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덕윤의 언어논리 이야기(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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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윤의 언어논리 이야기(16)
  • 문덕윤
  • 승인 2015.11.1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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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윤
베리타스 PSAT 언어논리 전임

합리적 비판 vs 비합리적 공격

누군가 나를 비판한다고 할 때 어떤 기분이 드는가? 솔직히 비판이 즐겁게 받아들여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머리로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생각에 상대방이 동조해 줄 때 심리적으로 안심이 되고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렇다면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할 대는 어떤 규칙이 필요한지 고민하는 것은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중요한 부분이다. 자기 생각이 받아들여진다는 생각이 들 때는 싸우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도 의견의 대립이 반복되면 감정이 상하고 싸움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감정이 좀 더 상하면? 그 때는 더 이상 얼굴을 마주 대하고 싶지 않게 된다. 대화가 끊어지는 것이다. 대화가 계속 이어지게 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싸울 것인지 규칙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의견의 대립이 사람이 미워지는 것으로 확장되는 일을 예방할 수 있다. 쟁점을 두고 다투는 것이지 네가 싫어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합의된 규칙이 필요하다.

다음 예제는 논증을 반박하는 방식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하나 반영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매력적 오답의 함정에 빠졌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의 정답과 매력적 오답을 비교해 보면 우리가 은연중에 생각하는 비판이 사실은 비합리적인 공격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럼 일단 문제를 풀어보자.

[예제] 다음 글의 핵심적 논지에 대한 반론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문덕윤 언어논리 모의고사)

하이에크는 1974년 경기순환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경기순환이론은 2008년의 금융위기를 조명하는 데 특히 유용하다. 루드비히 폰 미제스가 개발한 이론을 발전시킨 그의 연구는 경기 과열 및 붕괴의 뿌리로 중앙은행을 지목한다. 시장의 구석구석 어디에나 화폐가 존재하고, 그 화폐의 양을 중앙은행이 조절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자율에 대한 중앙은행의 개입이 중요한 원인이다.

이자율이 경기 조정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오직 이자율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유롭게 등락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런데 중앙은행은 이자율을 상하로 조절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낮추는 경우를 살펴보자. 인위적으로 낮춰진 이자율은 투자자들에게 그릇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소비대중이 현재의 소비를 줄일 의사가 전혀 없는 시기에 오직 먼 미래에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장기투자가 촉진된다. 낮은 이자율은 소비자가 더 적게 저축하고 지금 당장 더 많이 소비하도록 부추긴다. 이렇게 중앙은행의 인위적인 저금리 정책은 생산의 흐름을 지속 불가능한 방향으로 교란시킨다.

경제는 스스로가 지탱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장기 프로젝트들을 지탱할 수 있다. 이 때 이자율은 얼마나 많은 장기 프로젝트들이 수행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해 장기적으로 지원할 수 없는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시작되지 않도록 만든다. 인위적으로 이자율을 낮추면 더 많은 장기 프로젝트가 착수되나, 그에 필요한 실제 자원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미제스는 인위적으로 낮은 이자율이 유지되는 경제를 자신이 실제로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벽돌을 갖고 있다고 믿는 주택건축업자에 비유한다. 건축업자는 결코 지을 수 없는 엄청난 크기의 집을 짓기 시작하고, 이는 벽돌 부족으로 끝내 완공을 보지 못한다. 중앙은행이 경제를 팽창시킬수록 결과는 나빠진다. 현재의 고통이 잘못된 생산으로 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더욱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은 시장경제 자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진짜 원인은 시장 이자율보다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춘 FRB에 있다. 닷컴 거품의 붕괴를 모면하기 위해 전 FRB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은 수차례에 걸쳐 이자율을 낮췄고, 2004년 6월에 이자율은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인 1퍼센트까지 낮아졌다. 실업과 파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애초에 인위적인 벼락경기를 만들어내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통 역시 겪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비정상적 경기순환은 중앙은행이 일으키며, 중앙은행은 결코 자유시장에 속하는 제도가 아니다.

① 기업의 파산과 실업으로 인한 서민층의 고통을 과소평가한다.

② 경기 조절은 중앙은행의 존재 목적임에도 이를 불황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③ 경제 주체들의 비이성적 판단 때문에 시장 이자율 자체가 왜곡될 수 있다.

④ 하이에크 외에 다른 경제학자의 이론으로도 2008년 경제 위기를 설명할 수 있다.

⑤ 시장의 실패가 2008년 금융위기로 실증되었는데도 이유 없이 중앙은행 개입을 반대하고 있다.

정답이 몇 번이라고 생각하는가? 모의고사에서는 학생들의 반응이 2번 선택지와 3번 선택지로 거의 절반씩 나뉘었다. 심리적으로 그럴싸해 보이는 답이 두 개라는 뜻이다. 정답은 3번이다. 이 지점에서 학생들의 절반은 눈을 크게 뜨고 의아해 할 것이다. “어, 왜 2번은 정답이 아니지? 말이 되는 거 아닌가?”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말이 되냐고 반문한다면, 맞다. 2번은 상당히 그럴싸하고 상식적인 반응이다. 만일 이 문제가 객관식 시험이 아니고 지문과 같이 말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고 한다면 반론으로 가장 많이 나올 말은 2번일지도 모른다. 글쓴이한테 신나게 얻어맞았던 중앙은행을 편들고 있어서 대조적 견해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론을 위한 규칙이 필요하다. 그러면 좀 더 합리적인 반응을 할 수 있다.

반론을 위한 규칙

논증은 논지와 논거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비판적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두 가지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논지의 다양성은 수용해야 한다. 사람들 각자의 다른 생각은 다양성으로 인정하는 것이 민주적 관용이라는 정신에 부합한다. 둘째, 논거는 논지와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 논거가 논지와 얼마나 관련성이 있는가에 따라 논증의 개연성과 설득력이 달라진다. 비판을 할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논지”가 아니라 “논거”이다. 논지를 사람마다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거가 논지와의 관련성이 약하다는 점이 입증된다면 논증 전체의 합리성이 약화된다. 논지가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다. 다라서 우리가 누군가의 논증의 비판할 때는 그 사람이 어떤 논거를 제시했는지에 주목하는 것이 맞다.

그럼 이 기준으로 2번 선택지와 3번 선택지를 분석해 보자.

② 경기 조절은 중앙은행의 존재 목적임에도 이를 불황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 경기 조절이 중앙은행의 존재 목적이라는 것은 2번 선택지의 주장이다. 반대 주장인 것은 맞지만 글쓴이의 논거에 대한 공격이 없다. 그래서 단순한 논지에 대한 반대에 머물렀다.

③ 경제 주체들의 비이성적 판단 때문에 시장 이자율 자체가 왜곡될 수 있다.

: 글쓴이는 경제 주체들은 이성적 판단을 하는 합리적 주체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맡기면 시장 이자율이 경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제 주체들이 비이성적 판단을 할 여기가 있다면, 이들에게 맡겨 놓았을 때 이자율이 언제나 정확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보장이 사라진다. 글쓴이의 논증을 약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적했기 때문에 합당한 비판으로 인정할 수 있다.

기준이 보이는가? 합리적인 비판은 논지를 반대하는 데 집중하지 않고, 상대방의 논거를 쓰러트리는 데 주목한다. 내가 상대방의 논지가 틀렸다고 공격을 하면 상대방은 내 의견이 왜 틀리다고 하는 것인지를 찬찬히 검토하기 전에 감정적으로 반감부터 생길 것이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본인이 제시한 논거에 대해서는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반응이 나오든 감정적 격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에 다짜고짜 주장이 틀렸다고 받아치지 않고 논거가 가지고 있는 허점을 조목조목 짚어서 접근하게 되면 상대방 역시 본인이 제시한 논거가 설득력이 있는지 다시 검토하게 된 뒤, 반론자의 의견에 허점이 보인다면 재반론을 하거나 논거가 수용할 만하다면 주장을 철회하게 될 것이다.

오늘은 논증 평가 문제를 풀 때 꼭 기억해야 하는 기본 원칙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다음 회차에는 비판의 구체적인 전략들을 검토한 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요소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나머지 선택지들에 대한 설명까지 정리해 두었으니 출제자가 어떤 의도로 선택지들을 구성했는지 생각하면서 읽어보기 바란다.

정답: ③

① 글쓴이의 논지는 기업의 파산과 실업을 초래하는 불황이 별 거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라(글쓴이 본인도 파산과 실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글 속에서 밝혔다), 이는 어렵더라도 정상적인 경기 순환 과정에서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며, 이를 인위적으로 막으려다가는 더 큰 고통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② 글쓴이는 중앙은행이 인위적으로 경기 조절에 나서야 할 이유나 이를 위해 중앙은행이 당위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명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자유시장 경제에서는 시장에서 합리적으로 결정된 이자율이 자연스럽게 한 사회의 생산수준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이미 논증하고 있으므로, 이 선택지는 글쓴이의 핵심적 논지에 대한 반박으로는 적절치 못하다.

③ 정답이다. 글쓴이의 논지는 자유시장에서 결정된 이자율은 각 경제 주체의 이성적인 결정이 모여 만들어낸 합리적인 화폐의 가치이며, 이를 인위적으로 중앙은행이 왜곡함으로써 경제위기가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만약 각 경제 주체들의 비이성적인 판단으로 시장 이자율 자체가 합리적인 화폐의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면 중앙은행의 개입이 아닌 시장 자체의 실패가 경제 위기의 원인이라는 반박이 가능하다.

④ 글쓴이가 하이예크의 이론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논의를 전개시키지는 않았다. 지문에서 미제스를 찾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글쓴이의 논지가 하이예크의 설명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가 아니다.

⑤ 2008년의 금융위기의 원인 자체가 시장실패가 아닌 중앙은행의 인위적 개입에 있음을 글쓴이는 이미 논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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