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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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15)
  • 박준연
  • 승인 2016.01.08 12: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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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로스쿨 입학 전 무엇을 할 것인가

NYU 로스쿨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이메일 리스트의 이름은 코즈 리스트 (Coase’s List)이다. 거래비용과 관련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이메일 리스트로는 다 쓴 교과서나 다른 물건을 사고팔거나 학교 생활 정보가 오가고, 또 가끔은 사회 문제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로스쿨을 졸업하고도 이 리스트에서 탈퇴하지 않았고 로스쿨 이메일과 평소에 쓰는 이메일을 연결시킨 관계로 종종 여기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를 읽는다. 
그 이메일 리스트에서 최근에 본 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로스쿨 졸업생이 입학을 앞둔 예비 로스쿨 학생들에게 쓴 글이다. 내용 중 일부를 옮겨보면 이렇다. 

“NYU 로스쿨 진학을 환영해. 너희들 중 대부분은 로스쿨 생활을 즐기게 될 거야. 배울 것도 많고, 믿거나 말거나지만 재미도 있을 거야. 하지만 한 가지 미리 말해 둘 게 있어. 우리는 콜럼비아 로스쿨이 아니야. 벌써부터 수업 아웃라인을 찾을 필요가 없어. 벌써부터 숙제 시작할 필요도 없어 (제발 남은 여름을 즐겨. 이번 여름이 마지막이라구).” 

컬럼비아 로스쿨과의 비교는 NYU 로스쿨에서 자주 하는 농담이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NYU 로스쿨이 어땠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여러 로스쿨을 다녀보지 않은 이상 객관적으로 NYU 로스쿨이 어땠는지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NYU 로스쿨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다른 로스쿨에 비해 여유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한 요약정리를 흔히들 아웃라인이라고 부른다. 교과서 내용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좋은 아웃라인을 만들 수 없다. 그런 이유로 학기초에는 선배들의 유명한 아웃라인을 주고받기도 하고, 또 그런 아웃라인을 못 구해서 걱정하는 경우도 보았다. 거기서 더 나아가 로스쿨 입학 전에 아웃라인 구할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마다 공부하는 방법이 다르지만, 나는 남이 작성한 요약에서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요약에는 생략된 배경지식이 있기 마련인데, 그 배경 없이는 아무리 좋은 요약이라도 100%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로스쿨 시작 2-3주 전까지 외교부에서 일했던 관계로 교과서를 미리 구해서 예습을 하거나 아웃라인을 찾아볼 여유가 없었다. 교과서가 학교 서점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아웃라인이라는 것도 로스쿨 시작 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했던 것도 아니어서, 서울에서 구한 미국법 개설서와 법률 용어집을 늘 가방에 넣어 다니곤 했다. 그래서 입학 전에 조바심을 내고 가능한 한 정보를 모으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많은 인생 경험이 그렇듯 로스쿨 역시 직접 경험하고 시행착오를 겪기 전에 실상이 어떤지 알 수 없다. 그럴 바에는 위의 글처럼 입학 전까지 최대한 마음 편하게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예습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다만 입학 전부터 지칠 정도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말리고 싶다. 로스쿨 3년은 생각보다 길다. 가장 중요하다고들 하는 시기인 1학년도 짧지 않다. 관건은 그 과정을 잘 버틸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로스쿨에 진학한 경우라면 좀 다르겠지만, 대학 졸업 후 바로 로스쿨에 진학한다면 입학 전의 여름이 정말이지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최후의 여름이 될 수도 있다. 로펌에서 일하면서도 휴가는 가지만, 업무 연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멀리 내다본다면 공부나 일로 힘들 때 되새겨볼 수 있는 기억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로스쿨 시작 2주일 전 처음 뉴욕에 도착했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여름인데도 계속되는 비로 날씨는 서늘했다. 무채색의 거리를 보면서 이 도시에서 공부하고 또 일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뉴욕도 로스쿨도 조금은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즐길 수 있게 되기까지 좀 힘들고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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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16-02-12 00:15:25
가끔의 휴식이 일을 할 때 힘을 주는 원천이 되는 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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