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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무정부상태가 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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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무정부상태가 오고 있는가?”
  • 신희섭
  • 승인 2015.11.2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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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냉전이후의 질서는 무엇이 될까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전을 제시한 이론가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사무엘 헌팅턴일 것이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명제를 가지고 자유민주주의가 모든 이념대결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낙관적인 미래관은 미국의 민주당에게 '민주주의 확대(Enlargement)정책'에 대한 논리적정당성을 제시하였다. 게다가 1975년 이후 파도와도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확대 현상과 맞물려 실증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는 나중에 헤겔의 아이디어로 이념대결의 종언을 너무나 단정적으로 예측했던 것에 대해 자신의 생각이 미숙했음을 인정했지만, 그의 ‘역사종언론’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수정구슬이다.

후쿠야마의 낙관론과 달리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비관적 관점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문명이라는 거대한 담론은 이론적으로는 논쟁의 소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2001년 9.11테러에 대해 문명충돌론은 ‘서양문명 vs. 이슬람 문명’이라는 단순한 해석논리를 제시함으로서 대중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미래의 세상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념적 대결에서 종교와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문명적 대결로 전환할 것이라는 주장은 오히려 문명기준의 모호함으로 인해 더 강력한 지지를 끌어들였다.

두 사람의 대가 클래스는 되지 못하지만 또 다른 미래 예측도 있다. 로버트 카플란이라는 저널리스트가 내린 예측이다. 1980년대부터 동유럽과 아프리카에서 60개 이상의 분쟁지역을 직접 경험한 기자이자 미국의 특수부대 고문을 지내기도 했던 로버트 카프란이 제시한 미래는 ‘무정부상태’이다. 그는 저서 『무정부시대는 오는가』에서 홉스가 제시했던 무정부상태를 인류의 미래로 제시하였다.

아프리카를 대표로 하여 인도, 서남아시아, 북미지역에서 무정부상태가 나타나고 있다는 그의 지적은 2001년 한국에도 번역되었다. 세상의 어두운 지역을 직접 경험한 기자로서 그가 묘사한 세상은 홉스가 400년 전에 걱정했던 세상과 유사하다. 정부가 약화되면서 인간들은 권위뿐 아니라 정의의 기준을 잃어버리게 있다는 것이다. 이후에 그가 낸 저작인 『로버트 카플란의 타타르로 가는 길』에서 이러진 그의 주장은 제 3 세계 지역에서 종족주의, 지역분쟁, 인구 증가, 초국적기업의 영향력증대로 불평등과 테러리즘과 범죄와 민족간 갈등이 갈수록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역들에서 점차 국가의 의미가 사라지면서 무정부상태로 역사가 퇴행한다는 것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의 기본적인 논리를 따르는 카플란의 주장은 떡 하니 튼튼한 국가가 자리잡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저 낯선 주장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해방이후 짧은 기간 무정부상태를 경험 한 한국으로서는 무정부상태의 논리보다는 유교의 강력한 국가원리가 더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현대를 사는 한국인들은 무정부상태를 넘어 위계적인 질서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무정부상태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관심을 가져 본 경험이 별로 없다.

카플란은 무정부상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폭력의 사용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보았다. 폭력과 갈등의 일상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더 큰 폭력이 필요하는 논리이다. 키신저가 이야기 했던 ‘미치광이이론’처럼 미치광이에 대해서는 설득이라는 유화정책보다는 더 강력한 권력으로 대처하는 강경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헌팅턴이나 후쿠야마라는 세계적인 학자가 아닌 저널리스트인 카플란을 꺼내든 이유는 지난 몇 일 사이에 인류가 경험한 비극적인 사건들 때문이다. 11월 13일 프랑스에서 벌어진 동시다발적 테러로 129명이 영문도 모르는 채 희생되었다. 6군데 이상에서 자살폭탄테러와 무차별총격이 가해졌다. 파리테러 이전인 10월 31일에는 러시아 여객기가 이슬람국가(IS)테러리스트들의 폭탄테러에 의해서 추락하여 224명이나 사망했다.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의 일부를 장악한 이슬람국가(IS)의 테러리즘은 미국을 넘어 유럽의 중심인 프랑스를 공격했을 뿐 아니라 푸틴의 러시아를 공격대상에 포함시켰다. 두 개의 커다란 사건은 테러리즘이 국적이나 정치적 이념과 관계없이 인류전체를 거대한 적으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난민으로 위장하여 테러범죄를 자행했다는 점과 이것을 십자군전쟁으로 묘사하면서 서구의 급진주의를 자극했다는 점에서 향후 더 큰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 테러리즘은 후쿠야마나 헌팅턴이 제시한 이념이나 문명이라는 거대한 잣대가 아닌 종교, 난민, 불평등, 종족주의가 어우러진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로버트 카플란의 잣대에 손을 들어준다. 무정부상태가 일상화된 아프리카의 음습한 분쟁상황과는 달리 현재 일어나고 있는 테러리즘은 기존의 강력한 중앙정부가 있는 지역을 무정부상태로 만들기 위한 도전이다. 또한 인류가 발전하기 위해서 만들어 가고 있는 위계질서인 중앙정부에 대한 도전이자 인류발전에 대한 모반이다. 그리고 9.11이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역사를 뒤집기 위한 반격인 것이다.

이번 테러사건으로 인류는 새로운 국면의 역사로 들어가고 있다. 인류전체의 공포심에 대한 선전포고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선전포고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역사적인 시험대에 선 것이다. 주체가 누구든 테러리즘의 본질은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심리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공포심에 대해 대처하는 인간의 다양성을 통해 공격받은 이들을 분열하게 만드는 것이다. 공포심에 굴복하여 테러리스트에 대해 관대할 것인지 아니면 공포심을 해결하기 위해 더 큰 폭력을 사용할 것인지를 두고 분열된 사회를 만들고 이들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테러리스트들의 승리를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번 테러를 보면서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강경한 군사대응을 통해서 악의 세력을 뿌리 뽑자는 공화당의 강경파논리와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불러오기 때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감정적이고 군사적인 논리를 자제해야 한다는 진보파 논리가 충돌하고 있다. 임기 말로 가고 있는 오바마 입장에서 새로운 개입을 꺼릴 수 밖에 없다는 점과 미국의 국내정치 구조에서 선거정치가 작동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 한 테러리스트들의 선제공격에 미국은 여지없이 분열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이번 테러에도 불구하고 난민정책의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독일식 대응도 있다. 시리아난민문제를 보편적인류애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독일의 메르켈 정부는 이번 사태를 이용해서 난민문제를 봉쇄하고자 하는 극우파들의 주장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하였다. 올해만 난민이 80만에서 100만에 가깝게 독일에 유입될 것이며 난민에 대한 예산이 대략 100억 유로로 우리돈 13조 2800억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경제사정이 좋지만 않은 독일입장에서 난민정책에 대한 국내적 비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유럽내 가장 적극적인 난민정책을 선택한 메르켈총리에 대한 정치적 반격을 강력하게 하고 있고 그녀에 대한 지지도 역시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난민들에 섞여 들어온 테러범들에 의해 벌어진 파리테러는 정치적으로 메르켈의 난민정책에 가해지는 강력한 카운터 펀치가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르켈 총리는 난민과 테러범을 구분하고 난민을 보호할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우리는 테러 희생자와 친척들에게 빚을 졌다"고 하여 테러범색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면서도 "우리는 동시에 안보에 책임이 있으며 전쟁과 테러리즘에서 도망친 죄 없는 난민들에 대해서도 빚을 지고 있다"고 하여 이민자를 여전히 보호할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이 아름다운 선택에도 불구하고 2017년 4선을 내다보는 메르켈총리의 정치적 미래에는 가장 위험한 도박이 시작되었다.

카플란의 무정부상태진입이란 경고등이 켜졌다. 악에는 더 큰 악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현실주의의 냉엄한 논리는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공포심을 해결하는 한 가지 지침을 준다. 한편으로 메르켈과 같은 분별력을 가진 지도자의 용기있는 행동은 막연한 적개심과 강력한 의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위기의 순간이자 리더십의 순간에 우리 인류는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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