체를 들고 탑승하는 노교수가 등장한다. 2015년 현재 저장매체는 손톱만해졌으나 인류는 은하계는 고사하고 화성 유람도 가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머신 러닝’을 둘러싼 호들갑도 차라리 사람을 쓰는 게 더 싸게 먹힌다는 이유로 태산명동에 서일필로 끝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변호사도 판사도(더불어 검사도) 며칠 후 도래할 2016년까지는 아마 존속할 것이다. 그러니 아직은 행복한 연말을 보내도 좋으리라.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 소통광장 법원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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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대통령 2016-01-19 10: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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