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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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의 의미
  • 안혜성 기자
  • 승인 2015.09.25 11:3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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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영화를 오래 전에 아주 재밌게 본 적이 있다. 동명의 유명한 책을 영화화한 것인데(원래 책보다 라디오 쇼로 먼저 탄생했다) 지구가 갑자기 멸망하고 운 좋게(?) 살아남아 우주를 떠돌게 되는 지구인과 그의 친구들이 겪는 모험을 그린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대개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으로 우수한 생명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그것이 인간의 어리석은 오만이라고 지적한다. 혹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영화에서 말하는 첫 번째로 우수한 생명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겠다. 

그렇다면 인간이 두 번째 자리는 차지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인간은 두 번째 자리에도 오르지 못했다.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지적인 생명체는 바로 돌고래다. 돌고래들은 지구 멸망의 위험을 감지하고 인간들에게 신호를 보냈지만 인간들은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물고기를 얻기 위해 묘기를 부리는 줄로만 안다. 결국 멸망이 임박하자 돌고래들은 ‘안녕,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라는 노래와 함께 마지막 쇼를 화려하게 보여주고 우주로 날아간다(사족이지만 당시 극장에서 이 노래와 쇼가 끝나는 순간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심지어 영화 도입부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지구는 무엇 때문에 멸망했을까? 우주 공간에서의 초고속 이동을 위한 도로(정확한 용어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를 만들기 위해서다(아, 결국 스포일러가 되고 말았다. 혹시 아직 영화나 책을 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독자들이 있다면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어느 날 갑자기 상공 위에 정체불명의 우주선단이 나타났다. 그것만으로도 지구가 한바탕 뒤집힐 일인데 이 우주선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우주에서의 초고속 이동을 위한 도로의 건설을 위해 지구를 폭파시키게 됐다고. 당연히 인간들은 항의를 한다.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아우성을 친다. 외계인은 사무적인 대답을 남기고 예정대로 지구를 폭파시켜 버린다. 

그 외계인이 남긴 말은 바로 이것이다. “여기서 몇 광년 밖에 떨어지지 않은 블라블라(물론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행성에 50년 동안이나 게시를 해 뒀는데도 알아보지 않은 너희들의 나태함이 잘못이다.” 그렇다. 바로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는 금언을 이야기한 것이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 학과 공부는 등한시하고 놀기에만 바빴던, 속칭 ‘먹고대학생’이었지만 그래도 이 말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 말은 독일 법학자 예링이 ‘권리를 위한 투쟁’이라는 저서에 사용한 것으로 흔히 ‘자신의 권리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사용된다. 별다른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이 말이 최근에는 조금 다르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말은 법의 비정함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법적 정비가 제대로 이뤄져 있지 않아 권리를 지킬 수 없거나 주변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로스쿨에 진학할 형편이 안 되는 고시생들이 법조인이 되고자하는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그들에게 “법이 충분히 시간을 주었는데 아직까지 합격하지 못한 스스로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지구를 폭파시킨 외계인들과 무엇이 다른가. 더욱이 이들은 우회로 마련의 문제는 현재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 뿐 아니라 앞으로 법조인이 되고자 하는 잠재적 수험생들의 권리와도 관련이 있다는 점을 도외시하고 있다. 기자는 누구나 스스로의 선택과 노력으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반드시 사법시험일 필요는 없지만 현재의 로스쿨 제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사법시험을 폐지하면 로스쿨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의 권리보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구를 폭파시키고 고속도로를 만들면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구를 보호할 이유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지구는 그 자리에 놔두고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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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무현 2019-10-25 13:08:57
알맹이가 쏙빠져있는 느낌이네요

ㅎㅎ 2015-09-27 20:05:24
6년..몇 광년 옆의 행성에 게시해두었던 모양이군요!

ㅇㅇ 2015-09-26 21:54:03
가슴에 와닿는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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