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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법무사 사무원에서 수석 꿰찬 조희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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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법무사 사무원에서 수석 꿰찬 조희창씨
  • 안혜성 기자
  • 승인 2015.11.26 11:3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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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제21회 법무사시험 수석·살레시오고 卒·전남대 금속공학과 卒


“사람들의 걱정 덜어주는 법무사 되고 싶다”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법무사시험은 각종 전문자격사 시험 중에서도 가장 공부할 분량이 많고 어렵기로 손꼽힌다. 선발인원도 가장 적은 축에 속한다. 때문에 법학을 전공한 수험생들이 4~5년씩 공부하고도 합격하기 어려운 시험이다.

그런데 ‘난공불락’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로 높고 공고한 법무사시험의 벽을 2년 만에 넘어섰음은 물론 수석까지 거머쥔 이가 있다. 심지어 전업으로 수험 공부에만 집중한 것도 아니고 1차시험과 2차시험 준비 기간의 상당 부분을 직장에 다니면서 준비를 했다.

갓 스물을 넘긴 어린 수험생들도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에 부쳐하는 수험생활, 오로지 수험에만 올인을 해도 합격을 장담할 수 없는 시험에서 68.48점을 획득하며 수석 합격이라는 ‘기적’을 일궈낸 주인공은 1965년생, 올해 나이 만 50세의 조희창씨다.

수석 합격 소감에서도 연륜에서 비롯된 여유가 묻어났다. 조씨는 “시험 보기 전부터 ‘수석하면 인터뷰해야 해서 힘드니까 차석만 해야지’라고 농담으로 말하곤 했는데 수석이라니 정말 얼떨떨하다”며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참으로 밥값 한 번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대답했다.

조희창씨는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 공과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했다. 공학도인 조씨가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법무사 사무원은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계기가 됐다.

그는 “2003년경부터 법무사 사무원으로 근무해 왔는데 나이 50이 다 되도록 변변한 존재감 없이 살고 있는 자신이 안타까웠다”며 “현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 법무사시험에 합격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떨어지더라도 진짜 열심히 한 번 해보고 후회 없는 삶을 살자는 마음으로 도전하게 됐다”고 전했다.

법무사라는 직업을 알게 된 것은 법무사 사무원으로 입문했을 때다. 3개월가량 인터넷 강의를 듣기는 했지만 이후로는 아무런 공부를 하지 않다가 2013년 6월 별다른 준비 없이 1차시험을 치러봤다. 결과는 평균 35점. 합격권과는 거리가 먼 점수였음에도 불구하고 ‘합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해 7월 아내와 부산 해운대에 바람을 쐬러 가서 법무사시험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고 그 다음날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 공부를 했다. 올해 2차시험이 끝난 것은 9월 19일, 합격하기 까지 약 2년여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결과만을 놓고 봤을 때 시험에 도전한 것은 백 번 잘한 선택이고 놀라운 성과도 냈지만 도전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겨 수험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을 짐작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씨는 “많이 늦은 나이었기에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이 매우 컸다”며 첫 번째로 경제적인 어려움, 두 번째로 체력적인 부담을 꼽았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은 그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그는 “어려움이 있었기에 더 간절히 공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매일 10시간이 넘게 공부할 수 있는 힘이 돼 준 간절함과 함께 ‘융통성’도 합격의 비결이 됐다. 지방에 거주하는 직장인,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공부했고 상대평가로 시험이 치러진다는 점을 고려해 타 학원의 모의고사에도 관심을 가졌다. 또 수험기간 동안 여러 멘토들과 상담을 나눈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수석 합격자이자 단기간 합격자이기도 한 그의 공부방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1차시험 공부는 지방에서 공부해야 하는 여건에 맞춰 인터넷 종합반을 이용했다. 사무실에 출근을 해야 하니 새벽 3시~4시쯤 일어나 매일 그 날의 강의를 듣고 운전 중에도 강의를 차에 설치된 블루투스로 들었다. 이동 중에도 이어폰으로 계속해서 반복 청취했다.

부족한 시간을 아끼고 쪼개며 공부를 했지만 ‘과연 내가 잘하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인터넷 강의가 아닌 실제 강의를 들어보고 다른 수험생들과 얘기도 나눠볼 기회를 만들었다. 조씨는 “서울법학원 본부장님께 부탁해 2014년 1월 16일부터 3일간 실강의를 듣고 스터디매니저인 황정규 법무사님에게 조언을 들었다”고 전했다.

황 법무사와의 대화는 그가 자신을 믿고 수험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됐다. 그는 “처음 1차시험을 준비할 때만 해도 1년 안에 그것도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1차시험에 합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도 1년에 합격하면 좋지만 안 되면 2년에 하라고 했다”며 “그런데 황정규 법무사님은 1년에도 합격할 수 있다고 조언했고 그 말을 믿고 열심히 공부한 결과 77점을 받고 합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1차시험에서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헌법과 민사집행법이었다. 헌법은 양이 너무 방대하고 생소한 단어가 많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과락만 면하자’고 생각하며 조문 암기에 집중했다. 민사집행법은 ‘다 같이 어려우니까’라며 마음을 다스리며 공부했다. 조문과 판례가 잘 이해되지 않으면 아예 암기를 해 버렸다. 그는 “3월에 서울에 올라와 처음으로 모의고사를 봤다”며 “당시 ‘20등하면 합격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딱 20등을 했다”고 말했다. 한 달 후 다시 상경해 모의고사를 한 차례 더 보았고 ‘잘하면 합격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결과는 물론 좋았다.

1차시험 가채점 후 합격권에 있었지만 동차로 합격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다 재시에 합격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1차시험을 준비하며 조언을 받았던 황정규 법무사의 전화를 받고 마음을 바꾸게 됐다. 서울에 올라와 동차반 수업을 듣는 것이 좋다는 조언에 따라 서울에 올라와 3개월간의 동차반 강의를 전부 들었다. 수업을 빠지지 않고 듣는 것은 물론 학원 부근 독서실에서 매일 복습을 했다. 또 강의 후 이동시나 차량 이동시에는 인터넷 강의를 수시로 듣는 등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동차반에서 난생 처음으로 접한 형법과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은 그에게 극복하기 어려운 산이었다. 형법과 민사소송법은 그대로 외워버렸지만 시험이 임박한 9월 초에 시작하는 형사소송법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동차에서 가능한 한 합격해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시험 당일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시험을 본 직후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광주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에서 손을 놓지는 않았다. 돌아오자마자 인터넷 2차 종합반을 등록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동차시험 결과는 과락 없이 평균 52.29점. 커트라인이 53.94점이었기에 정말 아쉬운 점수가 아닐 수 없었다. 조씨는 “반드시 합격한다는 생각으로 시험을 봤다면 동차로 합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었다”며 동차시험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5년부터는 사무실을 그만 두고 수험에 올인했다. 직장은 그만 뒀어도 아버지를 그만둘 수는 없는 법. 당시 조씨의 하루 일과는 큰 아들을 대입수능학원에 내려주고 가까운 공공 도서관에서 밤 10시까지 공부를 하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둘째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와 집에서 다시 책을 보는 것이었다.

2차시험은 논술식 시험이기 때문에 답안 작성 연습이 매우 중요하다. 지방에서는 답안을 작성하고 첨삭을 받는 것이 여의치 않아 어려움을 겪었지만 인터넷 첨삭을 이용해 2순환부터는 매일 아침 7시 40분부터 도서관에서 시간을 체크하며 모의고사를 봤다. 단 한 번의 모의고사도 빼놓지 않았으며 아무리 못 쓴 답안이라도 전부 업로드해서 연습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학원의 모의고사도 거의 다 읽어보는 등 답안 작성에 특별히 공을 들었다. 마지막 시험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는 서울에 올라와 실강의를 수강했다.

이처럼 답안 작성 연습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그의 답안작성 비결은 무엇일까? 조씨는“최대한 핵심 위주로 간략하게 쓰려고 노렸했다”고 대답했다. 시간 관리도 답안 작성에서 특별히 신경을 쓴 부분이다. 그는 “모의고사 중에도 반드시 시간을 엄수하고 답안을 작성하는데 있어서 각 문제의 배점을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공부 방법 못지 않게 중요한 몸과 마음의 건강, 수험 기간 중의 체력 관리와 스트레스 해소는 어떻게 했는지 물었다. 조씨는 “땀을 흘려주는 것이 좋은 것 같아 런닝 머신을 주 3회 정도 하려고 노력했다”며 “런닝머신을 하는 중에도 그 날의 동영상 강의를 무선 헤드폰을 쓰고 들으면서 하니 금방 1시간이 지나갔다”고 전했다. 정말 대단한 의지와 집중력이 아닐 수 없다. 스트레스 관리에 대해서는 “특별한 노하우는 없다”며 “힘들 때는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대답했다.

법무사 사무원에서 법무사로, 스스로 선택한 도전에서 더할 나위 없이 멋지게 성공한 조씨에게 앞으로의 포부를 묻자 ‘知足常樂 處染常淨(지족상락 처렴상정)’이라는 대답을 내놨다. 조씨는 “이는 ‘분수를 지키고 만족할 줄 알면 항상 즐거우니 어느 시대, 어느 곳, 어떤 처지에서도 물들지 않고 항상 맑고 떳떳하게 살자’는 의미”라며 “의사가 진료상담으로 사람을 치료하고 이롭게 하는 것처럼 법무상담을 통해 사람들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다”고 전했다.

법무사를 꿈꾸는 수험생들에게 조씨는 ‘법무사 시험은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평지에서 매일 꾸준히 달리다가 언덕 부근에서 가속도를 붙여 치고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다 힘든 마지막 고비에서는 안간힘을 써서 정상을 넘을 때까지 페달을 밟아야 하는 것이 법무사 공부와 비슷하다는 것. 그는 “언덕의 중간에서 멈췄다가 다시 올라가면 몇 배의 힘이 든다. 그러니 언덕에서 치고 올라가기 위해 평지에서부터 힘을 꾸준히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꿈을 이루기까지 그를 믿고 응원해 준 이들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언제나 함께하며 말없이 기도하고 기다려준 내 반쪽 사랑하는 내 아내에게 감사하고, 나를 용서하시고 영원히 사랑하시는 전능하신 하느님, 하늘에서 그득하게 보고 계실 우리아버지, 아들을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또 자랑스럽고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 항시 나를 믿어주고 희망으로 존경해준 우리 누나들 그리고 매형들, 동생들, 그 가족들, 큰사위를 믿어주신 장인어른, 장모님, 나를 우러러 보는 처제, 처남, 그리고 나와 함께 해준 나의 친구들, 이 모두가 있어 행복합니다. 특히 큰자형과 꾸준한 멘토링을 해주신 작은자형께 감사드리며 이 순간이 있기까지 나를 위해 마음을 함께 해주신 많은 친척들과 기도해주신 성당의 어르신들, 이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받은 따뜻한 사랑을 뜨겁게 전하며 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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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상 2015-11-26 13:17:40
축하!!!~축하합니다.!!!!
그동안의 고된 수고가 값진 열매가 되었네요.
이제 어렵고 힘든 많은 이들을 위해 나눠주세요.
2년동안 너무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대한변호조무협회 2015-11-26 11:44:14
대단하신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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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로스쿨놈들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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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안에 법을 배워 50프로 언저리 합격률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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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사 시험은 몇놈이나 붙을까싶지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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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사, 노무사, 7급 무시하지말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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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놈들아 ㅋ 공익 모르냐 공익 ㅋ
낮은자세에 임해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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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로스쿨 원장을 맡고 있는 신 이사장은 "기존 변호사 처우를 생각하면 7급 채용이 익숙치 않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많은 법조인을 배출해 사회 각 분야에 법조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로스쿨 취지를 감안하면 직급이 낮다 해서 마다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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