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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8(작가 이수광)
이수광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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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30  16: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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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70년, 명성황후 시해 120년 - 다시쓰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

연재순서 : 1.조선의 마지막 왕비,2.왕이 되고 싶은 사나이,3.여걸의 탄생4.감고당의 천재 소녀 5. 조선의 국왕 6.천하를 손에 넣다 7.도끼와 작두로 다스리라 8.경복궁에 이는 풍운

   

대조전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여 왕대비 순원왕후가 신왕을 지명하는 자리였다. 왕좌를 비워두고 그 앞에 순원왕후와 신정왕후, 그리고 지아비인 헌종이 죽어 망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효정왕후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손자를 잃고, 아들을 잃고, 지아비를 잃은 여인들이었다. 여인들의 얼굴이 눈물로 퉁퉁 부어 있었다.

그들 앞에는 3품 이상의 조정 대신들과 사왕(嗣王, 후계자)의 자격이 있는 흥인군 이최응, 흥선군 이하응, 완창군 이시인을 비롯하여 왕실의 멀고 가까운 친척들이 시립해 있었다. 대신들과 종친들도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왕이 죽었으니 슬프지 않아도 슬퍼해야 하고, 눈물이 흐르지 않아도 통곡해야 한다.

한여름이었다. 날씨는 아침부터 후텁지근하고 더위로 부풀어 오른 공기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뜨거웠다. 이하응은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대비들의 눈치를 살피느라고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을 여유도 없었다.

‘왜 이렇게 빨리 사왕을 지명하려는 거지?’

이하응은 순원왕후가 왕이 죽자마자 후계자를 결정하려고 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대궐은 어젯밤부터 비상이 걸려 있었다.

헌종이 위독해지자 순원왕후가 재빨리 옥새를 취하고 왕궁에 계엄령을 내렸다. 내금위 갑사들이 대궐을 삼엄하게 에워싸고 도성에는 군사들이 4대문에 배치되었다. 도성 안에서 군사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이하응은 바짝 긴장했다. 왕이 위독해지면 종친들이 모두 대궐로 들어가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대궐 문이 굳게 닫혀 있어 구중궁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대궐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라.”

이하응은 천하장안(千河張安)에게 지시했다. 천하장안은 이하응이 거느리고 있는 시정의 무뢰배들로 천희연, 하정일, 장순규, 안필주를 일컫는 것이었다.

“금상전하께서 위중하다고 합니다.”

천하장안이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숨이 차게 달려와서 고했다.

“어디서 그 말을 들었느냐?”

이하응은 가슴이 철렁하여 장순규에게 물었다.

“김좌근 대감의 하인들에게 들었습니다.”

“또 들은 말은 없느냐?”

“금상이 왕대비에게 옥새를 바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김좌근은 어디에 있느냐?”

“왕대비전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수고했다. 네가 아주 중요한 정보를 듣고 왔구나.”

이하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수원 유수인 김좌근이 대궐에 들어가는 것은 온당치 않다. 수원에 있어야 하는 그가 임지를 떠나 입궐해 있다면 무언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하응은 임금이 순원왕후에게 옥새를 바친 것이 아니라 순원왕후가 탈취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안필주, 너는 완창군 이시인의 집을 살피거라. 수상한 일이 있으면 즉시 나에게 알리도록 하거라.”

“완창군 이시인이요?”

“그에게 여덟 살짜리 아들이 있다.”

“예.”

안필주가 머리를 바짝 조아렸다.

“천희연!”

“예.”

천희연이 눈알을 데룩거리면서 앞으로 나섰다.

“김좌근이 멀리 강화도에 갔다가 왔다는데 누구를 만나고 왔는지 알아보거라.”

“예.”

천희연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임금이 위태로운데 종친에게 알리지도 않다니…….’

이하응은 눈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안동 김문의 김좌근이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하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리.”

천희연은 밤이 늦어서야 돌아왔다.

“김좌근 대감이 강화에서 어떤 초가집에 들렀다고 합니다.”

“초가집? 누구의 집이라고 하더냐?”

“누구의 집인지는 모르겠고 김좌근이 다녀간 뒤에 강화부에서 그 집을 호위한다고 합니다.”

“그래?”

이하응은 무엇인가 석연치 않았으나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

“날이 밝으면 네가 강화에 가서 누구의 집인지 알아보거라.”

이하응은 천희연에게 지시하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김좌근 같은 인물이 강화도를 다녀왔다면 무엇인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강화부가 초가집을 호위하는 것도 기이한 일이었다. 초가집에 누군가 중요한 인물이 있다고 생각했다.

‘초가집에 대체 누가 있는 거지?’

이하응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새벽녘에야 간신히 잠이 들었다.

“도정궁은 조용합니다. 오가는 사람이 전혀 없습니다.”

이튿날 아침 안필주가 달려와서 고했다. 천희연이 강화로 떠나고 대신들이 대궐로 입궐하고 있다는 소식을 하정일과 안필주가 가지고 왔다.

‘금상의 명이 경각에 달렸구나.’

이하응은 비로소 헌종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강화에 왕의 후계자가 있는 것인가?’

이하응은 종친들을 대부분 알고 있었으나 강화도에 누가 사는지는 알지 못했다.

헌종은 6월 9일 오시에 유언을 남기지 못하고 창덕궁 중희당에서 승하했다. 이하응에게는 그때서야 대궐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복이 없구나.’

아하응은 이미 사왕이 결정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왕이 죽었으니 종친의 신분으로 대궐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서둘러 대궐로 들어가 중희당 앞에서 곡을 하고 있는데 대신들과 종친들은 인정전으로 모이라는 순원왕후의 하교가 내렸다.

“망극한 일을 당했으니 원로대신이 국정을 맡아야 할 것이오.”

순원왕후는 헌종의 장례 기간 동안 국정을 책임질 원상에 권돈인을 임명했다.

‘안동 김씨가 원상이 되지 않아 다행이다.’

이하응은 원상에 권돈인이 임명되자 자신도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아들은 일곱 살이다. 순원왕후가 지명을 하면 임금이 되고, 그는 살아 있는 대원군이 될 것이다.

“신들이 복이 없어 하늘이 무너지는 변을 당하니 애통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것은 신들의 죄입니다.”

원상 권돈인이 소리 내어 울었다. 권돈인을 따라 대비들도 일제히 소리를 내어 울었다.

“신들이 의지하는 것은 오로지 왕대비마마입니다.”

판부사 정원용이 아뢰었다. 이하응은 대신들을 따라 통곡하는 시늉을 하면서 대신들 뒤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김좌근을 살폈다. 순원왕후의 뒤에 모사꾼 김좌근이 있다고 생각하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종사의 대계는 한시가 급하니 하교를 내려주십시오.”

좌의정 김도희가 아뢰었다. 사왕을 지명해달라는 뜻이다.

“여기에 문자로 쓴 것이 있소. 사왕은 이 사람으로 할 것이오.”

순원왕후가 소매에서 언문교지를 꺼내 권돈인에게 내렸다. 권돈인이 언문교지를 보고 이어 정원용과 대신들도 보았다.

“춘추가 어찌 되십니까?”

권돈인이 교지를 보고 순원왕후에게 물었다.

“열아홉 살이오.”

순원왕후가 김조순 쪽을 보면서 대답했다.

‘열아홉 살이라면 누구지?’

이하응은 새로운 왕이 19세라는 사실만 알 뿐 이름과 출신을 알 수 없었다. 뒤에 서 있던 대신들과 종친들이 일제히 웅성거렸다. 순원왕후의 눈이 빠르게 대신들을 훑었다.

“종사를 이을 일이 시급한데 영조의 핏줄은 금상과 강화에 사는 이원범뿐이다. 은언군의 아들 전계군의 셋째 아드님이다.”

순원왕후가 하교를 내리자 이하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비로소 김좌근이 임지도 아닌 강화부에 다녀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김좌근은 헌종의 후계자를 결정하기 위해 강화부를 다녀온 것이다. 그는 강화부에서 이원범을 만났고 순원왕후에게 이원범을 천거한 것이다.

‘김좌근은 무서운 인물이다.’

이하응은 김좌근이 뱀처럼 사악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대비인 신정왕후와 효정왕후가 은밀하게 완창군 이시인의 아들 이하전을 신왕으로 옹립하려고 했던 일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하응은 이하전이 신왕으로 옹립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한 가닥 희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어린 아들 이재면이 신왕으로 옹립되기를 은근하게 바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영조의 혈손이라는 말이 가슴을 비수로 찌르는 것을 느꼈다.

은신군과 은언군이 모두 사도세자의 아들이었으나 은신군은 후손이 끊겨 인평대군의 6대손이 양자로 들어가 남연군을 낳았다. 남연군의 아들인 이최응과 이하응은 영조의 혈손이 아닌 것이다.

“왕실의 어른인 왕대비께서 사왕을 정하니 만백성의 복입니다. 속히 사왕을 맞이해 오라는 영을 내리소서.”

권돈인이 순원왕후에게 청했다.

“봉영하는 의절(儀節)은 전례에 따라 거행하라.”

순원왕후가 강화도에 가서 새 왕을 맞이해 오라는 영을 내렸다.

“이제 하교를 받자옵건대, 종사의 후계자가 이미 정해졌으니, 아주 경사스럽고 다행한 일입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신왕이 서무(庶務)를 밝게 익히는 방도는 오로지 왕대비마마께서 수렴청정하여 이끄시는 가르침에 달려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빨리 전교를 내려 뭇사람의 여망에 답하소서.”

좌의정 김도희가 아뢰었다. 김도희의 말에 이하응은 다시 한 번 김좌근을 쏘아보았다. 김좌근이 김도희의 입을 빌려 순원왕후를 정치의 전면에 내세우려고 하고 있었다.

“신왕은 나이가 20세에 가깝고, 나는 나이가 60세를 지나 정신이 혼미하나 나라의 일이 지극히 중요하니 애써 따르겠다.”

순원왕후가 부득이 수렴청정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역시 김좌근의 음모야. 왕이 즉위하기도 전에 수렴청정부터 결정하니…….’

김좌근은 신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수렴청정으로 권력을 장악하려는 것이다. 수령첨정을 청하면 한두 번 사양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순원왕후는 냉큼 받아들이고 있었다. 순원왕후가 김좌근의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봉영하기 전에 병조, 도총부의 당상, 낭관이 삼영문의 군교(軍校)를 거느리고 먼저 가서 호위하라.”

순원왕후가 영을 내렸다. 이에 병조에서 군사들을 거느리고 신왕을 호위하기 위해 강화도로 달려갔다.

“봉영하는 대신으로는 정원용 판부사가 가라.”

판부사 정원용에게 신왕을 맞이해 오라는 영을 내렸다. 순원왕후의 목소리에는 어느 사이에 대신들을 압도하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봉영하는 승지로는 도승지가 가라.”

홍종응 도승지에게도 강화도로 달려가라는 영을 내렸다. 이하응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 순원왕후는 수원 유수인 김좌근을 병조판서에 제수하여 병권을 장악할 것이다.

   
도서출판 북오션 : 자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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