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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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11)
  • 박준연
  • 승인 2015.12.11 10:1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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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로스쿨 기말고사의 기억

어느덧 로스쿨 기말고사 기간이 되었다. 졸업한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떠오르는 것은 추운 로스쿨 도서관 테이블에서 24시간동안 진행되는 오픈북 시험 답안을 작성하던 기억이다. 물론 24시간 내내 답안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면 시간 외엔 마음도 편치 않고 시간도 아까워서 차갑게 식은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대신하며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로스쿨에 진학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많은 시험을 거친 나는,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The Paper Chase)’ 같은 로스쿨 분위기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 따라 많이 분위기가 다르다고들 하는데, 모교인 NYU 로스쿨의 경우 수업은 그 유명한 (악명높은) 소크라테스식 대화법(Socratic method)으로 진행되었지만 틀린 얘기를 한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창피를 주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뉴욕에 있는 로스쿨 중에서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의미지만) 느긋한 분위기로 유명한 NYU 로스쿨이라 성적이나 취업 결과 등으로 서로 비교, 경쟁하며 일희일비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쿨 기말고사, 그것도 1학년때의 기말고사때는 다들 심각했다. 흔히들 말하듯이 1학년때만 열심히 공부하고 2학년으로 올라가는 여름 방학때 취직이 결정되면 2,3학년때는 공부에서 손을 놓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역시 다들 제일 긴장하는 것은 1학년 기말고사때였다.

1학년 첫 학기 기말고사 준비기간. 이때는 개인적으로도 로스쿨에서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였다. 학과 공부에 아직 감을 못 잡고 그날그날 따라가기 바쁘다보니 어느덧 시험기간이 찾아왔다. 기숙사에는 두 명이 같은 아파트 유닛을 공유하는 룸메이트가 있었는데 둘다 로스쿨 1학년이었다. 학교에서도 로스쿨 1학년 생활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가급적이면 1학년끼리 방을 같이 쓰게 한다고 했다. 시험이 가까워온 어느날 저녁, 룸메이트 중 한 명인 섀넌과 시험 준비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둘다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다른 룸메이트가 귀가해서 우리 둘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은 물론이다. 

1학년 두 번째 학기 기말고사때는 공부를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준비를 했지만 그래도 긴장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때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필수과목 중 하나인 행정법(Legislation and the Regulatory State) 기말고사이다. 이 수업의 교수님은 우리나라에는 미국 무역대표부의 대표로 많이 알려진 칼라 힐스씨의 아들인데, 유머와 실제 사례를 섞어 빠르게 진행되는 수업은 꽤 인기가 좋았다. 이 수업의 기말고사에는 다들 수업시간에 강조된 부분과 관련 판례가 나오지 않을까 모두들 예상을 했다. 하지만 실제 문제를 본 순간 머리가 하얘지는 것 같았다. 꼭 나올 것 같아서 열심히 정리한 부분 (Chevron deference로 불리는 법률 해석시 행정부와 사법부의 관계 문제)은 출제되지 않은데다가 수업시간에 자세한 설명없이 넘어가다시피 한 부분이 길게 출제되어서였다. 순간 당황한 나는 시험장인 강의실의 주위를 둘러봤다. 책상 같은 열에 앉은 한 학생이 우는 걸 봤다. 그 학생한테는 미안하지만 그걸 보니 조금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나만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구나. 그리고 나서는 아는 대로 쓰자는 생각으로 답안을 작성했고, 성적은 의외로 좋게 나왔다. 

12월이 오면 이런저런 시험공부의 기억을 떠올린다. 왜 하나같이 그렇게 추웠는지 모르겠지만 신림동 학원에서 2차 답안 쓰는 연습을 하던 기억이나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한복판이지만 묘하게 고요했던 로스쿨 도서관에서 판례 요약하던 기억 같은 것. 지금은 hypo(hypothetical)라고 불리는 시험 문제를 위해 준비된 가상의 상황은 없지만 대신 현실 세계의 고객과 안건이 있다. 팀으로 일하지만 결국 내가 맡은 일은 혼자 해야하니 시험도 업무도 어떻게 보면 둘다 외로운 과정이다. 일은 쉽지 않고 쉴 시간은 잘 나지 않지만 일에서 크고 작은 보람을 느끼고 있으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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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5-12-18 18:24:43
머리모양 예쁜데 왜 그러시지?
얼굴이 귀염상이라서 잘 어울리시는데.
소개란에 써있는 걸 보면 2002년 졸업생이신데 엄청 동안이시네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재미있음!

?? 2015-12-13 16:14:43
머리가 근데 저게 뭐예요? 미국도 영국처럼 머리에 가채같은거 쓰고 하나요?

준비중 2015-12-13 15:13:05
매번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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