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7(작가 이수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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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7(작가 이수광)
  • 이수광
  • 승인 2015.10.2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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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70년, 명성황후 시해 120년 - 다시쓰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

연재순서 : 1.조선의 마지막 왕비,2.왕이 되고 싶은 사나이,3.여걸의 탄생4.감고당의 천재 소녀 5. 조선의 국왕 6.천하를 손에 넣다 7.도끼와 작두로 다스리라 8.경복궁에 이는 풍운

도끼와 작두로 다스리라

어디선가 피비린내가 역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잠시 주위가 조용했다. 궁녀들은 모두 고개를 돌리고 흐느껴 울고 있었다. 낭인들도, 순사들도 궁녀들을 구타하다가 말고 미야모토 소위를 쳐다보았다.

‘나는 대일본제국 육군 사관이야. 너희 같은 낭인 무리들과는 질이 달라.’

미야모토 소위는 잠시 얼이 빠진 듯한 낭인들을 향해 차가운 웃음을 날려 보냈다.

‘저자는 궁내부대신!’

그때 양복을 입은 조선 사내 하나가 옥호루의 동쪽 방으로 황급히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미야모토 소위는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이었다. 양복을 입은 사내는 궁내부대신 이경직이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훈련대 교관으로 있으면서 이경직을 몇 번 본 일이 있었다.

“서라!”

미야모토 소위는 이경직을 향해 후닥닥 달려갔다. 이경직이 있는 곳에 조선의 왕비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아귀처럼 달려가자 궁녀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궁내부대신! 왕비는 어디에 있소?”

미야모토 소위는 이경직에게 피에 젖어 번들거리는 군도를 겨누었다. 이경직이 들어가려는 방에는 궁녀들이 넷이나 있었다.

“모른다. 중전마마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이경직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떠올랐다.

“비켜라!”

“안 된다! 여기는 지엄한 궁궐이다! 일본국 군대는 난입할 수 없다!”

“왕비가 누구인지 말하라!”

“모른다!”

“그대는 궁내부대신이 아닌가? 궁내부대신이 왕비의 얼굴을 모른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모른다!”

“이 방에 있는 궁녀들 중에 왕비가 있지 않은가?”

“너는 일본군의 일개 사관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침입하여 소란을 피우는가? 미우라 공사에게 엄중하게 항의하겠다!”

그때 미야모토 소위의 등 뒤에서 나카무라, 데라자키, 하리야마 같은 낭인들이 사진을 들고 달려오면서 소리쳤다.

“여우다!”

경복궁에 침입하기 전에 미우라 공사는 왕비의 사진을 낭인들에게 일일이 나누어 주었다.

“조선 왕비가 저기 있다!”

미야모토 소위는 다급해졌다. 잘못하면 일본 본국에서 하릴없이 정쟁이나 벌이고 있는 국권당과 자유당의 낭인들에게 조선 왕비를 살해할 절호의 기회를 뺏길 판이었다.

“물러서라!”

미야모토 소위는 군도를 겨누고 낭인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조선의 여우는 천황폐하의 군대가 잡는다!”

미야모토 소위의 살기 띤 고함에 낭인들이 주춤했다. 게다가 낭인으로 변장한 미야모토 소위의 부하들이 순식간에 마루 위로 달려 올라가자 그 기세에 눌려 뒤로 물러났다.

“궁내부대신, 비켜라!”

미야모토 소위는 이경직을 향해 군도를 겨누고 소리를 질렀다.

“안 된다!”

이경직이 완강하게 버티었다.

“요시!”

미야모토 소위는 짧은 기합 소리를 내뱉으며 이경직의 오른쪽 팔목을 향해 군도를 힘껏 내리쳤다.

쉬익!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리면서 이경직의 오른쪽 팔목이 군도에 의해 싹둑 잘렸다. 궁녀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이경직이 끙 하는 신음을 내뱉었다. 이경직의 잘린 팔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마룻바닥이 금세 선혈로 가득해졌다.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죽는다!”

미야모토 소위는 다시 흉악한 눈빛을 번뜩이며 군도를 치켜들었다.

“이놈!”

이경직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며 왼팔로 미야모토 소위를 막아섰다. 무모한 짓이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이경직을 쏘아보며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띠었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근육이 푸르르 떨렸다.

“핫!”

미야모토는 또다시 짧게 기합을 내뱉고 이경직의 왼팔을 잘랐다. 이경직이 외마디 신음을 터트렸다. 궁녀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거나 외면을 했다. 어떤 궁녀는 벽에 얼굴을 기대고 흐느껴 울었다. 그러나 이경직은 양팔이 모두 잘렸는데도 눈을 부릅뜨고 미야모토를 쏘아보고 있었다.

‘무서운 놈!’

미야모토 소위는 소름이 오싹 끼쳤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격렬하게 뛰었다. 마룻바닥은 이미 이경직이 흘린 피로 흥건해져 있었다.

‘좋다!’

미야모토 소위는 권총을 뽑아 이경직을 향해 겨누었다. 이경직이 비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입에서는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은 이미 몽롱하게 풀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이경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이경직의 몸이 풀쩍 뛰어올랐다가 쓰러졌다.

“어리석은 놈!”

미야모토 소위는 낮게 뇌까렸다.

‘왕비가 누구지?’

이경직이 쓰러지자 미야모토 소위는 가쁜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었다. 궁녀들이 방구석으로 몰려가 몸을 떨고 있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이경직의 시체를 넘어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왕비인가?’

미야모토 소위는 걸음을 멈추었다. 궁녀들 중에 섞여 있던 한 여인이 그를 물처럼 고요한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바짝 긴장했다. 여인은 궁녀들과 똑같은 평복을 입었으나 은연중 귀인의 풍모를 풍기고 있었다. 검고 윤이 나는 머리카락과 진주분으로 성적(成赤, 화장)을 한 얼굴빛이 창백했으나 기품이 있었다. 눈은 차고 날카로웠다.

‘조선의 왕비가 틀림없어.’

여인은 자신의 눈앞에서 궁내부대신이 피를 흘리며 죽었는데도 전혀 두려운 빛을 보이지 않았다. 조선의 왕비가 여걸이라는 말이 한성에 거류하는 일본인들 사이에 파다하게 나돌던 것을 미야모토 소위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린 듯이 고운 눈썹과 추수(秋水)처럼 깊고 맑은 눈, 희디흰 살결, 도화처럼 붉은 입술……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몸이 고고하기까지 했다.

미야모토가 멈칫하고 있는 틈을 타서 조선의 여인이 재빨리 마루로 뛰어나갔다. 궁녀들도 황급히 여인의 뒤를 따랐다.

“여우가 도망간다!”

낭인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러댔다. 미야모토 소위는 비호처럼 몸을 날려 여인의 어깨를 낚아챘다. 다급했다. 여인은 걸음이 빠르지 못했다. 미야모토 소위가 어깨를 낚아채자 옷자락에 걸려 마룻바닥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자 궁녀들이 일제히 여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베어라!”

호리구치가 소리를 질렀다. 낭인들이 궁녀들에게 달려들어 일본도를 휘둘렀다. 궁녀들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고 피를 뿌리며 죽어갔다.

“얏!”

미야모토 소위는 몸을 날려 마룻바닥에 쓰러진 여인의 가슴을 구둣발로 밟고 군도를 복부에 힘껏 내리찍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여인의 복부에 군도가 깊숙이 박혔다.

“헉!”

여인이 입을 벌리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두 손으로 미야모토 소위의 군도를 움켜잡았다. 여인의 손바닥이 갈라지면서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여우를 잡았다! 내가 조선의 왕비를 죽였다!”

미야모토 소위는 군도를 뽑아들고 맹수처럼 포효했다. 여인의 복부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그러자 낭인들이 와하고 함성을 지르며 여인에게 달려들었다.

“세…… 세자야…….”

여인이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여인의 눈에서 분노와 슬픔이 가득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쩌면 고통 때문인지도 알 수 없었다. 여인이 군도를 움켜쥐고 있던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여인의 하얀 옷이 피로 흥건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흥! 아직도 죽지 않았다는 말이지?’

미야모토 소위는 팔다리를 경련하는 여인을 내려다보며 잔인한 웃음을 띠었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여인의 복부를 군도로 힘껏 내리찍은 다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낭인들이 앞을 다투어 여인에게 달려들어 난도질을 했다. 난도질을 하는 낭인들 중에는 데라자키도 보이고 니카무라도 보였다.

여인이 언제 숨이 끊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낭인들이 여인의 몸에서 향낭을 빼앗고 노리개를 훔치느라고 한바탕 법석을 떨고 물러나자 미야모토 소위는 다시 한 번 여인을 들여다보았다. 여인은 잠이 든 듯 숨이 끊어져 있었다.

‘아아 내가 조선의 왕비를 죽였어.’

미야모토 소위는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조선의 왕비를 죽였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전율하고 있었다.

  도서출판 북오션 : 자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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