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판사와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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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판사와 사투리
  • 곽형섭
  • 승인 2015.11.20 14: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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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형섭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저는 고향이 남쪽입니다. 남쪽에서 성인이 된 이후까지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투리가 몸에 배었습니다. 수도권 생활을 한 지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사투리 억양은 여전합니다. 저를 처음 만나는 사람도 저랑 조금 이야기하다 보면 어디 지역 출신인지 바로 맞춥니다. 사투리를 사용해도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어 고치려고 별다른 노력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2013년 형사단독재판장을 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사안이 가볍지 않아서 피고인이 구속기소 되었고, 법정 분위기도 엄숙하였습니다. 증인신문을 하는데 증인이 말을 흐리고 중얼거려 진술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증인에게 “증인 또이또이 말하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순간 법정 분위기가 묘해졌습니다. 방청석에 있던 몇몇이 웃음을 참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왜 그러지, 내가 말을 잘못했나’하고 그냥 넘겼습니다. 재판 끝나고 참여관, 실무관에게 말을 잘못한 게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또이또이’라는 말은 자기들도 처음 듣는 말이라면서 순간 웃음이 나왔는데 억지로 참았다고 하였습니다. 네이버 지식검색을 하니까 국어사전에 ‘매우 또렷이, 사리에 밝게, 야무지게, 정확하게’라는 뜻을 가진 말이라고 나와 있는데, 주변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처음 듣는 말이라면서 사투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이또이’라는 단어가 사투리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는데, 제가 어렸을 때 가끔 사용했던 기억이 있고, 요즘은 사용하지 않는 단어인데, 순간 저도 모르게 위 단어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

위 일이 있은 후 몇 달이 지나 2013년 가을쯤 대학생들이 제가 진행하는 재판을 모니터링하였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모니터링하는지 몰랐었고, 나중에 대학생 4명이 각자 작성한 모니터링 평가표 4부가 저한테 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평가내용 중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있는데, 그건 제가 사투리 억양으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학생이 보기에 사투리 억양으로 말하는 게 거슬렸나 봅니다.

저는 지방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했는데, 옆방 부장님 중에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재판 중에도 별다른 거리낌 없이 사투리를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부장님께서 ‘친근하게 재판을 진행하시겠구나’하는 생각 외에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수도권에서 판사생활을 해보니, 지방에서는 사건관계인들이 대부분 그 지방 사람들이어서 재판장이 그 지방 사투리를 사용한다고 한들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수도권에서는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하고 같은 지역 출신의 사건관계인이면 내심 저를 반길 수 있겠고, 다른 지역 출신의 사건관계인이면 저에게 반감을 가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생각을 해 봅니다. 판사와 사투리는 어울리지 않는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사투리를 쓰면 상대방에게 웃음을 유발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데, 이건 판사라는 직업하고는 그다지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역감정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저와 다른 지역 출신의 사건관계인이 저에게 재판을 받는다면, 재판의 신뢰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랴 싶은데, 직업의 특성상 그리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주변 판사들을 살펴보았는데,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란 분들도 꽤 많은데, 사투리를 사용하는 판사가 손에 꼽을 정도로 몇 명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투리 억양을 고치려고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 이 글을 쓰는 것을 계기로 고치려고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물론 40년 넘게 사용해온 터라 몸에 배어서 쉬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 소통광장 법원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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