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5(작가 이수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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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5(작가 이수광)
  • 이수광
  • 승인 2015.10.0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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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70년, 명성황후 시해 120년 - 다시쓰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

연재순서 : 1.조선의 마지막 왕비,2.왕이 되고 싶은 사나이,3.여걸의 탄생 4.감고당의 천재 소녀 5. 조선의 국왕 6.천하를 손에 넣다 7.도끼와 작두로 다스리라 8.경복궁에 이는 풍운

조선의 국왕

‘아…….’

홍계훈은 참담했다. 그에게 총을 쏘고 있는 이는 말을 탄 일본군 장교 구스노세 중좌였다. 광화문 양쪽 가로에 도열해 있던 훈련대가 홍계훈을 알아보고 주춤했다. 그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그때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포성이 들려왔다. 병사들이 갑자기 우왕좌왕하면서 사방으로 달아났다.

“병사들은 대궐로 진입하지 마라!”

홍계훈은 말을 탄 일본군 구스노세 중좌를 쏘아보며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구스노세 중좌가 그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홍계훈은 구스노세 중좌를 노려보았다. 홍계훈은 순간적으로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하는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탕!

홍계훈은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뜨거운 것이 가슴을 꿰뚫고 지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화끈하면서 눈앞이 아득해져왔다. 복부에서 뜨거운 것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아 내가 여기서 허무하게 죽다니…… 중전마마를 도와야 할 텐데…….’

홍계훈은 복부를 움켜쥐고 땅바닥으로 뒹굴었다. 그때 와하는 함성이 들리면서 일본군 수비대가 광화문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귓전으로 연달아 포성이 들리고 병사들을 질타하는 일본군 사관의 외침, 말발굽 소리, 영문도 모르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조선군 훈련대 병사들의 소리가 귓전으로 웅웅거렸다. 그는 눈을 감았다. 평생을 걸쳐 모신 한 여인의 얼굴이 망막에 희미하게 어른거렸다.

‘중전마마…….’

홍계훈은 입술을 달싹거려 겨우 외쳤다. 가슴속에서는 무엇인가 계속 콸콸대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중전마마…….’

망막에서 여인의 얼굴이 꽃잎처럼 부서져 흩어졌다.

“연대장님이 일본군의 총에 맞았다!”

뒤이어 훈련대 병사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홍계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느새 광화문 위의 하늘이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

현흥택은 국왕과 왕비에게 일본군의 침입을 보고한 뒤에 달음질을 쳐서 추성문으로 달려갔다. 이학균의 보고대로 추성문 밖에 일본군 수비대 병사 40~50명이 총검으로 무장하고 도열해 있었다.

“듣거라! 너희들은 무엇을 하는 무리냐?”

현흥택이 호통을 치자 그들은 일제히 담벼락 아래로 몸을 숨겼다. 대꾸는 전혀 없었다.

“이놈들, 대궐에는 무엇하러 왔느냐?”

현흥택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들의 군복을 살피자 일본군이 분명했다. 현흥택은 일본군을 보자 비장한 기분이 들었다. 왕궁시위대가 전투력이 막강한 일본군을 격파하는 것은 역부족일 것이다. 이럴 때 신식군사 훈련을 받은 훈련대가 합류해준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다.

‘저놈들이 기어이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구나.’

현흥택은 전신이 팽팽하게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놈들이 드디어 왕궁으로 쳐들어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현 부령, 시위대 전 병사에게 교전 준비를 하라고 하시오!”

미국인 다이 장군이 다른 곳에 척후병을 보낸 뒤에 현흥택에게 달려와서 말했다. 다이 장군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예.”

현흥택이 대답을 했다. 시위대 병사들은 모두 숙소에서 달려 나와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시위대 병사들은 20명씩 나뉘어 각 궁궐문으로 집결하라! 왜인들이 쳐들어오려고 한다!”

현흥택은 시위대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예!”

병사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때 척후병들이 돌아와 일본군 수비대 옆에 조선군 2백 명 정도도 함께 있다고 보고했다. 조선군은 훈련대를 말하는 것이다. 훈련대가 시위대를 돕지는 못할망정 일본군에 가세했다고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조선의 훈련대가 일본군 편이 되었다는 말인가?’

현흥택은 절망감이 엄습해왔다.

“전투 준비!”

현흥택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왕궁시위대 병사들이 전부 죽는다고 해도 일본군과 싸워야 할 것이다.

“전투 준비!”

부관이 현흥택의 명령을 복창했다. 병사들이 일제히 총을 움켜쥐고 대궐 밖을 노려보았다.

새벽 5시경이 되자 광화문 쪽에서 먼저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춘생문과 추성문 쪽에서도 총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춘생문은 경복궁의 동쪽에 있고 추성문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었다. 그와 함께 일본군과 훈련대 병사들이 대궐을 향해 새카맣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격 개시!”

현흥택이 명령을 내렸다.

“사격 개시!”

병사들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총소리가 새벽공기를 찢으며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일본군들이 황급히 담 옆으로 붙어 서며 반격을 해왔다. 교전은 치열하게 계속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시위대가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현흥택은 다이 장군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고 건청궁 수비에 나섰다.

그때 광화문이 일본군 수비대에 점령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러나 현흥택은 시위대를 광화문으로 파견할 수 없었다. 야간 당직 시위대 군사가 소수라서 광화문, 영추문, 춘생문, 추성문 등 광범위한 대궐을 수비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국왕이 거처하는 건청궁 수비가 다급했기 때문이다.

시위대는 2개조로 나뉘어 일본군 수비대와 격렬한 총격전을 벌였다. 현흥택은 시위대 군사들을 독려하여 신무문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맞섰다. 전투는 치열했다. 시위대는 얼마 되지 않는 병사들로 배수의 진을 치고 일본군 1천여 명과 맞서 총격전을 벌였다. 현흥택도 직접 일본군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어명이오!”

현흥택이 시위대를 독려하여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을 벌이기 시작한 지 30분도 되지 않았을 때 건청궁에서 오일호 내관이 황급히 달려왔다.

“현 부령은 사격을 중지하시오. 어명이오!”

현흥택은 어리둥절하여 오 내관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오?”

“전하께서 일본군 수비대에 감금당했소.”

“뭐요?”

현흥택은 가슴이 철렁했다. 건청궁에 있는 국왕이 일본군 수비대에 감금당했다면 전투는 하나 마나인 것이다. 현흥택은 천 길 벼랑으로 추락하는 듯한 아득한 절망감을 느꼈다.

“전하께서 볼모로 잡히셨소.”

오 내관이 울음을 터트렸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다는 말이오? 어찌하다가 전하께서 볼모가 되셨소?”

현흥택은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본군이 불경하게도 전하를 위협하고 있소. 사격을 중지하시오!”

현흥택은 맥이 풀렸다. 왕궁시위대가 국왕을 보호하지 못한 탓이었다. 아아 그런데 어느 틈에 일본군이 건청궁까지 침입했다는 말인가? 일본군이 침입해 올 만한 길목에 병사들을 배치하여 치열하게 교전을 벌이던 현흥택은 참담했다.

“사격 중지!”

현흥택은 시위대 병사들에게 사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사격 중지!”

병사들이 그의 명령을 복창했다.

“사격 중지!”

왕궁시위대가 사격을 중지하자 일본군도 사격을 중지했다.

‘아아 참으로 통탄할 일이로다!’

현흥택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빠가야로!”

일본군이 총을 버리는 왕궁시위대 병사들에게 달려와 발로 걷어차고 개머리판으로 후려치며 무장을 해제하기 시작했다.

조선의 국왕은 그때 비참한 처지에 몰려 있었다. 작전이 개시되자마자 춘생문을 통해 벌떼처럼 몰려들어온 일본군 수비대는 단숨에 건청궁을 에워싸고 시위대의 무장을 해제해버렸다. 그들은 무엄하게도 국왕의 어깨를 흔들며 왕비의 소재를 말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다. 불경스러운 짓이었다. 그들의 사나운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아아, 왜인들이 또다시 대궐을 침범하다니 하늘이 무심하구나.’

국왕은 일본군이 총을 겨누자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세자, 세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국왕은 경복궁이 일본군에 점령되자 왕세자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일본군과 함께 조선군 훈련대 병사들 40여 명이 건청궁에 들어와 도열해 있는 것이 보였다.

‘저놈은 훈련대 대대장 우범선이 아닌가?’

국왕은 훈련대 대대장 우범선이 병사들을 거느리고 서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왕세자 척도 곤경을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군 수비대는 왕세자 척을 잡아 관을 찢고, 상투를 쥐고 흔들며 왕비의 소재를 자백하라고 강요했다.

“왕비는 어디에 있나?”

“모른다.”

그들은 왕세자가 자백을 하지 않자 칼등으로 마구 후려쳤다. 왕세자는 비명을 지르며 혼절했다. 다음은 궁녀들 차례였다. 일본 낭인들이 칼을 휘두르며 건청궁으로 난입하자 궁녀들은 비명을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왕비가 어디 있는지 말하라. 말하지 않으면 죽인다.”

낭인들은 궁녀들까지 마구 폭행하면서 왕비의 소재를 추궁했다. 그러나 궁녀들은 일본군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발길에 차이고 칼등에 얻어맞으며 울부짖기만 할 뿐이었다. 술에 취한 일본 낭인들은 그 와중에도 궁녀들을 희롱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궁녀들은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며 울부짖었다.

국왕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목불인견의 참상에 몸을 떨면서 눈물을 흘렸다.

도서출판 북오션 : 자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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