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민족주의, 정의, 양면게임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민족주의, 정의, 양면게임
  • 신희섭
  • 승인 2015.12.31 16:27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예전 아버지들은 이런 말씀을 자주하셨다. “밖에서 큰일하려면 가족들은 좀 참아야한다.” 대(大)를 위해서 소(小)를 희생하고 사회라는 공(公)을 위해서는 가족이라는 사(私)는 무시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주장에는 공적활동을 위해서는 그 말씀을 하신 아버지의 희생도 따른다는 전제가 있다. 자신의 희생 없이 밖에서 폼 잡기 위해서 저런 주장을 하면 안된다는 대명제가 있었다.

현대 외교는 외교를 위한 국내적 희생이란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외교의 외부문제와 정치의 내부문제가 대등하게 맞물려 작동하는 것이다. 높아진 교육수준은 밖을 위해서 안을 희생하라는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한다.

태평양전쟁 종전 7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한 한일정상회담에서 위안부문제에 대한 ‘연내’타결을 목적으로 한 정부의 외교는 연말인 12월 28일자로 위안부문제에 ‘최종적’타결을 보았다. 한국정부는 연내타결과 일본정부의 위안부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 그리고 아베총리 명의의 사죄와 10억 엔의 보상금에 대한 일본정부의 지급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이보다 더 큰 것은 한국과 일본이 미래를 향해 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이런 큰 성과를 주장하는 정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28일 정부 발표이후에 한일합의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은 더 잠재우기 어려운 불길이 되어가고 있다. 12월 31일 윤병세 외무부장관은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나와서 협상과정을 공개적으로 설명하였다. 정부의 발표대로 여러 가지 사전협의와 노력을 통해서 얻어낸 이번 성과는 왜 발표와 동시에 국내정치문제를 가져왔을까?

이번 한일회담에서 정부가 실기한 부분에 대해서 초점은 일본국내정치의 반응을 덜 고려하고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문구를 너무 빨리 양보했다는 점과 민간기관이 만든 위안부 소녀상을 이전하는 문제에 정부가 개입되어 있다는 점과 일본 측 언론 플레이에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으로 맞춰지고 있다. 그럼 문제는 이 기술적인 부분들에만 있을까?

결론은 “전혀 그렇지 않다”이다. 위안부문제는 민족주의가 작동하는 이슈일 수밖에 없다. 소녀상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일본 대사관이지만 이 소녀상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에게도 날카로운 칼이다. 가슴속에 지켜주지 못한 역사, 힘없는 자의 역사라는 희생자인식을 일상적으로 서슬 퍼렇게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일상적 민족의 소환.

한국과 일본의 민족주의는 역사, 혈연, 언어를 중심으로 민족을 재구성하는 시원적민족주의이다. 그렇기에 발화가 잘 이루어진다. 게다가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라는 대척점을 만들기도 쉽다. 그런 점에서 민족주의는 다른 도덕적 기준을 힘없이 무너뜨리는 힘이 있다.

그럼 위안부문제는 한국인들이 단지 시각이 좁아서 민족주의로만 문제를 삼을 수 있는 것인가? 전혀 아니다. 일본이 전쟁기간 중에 취한 행동에 대해 ‘정의’라는 기준을 들어 보면 인류 보편적인 문제가 된다. 위안부는 정의와 관련해 최소한 3가지 문제를 건드린다. 피식민지에 대한 억압과 차별, 어린 약자에 대한 강제, 여성에 대한 인권유린이라는 점에서 보편적 정의에 반한다.

그러니 위안부 문제는 한국의 특수한 민족주의뿐 아니라 전쟁수행과정과 관련된 보편적인 ‘부정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문제를 잘 풀어가는 것은 일본이 한국의 호의를 얻는 것만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보편적 기준을 채워가는 국가로서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문제이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이 중재를 하면서 강력하게 해결을 압박한 문제이기도 하다. 임기 말로 가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중국부상대응과 한미일 3각 관계강화에 있어 한일관계 개선은 가장 약한 고리를 매듭짓는 것이다.

이런 우호적인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나 일본 양 국은 모두 국내정치의 제약들이 많다. 일본의 보수화된 정치구조는 한국에 대한 양보를 국내정치용 해석으로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다. 한국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으로 위안부문제를 정치의제로 다루고 민족주의 신앙 고백의 시험대로 이용할 수 있다. 국내정치의 장애물들을 넘어서면서 위안부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하기 위해서 단지 ‘미래를 위한 한 걸음’으로만 설득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민족주의의 정서가 걸려 있고 보편적 도덕이 걸려있으며 이로 인한 많은 정치이해관계가 맞물려있다.

외교정책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양면게임이론이 있다. 중앙정부는 타국 외교관들과의 합의에 의해서만 협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자국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익을 조정하는 과정을 병행한다는 것이다. 국내정치에 대한 고려 없이 외교정책이 단독으로 결정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밖에서 큰일 할 테니 가족들은 조용히 하고 있어”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국내 이해 집단들과 동원에 취약한 민주주의의 작동을 무시하면서 대외정책이 결정될 수 없는 것이다.

복기를 해보자. 정책수립에 있어 시한을 설정한 뒤 오는 성급함은 국내정치의 논리를 간과하기 쉽다. 지도자가 스스로 믿고 있는 자신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으로 자신만이 국가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처럼 여기게 되면 국내정치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된다. 대외적인 공간에서 추앙받는 지도자가 되려하면 국내 정치세력은 입을 닫고 있으면 좋을 존재로 여겨진다. 국민을 위한 중대한 결단과 결심이 서게 되면 국제적 합의와 국내적합의의 과정은 결과주의를 위해 희생된다.

민족주의의 국내적 여론과 보편적 정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그리고 중재를 하려는 국가는 양면게임에서 다루기 힘들지만 자국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정책카드이다. 리더십이란 이러한 카드를 어떤 순간순간에 활용하는가와 함께 자신이 가진 열정을 진정성 있게 내보이는 것이다. 민주주의국가에서 지도자들에게 유혹처럼 생겨나는 역사속 인물이 되고자 하는 유혹을 조금만 떨쳐내면 누구를 설득할 것인지는 명확해진다. 그리고 가야할 미래도 분명해진다.

민족주의는 지워지지 않는다. 단지 침잠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고개를 내밀며 지도자를 유혹한다. 정의에 기반 한 도덕도 지워지지 않는다. 현재가 용서한다고 미래가 용서할 것을 보장할 수는 없다. 단지 과거는 미래를 위해서 잠시 내려두는 것이다.

과거는 미래에 의해 잠시 묻힐 수 있다. 미래를 내세울 것이라면 미래를 향해서 가려는 한국과 일본의 청사진은 무엇인가? 미래를 위해 양국의 지도자는 어떤 선물을 준비하고 있는가? 앞으로 그려갈 미래와 발전적 대화를 위해 많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 미래 그림만으로 이 난관을 극복할 수는 없으니 어떤 방식으로 국내정치적 합의와 국가 간 합의를 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전략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북아시아 지역은 1차 대전전의 유럽질서를 닮았다. 경제적 교류의 심화에도 치열한 안보경쟁과 영토문제로 상징화되는 강력한 민족주의. 동북아시아의 미래가 유럽의 과거가 되지 않으려면 지도자들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함께 문제를 풀어갈 지도력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용기 있게 민족주의를 대하는 지도자를 기대하는 이유이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16-01-02 22:45:30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선생님

2016-01-02 22:44:45
학자의 글이네요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