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재판을 통해 들여다본 어느 국민의 삶 ? 국민은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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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재판을 통해 들여다본 어느 국민의 삶 ? 국민은 ‘행복’한가?
  • 최경서
  • 승인 2015.12.18 10:2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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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서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일부 비정상적 취미를 가진 사람에게는 못된 욕망을 충족시켜줄 즐거운 유희가 될지 몰라도, 보통의 평균적·정상적인 사람에게는 타인의 삶을 그 타인의 의중과 무관하게 들여다보는 일이 결코 유쾌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그렇게 알게 된 타인의 삶이 ‘장밋빛 인생’이 아니라 긴 세월 고난과 고통으로 얼룩진 굴곡의 인생이라면 비록 그 삶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 본의가 아니었더라도 그 타인에게 송구스런 미안함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사건들을 접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사건당사자들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픔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법관은 그 아픔의 당사자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필자는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민사중액재판을 담당하고 있는데, 작년부터 올해까지 우리 법원에 접수된 사건들 중 건수 측면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국민행복기금’의 양수금 소송이다. ‘국민행복기금’은 금융소외자의 과도한 채무부담을 줄여 회생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목표로 2013년에 출범한 공적기금으로서 금융회사 등이 보유한 장기연체채권(즉 이른바 ‘부실채권’)을 매입해 그 채무자에게 채무감면·상환기간연장 등 채무조정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그 주요 업무 중 하나이다. 우리 법원에 접수되는 ‘국민행복기금’의 양수금 소송은 위와 같은 채무조정 업무의 일환으로 ‘국민행복기금’이 다수의 금융기관으로부터 각 채무자별 부실채권을 양수받아 당해 채무자를 상대로 그 양수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으로서, 피고가 되는 각 채무자의 입장에서는 ‘국민행복기금’으로 창구가 일원화되어 보다 원활한 채무조정 협상이 가능하게 되고, ‘국민행복기금’이 원래의 약정이율보다는 훨씬 낮은 이율의 연체이자를 청구하므로 그 자체만으로도 채무가 일부 감면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소송을 진행하면서 제일 먼저 부딪히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은 대부분의 채무자들에게 이런 소송이 제기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하여 고율의 연체이자를 감당하기 어렵게 된 대부분의 채무자들은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살던 터전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게 되고 급기야는 주민등록이 말소되는 처지에 이르게 되어 법원으로서는 채무자에게 소송서류를 보내줄 수 없기 때문이다(이러한 이유로 ‘국민행복기금’의 양수금 소송은 대부분 공시송달의 방법으로 진행된다).

혹자는 ‘스스로 대출을 받아 놓고 무책임하게 도피한 채무자를 왜 도와주느냐?’라는 매몰찬 입장을 취할지 모르고, 그 말도 경우에 따라서는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닐 수 있겠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에게 필자가 최근 검토하였던 한 사건을 들려주고 싶다. 소송기록에 의해 파악된 바로는 그 사건의 피고는 지방 소도시 출신으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다녔던 현재 기준으로 서른 즈음의 젊은 여성이고, ‘국민행복기금’이 청구하는 양수금은 피고가 지난 10년간 5개 정도의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은 대출금 채권이었다. 그런데 그 청구채권들 중 제일 먼저 발생한 채권은 약 10년 전 피고가 대학에 입학한 직후에 등록금 마련을 위하여 받은 ‘학자금 대출’이었다. 이제 대학에 갓 입학한 피고는 아마도 4년 후의 멋진 미래를 꿈꾸며 학자금 대출이자를 상환하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얼마간은 대출이자의 변제가 연체 없이 제때 이루어졌다. 그러나 학비만으로는 학교를 다닐 수 없다. 부모님의 지원 없이 대출을 통해 등록금을 겨우 마련한 학생이 책값이며 생활비는 다 어디서 마련하랴. 지방 출신 고학생으로서 서울의 높은 물가를 감당하기란 또 얼마나 까마득한 일이었을까. 얼마 후 피고는 제2금융권에서 소액대출을 받는다. 급기야 고학년이 되어서는 고율의 대출상품을 판매하는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는 곧 연체의 늪에 빠진다. 소송기록만으로는 피고가 그 학교를 졸업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소송서류의 송달을 위해 제출받은 피고의 주민등록초본을 통해 졸업반으로서 열심히 취업준비를 하여야 할 해에 서울을 떠난 사실이 확인될 뿐이다. 물론 서울을 떠나기 전에도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는 못하였다. 서울을 떠난 후에는 고향에 내려간 듯하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몇 달 후에는 전혀 연고가 없을 것 같은 곳으로 주민등록이 몇 번 옮겨지더니, 어느덧 피고의 주민등록은 말소되었고, 그 상태로 다시 몇 해가 흘렀다. 그리고 그사이 고율의 연체이율이 적용된 연체이자의 합계는 이미 원금의 몇 배를 훌쩍 넘어섰다.

과연 위 사건의 피고가 자신이 머무르는 거처조차 제대로 등록하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 오로지 피고 자신만의 탓일까? 어쩌면 피고는 낯선 도시에서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당당히 살아보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아르바이트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고액의 등록금과 매달 저승사자처럼 찾아오는 고율의 대출이자 앞에서 꿈과 미래를 잃고 쓰러졌던 것은 아닐까?

국어사전에서 ‘행복’이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이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그와 같은 ‘행복한 생활’은 기본적인 의·식·주의 해결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올해까지에만 수만 건에 이르는 ‘국민행복기금’의 양수금 소송이 전국의 법원에 접수되었고, 그 중의 상당수 피고들이 주소불명 등의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을 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국민 중 많은 수의 사람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이 살던 정든 곳을 떠나 주민등록이 말소된 채로 정처 없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국민행복기금’은 양수금 채권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원인서류(즉 대출계약)를 증거로 제출하는데, 위 사건에서 증거로 제출된 학자금 대출계약 첨부서류인 학생증 사본에는 앳된 얼굴의 소녀가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다. 필자는 허락도 없이 감히 그 소녀의 지난 10년의 기록을 들여다보았다. 그 소녀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위 사건에 대한 재판을 성실히 하는 것만으로는 그 빚을 갚기에 턱없이 부족한 듯싶다(사실 위와 같은 사건에서 피고를 위해 법관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면 남은 채무는 어떻게 변제할 것인가? 아무래도 그 변제방법은 매일 새롭게 접수되어 필자에게 배당되는 또 다른 국민들의 아픈 사건들을 처리하며 찾아야 할 것 같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 소통광장 법원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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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서 2023-12-22 16:07:26
당신처럼 노골적으로 좌빨스러운 판결만 골라서 내리는 인간이 사법부에 있으니까 나라가 쓰레기통으로 변해가는것 아니겠어요?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인간이 누굴 가르치려 들어? 양심어디?

여름 2015-12-22 16:21:33
젊은이들이 빚으로시작해아하는 현실이 참 마음아프네요. 세상에 좋은빚도 있고 나쁜빚도 있다지만 과도한 빚은 인생을 망치는 악마입니다. 대출기관은 빌릴땐 천사와같은 모습이지만 어려워지면 악마로 돌변하여 우리 목을 졸라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인생을 따뜻하게 봐라봐 주시는 판사님의 마음만으로도 누군가는 따뜻한 위로를 받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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