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다원성 그 어려움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다원성 그 어려움
  • 신희섭
  • 승인 2015.11.05 1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많다. 특히 놀이터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첫 번째는 아이들 나름대로의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새로 온 아이가 무리에 섞이는 법이나 기존 질서를 깨뜨리는 경우에 처리하는 방법 등 아이들은 자신들의 질서와 규칙을 잘 만들어낸다. 그중에서 가장 눈여겨 볼 것은 다른 아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아이들은 나이 차이 등을 빨리 확인하고 그들의 놀이 문화속의 질서에 빨리 편입된다. 그리고 크게 문제를 일으키는 약탈적인 아이가 없는 경우 대부분에서 그들의 규칙은 준수된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에게는 개념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본능적으로 학습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원성(plurality)이다. 개념적으로 정리할 때 다원성이란 다양한 선호와 가치와 관습이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다름의 공존이다. 다른 것이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다.

다원성은 어른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니 아이들이 이 복잡한 개념을 학습하여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이들은 개념적 이해를 넘어 몸소 실천하면서 살고 있다. 놀이터에 있는 그네와 미끄럼틀이나 시소라는 ‘공유재(commons)’는 이 공간에 있는 아이들에게 열려있지만 누군가 사용하고 있을 때 다른 아이는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기구의 숫자보다 많은 아이들이 이 놀이기구들을 분쟁 없이 사용하려면 필시 양보가 있어야 한다. 양보는 자신이 선호하는 가치를 포기하고 상대방의 중요한 가치를 인정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편으로 자신이 원하는 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선호에 배치되지만 다른 아이가 선호하는 놀이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기 위한 양보와 좋아하는 것이 다르지만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다원성은 어른의 세계로 오면 개념적 이해는 늘어나지만 실천적 이해는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다름(difference)'에 대한 이해가 줄어들면서 자신의 가치를 강요하거나 상대방의 가치를 무시하는 경우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주장만을 하는 어른의 세계는 나이가 들수록 시끄러워진다.

서론이 길었다. 복잡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서론이 짧아야 하나 서론이 길어 이야기가 더 복잡해질지 모르겠다.

‘다원성’이라는 키워드가 현재 한국정치와 한국외교에 핵심으로 보인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과 한국의 미국-중국-일본사이의 외교 형국에서는 다원성의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다원성은 국내정치에서는 ‘다원주의(pluralism)’로 이론화 되어 있고 국제정치에서는 ‘다자주의(multilateralism)'로 체계화되어 있다. 용어는 다르지만 추구하는 방향은 ’다름에 대한 인정과 공존‘이라는 점에서 같다.

최근의 한국정치와 외교는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것은 다원성의 상실로 요약될 수 있다. 먼저 국내정치를 보자. 11월 3일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이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10월 30일 서울대학교에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역사학대회에서 보수단체회원들과의 몸싸움을 대표로 하여 진보진영의 반대촛불집회와 찬성집회가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고 충돌은 더 가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친일청산이나 과거 독재에 대한 평가는 한국에게 아픈 송곳이다. 그런데 과거와 함께 지금 살아있는 자들이 공존하는 역사를 정치에 중심에 세움으로서 정치는 분열의 정치가 되었다. 역사교과서 이슈는 다양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다원성 vs. 획일성’의 프레임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가능성과 좌편향된 인식의 개선을 위한 국가의 개입이라는 날 선 대립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다원성과 ‘관용’이 주된 정보화의 현대 시대적 변화 속에 이 정치적 대립은 한국의 시계를 뒤로 돌리고 있다.

다원성의 관점에서 본 외교에서 한국외교는 파도에 휘둘리는 돛단배와 같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별 경험이 없는 다극적 질서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우려하는 미-중 대립은 2010년 이후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으로 본격화 되었다. 미중간 갈등은 외교적으로 인도를 둘러싼 경쟁으로 대표되고 있고 경제적으로 TPP와 RCEP와 AIIB로 드러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은 인공섬을 설치하였고 여기에 미국은 10월 27일 미 해군 구축함 라센함을 중국이 만든 인공섬 수비환초 주변 12해리 안으로 진입시키면서 군사적인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보수적인 아베정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자신의 군사적 부담을 일본과 공유하고 있다. 지난 4월 개정된 미일방위협력지침에서 미국은 일본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미일동맹을 글로벌 동맹으로 승격시켰다. 일본의 역할강화는 일본의 국내정치와 맞물리면서 미-중간 경쟁구조뿐 아니라 중-일간 경쟁도 강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은 대만과의 관계에 획기적인 조치를 취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잉주 대만 총통과 11월 7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갖는 것이다. 이 정상회담은 중국과 대만으로 나뉜 뒤 66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 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다. 바쁜 행보 속에서 북한의 김정은도 시진핑과의 만남을 위해 분주히 노력하고 있다.

급박하게 진행되는 동북아의 정세 속에서 박근혜대통령은 9월 2일에 중국의 전승절 행사를 참석했다. 10월 16일에는 오바마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11월 1일 중국의 리커창총리와 일본의 아베총리와 함께 한중일정상회담을 가졌다. 11월 2일에는 아베총리와 한일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짧은 기간동안 화려하게 열린 정상회담들은 정상간에 대화를 하기 위해 만났다는 것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시진핑의 초대에 응했고 한국전쟁에서 싸웠던 중국군대의 열병식을 지켜보았다. 지정학적인 특수성에 기반한 한국의 어려움으로 주변국가들을 이해시킬 수 있었겠지만, 최근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한국의 ‘중국경사론’이라는 틀에서 볼 때 한국은 오랜 친구인 미국과는 멀어지는 모습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뒤에 이어진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박근혜대통령은 “한-미 동맹은 안보동맹과 경제동맹을 넘어, 포괄적 글로벌 동맹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어 오바마대통령은 “한-미 동맹은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전역에 걸쳐 평화와 안보의 린치핀(핵심축)이며 한국은 아시아 재균형이라는 미국의 목표에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중국경사론에 대한 한국의 거부이다. 미국에서의 두정상의 발언은 한국이 미국의 중국견제를 지지할 것이라는 상호양해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칫하면 중국의 등에 비수를 꽂는 일이다. 그것도 1달 만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박근혜대통령에게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그런 면(국제규범 준수)에서 실패한다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 술 더 떠서 11월 2일 아베총리는 한일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입장을 표명해달라고 했다. 이 부분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한국정부는 원칙적인 입장을 표명했지만 결국 11월 4일에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담(ADMM-Plus)에서 한국국방장관은 중국국방부장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남중국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항행·상공(上空) 비행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함으로서 미국의 편을 들어주었다. 미일간 교감에 비해 한국의 외교적 준비가 허술함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남중국해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대표되는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한국의 향후 고통이 얼마나 클지를 예상하게 한다. 한일정상회담의 소득이 적고 결국 미국의 압력과 일본의 체면만 살려준 것이 아닌가하는 비판이나 미중힘겨루기에서 한국의 외교가 어느 편에도 서지 못함으로서 모두에게 미움을 받을 수 있다는 비판은 그저 흘려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대통령과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다극화로 진행되고 있는 이 지역질서의 다자적인 질서를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 대해 역사문제를 우선하는 국내정치적 접근은 미일관계의 강화 속에서 한국의 입지를 약화시켰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우경화교과서라는 지역의 역사전쟁속에 한국은 민족주의를 모호하게 이용하여 대처했고 이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꺼내 들어서 이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여지가 생겼다. 적과 동지를 구분해야 하는 국제정치의 룰과 대화와 타협의 국내정치 룰이 혼동되면서 한국정치는 국내 국제 양쪽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 다원성.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공유될 수 있는가를 구분해내는 다원성이 리더십의 요체라는 것을 매우 값비싼 비용을 들이면서 한국은 지금 배우고 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