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108 / 공시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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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108 / 공시가격
  • 이용훈
  • 승인 2015.11.0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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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공시(公示)’. 국가나 공공 단체가 일정한 사항을 일반인에게 널리 알리는 것을 일컫는다. 상장기업은 종종 특정사안에 대해 공정 거래와 투자자 보호 목적으로 증권거래소로부터 답변을 요구받는다. 주요 경영사항이나 그에 준하는 사항에 관한 풍문이나 보도가 있을 때 회사가 직접 입장을 밝혀야 한다. 해당기업에 치명적인 뉴스는 대개 한 주의 장이 마감된 금요일 저녁에 등장한다. 투자자를 우롱하는 늑장공시다. 주말 내내, 월요일 개장과 동시에 하한가로 곤두박질 할 것이라는 공포를 달고 살아야 한다.      

우리의 경우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을 발표한다. 이런 부동산 가격에 대한 공시시스템은 상당히 오래 전에 구축됐다. 다만, 중앙부처별로 각각 공시가격을 결정했다. ‘과세시가표준액’, ‘기준시가’, ‘기준지가’, ‘감정시가’를 발표·적용하는 부처가 달랐다. 통합 필요성이 제기됐고 89년 토지에 대해서는 공시지가로, 2004년 주택에 대해서는 주택공시가격으로 각각 일원화됐다. 주택은 다시 공동주택 공시가격과 단독주택 공시가격으로 구분 공시하고, 비주거용 부동산에 대해서는 기준시가가 발표된다. 이 공시가격이 바로 재산세 과표 기준이 된다.    

재산세1)는 지방세 중 구세(區稅) 및 시군세(市郡稅)이며 보통세다. 6월 1일 현재 토지, 건축물, 선박, 항공기의 소유자에게 부과되며 주택은 개별주택가격, 토지는 개별공시지가, 건물은 기준시가를 이용해 과표금액을 산정한다. 과표금액에 따라 세율이 다르고 합산과세대상 및 고급 주택 등에 대해서는 누진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 보유세율이 그리 높다고 볼 수는 없다. 예전부터 과세의 형평성이란 말이 등장할 때마다 ‘보유세의 현실화‘ 논의가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참여정부시절 보유세율을 외국 수준으로 맞추려고 정책드라이브를 걸었지만 목표했던 만큼 달성되지는 않은 듯싶다.

부동산 유형별로, 과표로 활용되는 공시가격의 현실화 정도가 다르다. 공동주택 공시가격의 현실화가 먼저 이뤄졌다. 거래량이 풍부해 가격파악이 용이했고, 공시가격을 계속 올려도 공동주택 가격이 꾸준히 올라 조세저항을 완화시킨 면이 크다. 토지와 단독주택 공시가격은 아직 이보다 낮은 수준이다. 지역별로 현실화율의 격차도 상존한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현실화율이 전국 평균에 못 미치는데, 공시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방보다는 수도권 중심으로 지가가 급등했으나 공시가격이 그 상승폭을 쫓아가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은 민원의 강도다. 수도권일수록 과표금액과 재산세 부담이 크다. 전년 대비 한 자리 수 상승률만 보여도 가계의 세 부담이 늘어난다고 항의전화가 빗발치고, 민원에 노이로제가 걸린 지자체 측에서 단계적인 공시가격 현실화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문제는 연차적으로 현실화시키기로 했음에도 다음 해에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며, 어느 해든 만족할 만큼 상향시키지 못했다는 데 있다.

공시지가와 단독주택 공시가격은 각각 표준지와 표준주택을 선정해 이들을 정밀 평가하고, 통계적인 방법을 활용해 그 주변 개별토지와 개별주택의 가격을 산정하고 있다. 감정평가 영역은 표준지와 표준주택 평가에 한정된다. 전국적으로 각각 50만 필지와 19만 여 호가 선정되며, 전자는 토지, 후자는 주택의 가격을 평가한다. 이들은 주변 토지와 주택을 대표하는 샘플이므로 표본이 갖춰야 할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가격 수준을 대표하면서 가격의 층화가 반영될 것, 이용 상황 등의 토지 및 주택 특성 빈도가 높을 것, 현 이용 상황이 안정적이고 장래 상당기간 지속될 것, 다른 토지나 주택과의 구분·식별이 용이할 것 등이다. 변동 사항이 발생하면 다른 샘플로 매년 교체할 수 있다. 일대 목조 주택이 대부분 철거되고 연와조 다가구 주택이 속속 들어섰으면, 목조 개별주택의 공시가격 산정을 위해 심어 놓은 목조 표준주택은 생명력을 다한다. 대표성도 없고 활용 가능성도 떨어지므로 자연스레 삭제되고, 연와조 주택 중 어느 하나가 표준주택으로 신설될 것이다.

표준지와 표준주택 가격이 결정되면, 매년 초 각 지자체별로 지적과와 세무과 공무원이 관내 모든 토지와 단독주택에 대한 개별공시지가, 개별 주택 가격 산정 업무에 착수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업무 자체도 적잖이 민감하다. 한 번 이 업무를 맡았다가 민원에 호되게 시달려 본 공무원은 과중한 부담을 느껴 이 부서로의 전출을 꺼려하기까지 한다.  

산정 업무를 개략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개별 토지와 개별 주택의 여러 물리적 특성과 공법상 제한 사항 등을 전산 프로그램에 정확히 입력해야 한다. 이어 감정평가사가 선정· 평가한 표준지와 표준주택에 개별 토지와 개별 주택을 잘 연결시켜 놓는다. 표준지(표준주택)와 개별 토지(개별주택)간 항목별 격차율2)은 토지(주택)가격비준표가 제공되므로 전산 프로그램의 몫이다. 그러나 공무원 두 세 명이 수천에서 수 만 필지를 다루니 오랫동안 업무를 담당해 왔어도 부주의 혹은 착오로 실수를 할 수 있다. 이 업무에 정통한 제 3자의 검토 필요성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표준지와 표준주택 평가를 담당했던 감정평가사가, 담당 공무원이 산정한 개별공시지가와 개별주택가격이 적정한 지 여부를 검증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검증 절차는 이렇다. 플로터를 활용해 해당 지역 내 표준지와 표준주택, 개별토지와 개별 주택을 표기한 도면을 출력한다. 도면에는 해당 연도 공시가격, 토지 특성, 건물 특성 등이 모두 기입돼 있고, 동일한 표준지와 표준 주택을 활용한 개별 토지와 개별 주택이 같은 색으로 덧입혀 있다. 구역 일대에 같은 표준지를 활용한 경우 바둑판식으로 색깔이 깔끔하게 채워져 있어 알록달록 예쁘게 보이기까지 한다. 이 도면은 숫자로 가득하다. 예컨대 토지 형상을 표기하는 위치에 네모반듯한 정사각형 모양의 토지는 1번, 가로 직사각형은 2번, 사다리형은 4번으로 정하는 식이다. 암호화된 문자는 해독 전문가만 식별할 수 있듯이 해당 도면은 담당 공무원과 감정평가사만 해석할 수 있는 ‘공시가격 점자’ 라고 말할 수 있다.

검증업무는 특성 입력의 정확성과 산정 가격을 검토하는 일로 요약된다. 이 때 ‘절대적인 금액’의 높낮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가격 수준은 이미 표준지와 표준 주택의 공시가격을 결정할 때 감정평가사가 고민했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구역별로 개별 토지, 개별 주택 공시가격이 ‘상대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가 검토 방향이다. 토지와 주택 소유자가 공시가격 절대 값이 올라 세 부담이 늘어나는 데 제기하는 민원만큼, 옆집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 합리적인 사유 없이 내 토지와 주택의 공시가격이 얼마라도 더 나왔을 때 민원의 강도가 높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옆에 붙어 있고 공법상 제한, 물리적 특성이 어느 하나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공시가격의 격차가 있다면 적용 표준지 또는 표준주택 선정의 오류일 수 있다. 옆에 비교하기 좋은 표준지(주택)를 놔두고 한참 멀리 떨어진 표준지(주택)를 갖다 써 버린 것이 대표적이다. 다행히 이런 오류는 손쉽게 확인된다. 같은 표준지(주택)를 활용한 개별토지(주택)를 동일한 색으로 입힌 도면을 쭉 살펴보다 보면 같은 색으로 채색되어야 할 가로(街路)에 홀로 다른 색깔이 칠해진 지점이 미숙함을 보완해 줄 곳이다. 혹은 토지나 주택 특성 항목 중 어느 하나를 잘못 입력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감정평가와 대량산정업무의 결과물인 공시가격은 현재 부동산 평가 및 과세에 있어 대체불가능한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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