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시험 한국사, 논란의 여지가 있던 문제로 타산지석 삼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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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시험 한국사, 논란의 여지가 있던 문제로 타산지석 삼기5
  • KG패스원
  • 승인 2015.12.0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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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시즌 6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역대 한국사 기출 문제를 재점검해보고, 관련 내용을 더 명확히 공부해 보는 데에 목표를 두고자 합니다.

밑줄 친 ‘그’의 활동으로 옳지 않은 것은?                                     2012 국가직 9급

는 함경도 단천 출신으로 한성으로 올라와 무관학교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시위대 장교로 군인생활을 시작하였다. 강화도 진위대 대장 시절에는 공금을 횡령한 강화부윤이 자신을 모함하자, 군직을 사임하기도 하였다. 는 군인이면서도 계몽운동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강화읍에 보창학교를 세워 근대적 교육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고종황제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전후하여 무력항쟁과 친일파 대신 암살 등을 계획하였으며, 강화 진위대가 군대 해산에 항의하여 봉기하자 이에 연루되어 체포되기도 하였다.

① 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에 참여하였다.

② 하바로프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을 결정하기도 하였다.

③ 대동보국단을 조직하고 진단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④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한광복군정부라는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정답] ③

[해설] 자료에서 제시된 밑줄 친 ‘그’는 이동휘이다. 이동휘는 1907년에 조직된 신민회에 함께 참여하였다가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었다. 석방 이후 일제의 식민 통치가 현실화되자, 애국 계몽운동의 한계를 인식하고, 무쟁 투쟁과 독립군 기지 건설을 주장하였다. 연해주로 간 이동휘, 이상설 등은 1914년 대한 광복군 정부를 수립하였으며,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 결성(1918)을 주도하였다. ③ 대동보국단은 1915년 상하이에서 박은식, 신규식 등이 설립한 단체이다.

[출제 의도] 신민회의 초창기 멤버인 점과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을 만든 점 그리고 최초의 국외 정부인 연해주의 대한광복군 정부 수립에 관여한 점 등을 들어 이동휘에 대해 묻고자 했으나, 이러한 이동휘의 업적 및 활동에 대하여도 출제 예상을 빗나갔지만 지문 자체의 내용도 생소해서 수험생들을 당황하게 만든 문제였다.

[관련 내용] 1914년 권업회는 러일전쟁 10주년을 맞아 러시아에서 반일 감정이 한창 고조되어 있다는 점과 시베리아 이민 50주년을 기념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 군정부를 수립하였는데, 이 정부가 바로 대통령 이상설, 부통령 이동휘를 선출한 대한 광복군 정부(1914)이다. 한편 1918년 연해주에서 이동휘 등이 조직한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을 시작으로 하여 러시아, 중국에는 수많은 공산주의 단체들이 조직되었다.

[왜 논란이 되었을까] 불의의 타격이라는 말, 불의타(不意打). 역대급 불의타 문제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수험생들의 허를 찌른 문제가 바로 이 문제였다. 문항 자체로는 복수 정답의 여지가 있거나 논란이 될 만한 소지가 없었지만 사회주의 인물이 나오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것도 보기 선지 하나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단독 문제라니! 아직 공무원 한국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이 많은 것 같은데 공산당으로 전향한 인물, 이동휘가 그것도 국가직 문항으로 출제된 것은 조금 의아하다. 두 번 이상 출제가 된다면 중요 인물로 분류를 하겠지만, 아직은 지켜볼 단계인 것 같다. 다시 출제되긴 어렵지 않나 조심스럽게 예상해보지만 공무원 문제는 기출이 기출을 부르는 경우가 많으니 내용을 한 번 쯤은 봐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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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 10년대 연해주 지역의 독립 운동

한민회(1905)

· 해조신문 발행, 독립 기지인 신한촌 건설

13도 의군(1910)

· 유생 의병장이었던 유인석, 이범윤, 이상설 등이 조직

· 국권 피탈 이전 한말의 대표적인 의병 통합체

성명회(1910)

· 유인석, 이상설 등이 조직

· 국권 피탈(한일 병탄)의 부당성 성토

권업회(1911)

· 의병 계열 + 애국 계몽 운동 계열이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조직

· <권업신문> 발간 및 대한 광복군 정부 수립 추진

대한 광복군 정부(1914)

· 대통령 이상설, 부통령 이동휘를 중심으로 한 군정부(망명 정부)

· 사관학교 설립, 무장 항일 운동의 터전 및 임시정부 탄생의 계기 마련

· 모체인 권업회가 해산되자 타격을 받고 해체 수순

한인사회당(1918)

· 이동휘가 연해주에서 조직한 최초의 국외 사회주의 정당

대한 국민 의회(1919)

· 블라디보스토크의 전러 한족 중앙 총회가 정부 형태로 개편된 것

· 대통령 손병희

· 상하이 임시 정부에 합병 결정하고 해산(1919. 8.)

1920 ~ 30년대

1920년대

· 한국인의 무장 활동을 금지하고, 무장 해제를 요구 당한 자유시 참변 사건으로 인해 연해주에서의 민족 활동이 제약

1930년대

· 1937년 한국인이 일본군의 첩자 노릇을 할 것이라 의심을 받아, 연해주의 많은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 이 과정에서 수많은 한인들이 희생을 당하고 재산을 잃게 됨

*사회주의 사상의 수용 및 확대

수용

· 레닌의 사회주의 혁명과 세계 식민지 해방에 대한 지원을 선언 이후 1920년대에 국내로 유입. 독립운동가들은 사회주의 사상의 수용과 함께 계급 해방 추구

· 소수의 지식인과 청년 중심으로 수용

확산

· 1920년대 국내에서 각종 청년회, 노동 운동 단체, 농민 운동 단체 수립 및 대중 운동 전개

· ‘서울 청년회’는 1921년 조직된 국내 최초의 사회주의 단체

결과

· 민족주의 운동 계열과 사상 및 노선 차이로 대립 격화, 민족 운동 자체에 큰 타격

· 노동, 농민, 여성, 청년 운동 등 사회 · 경제적 대중 운동의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점은 순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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