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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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 신희섭
  • 승인 2015.09.2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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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박근혜 대통령이 병사들에게 선물을 준비했다고 한다. 지난 8월 북한 도발에 단호함을 보여준 병사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원사 이하 56만 장병들에게 격려카드와 특식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이슈는 두 가지로 해석되었다. 첫 번째는 대통령이 ‘하사’했다는 점과 두 번째는 이 돈이 어디서 나올 것인가이다. 첫 번째 이슈는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태도와 용어사용을 문제삼았다. 두 번째는 대통령이 청와대예산이 아니고 국방부의 예산을 사용한다는 것이고, 국방부의 불용예산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폼은 대통령이 다잡고 지불은 세금인 국가예산을 쓴다는 것이다.

내용을 조금 들여다보아야 이번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결정의 취지는 이렇다. 청와대가 9월 20일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박근혜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단호히 대응한 장병들의 노고와 애국심, 충성심을 치하하는 뜻”에서 장병들에게 특별휴가와 특식·격려카드 하사를 결정했다고 한다. 북한의 목함지뢰 설치와 도발 뒤에 보여준 우리 군 장병들의 침착한 대응과 이후 추가도발가능성을 두고 전역을 연기하면서까지 보여준 투지를 정부가 격려하겠다는 취지이다. 결정과정은 대통령과 청와대가 지난 8일 특별휴가와 특식과 격려카드를 전달하기로 결정했고, 이틀 뒤인 10일 군 당국은 이 결정사항을 하달받았고 이것을 예하 부대에 전파로 이루어졌다.

결정과정 외에 실제 이 결정이 어떤 자금출처에서 집행될 것이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따져보면 다음과 같다. 대통령의 ‘통큰’ 선물을 집행할 자금은 청와대 예산이 아닌 국방부예산중에서 나온다. 국방부의 ‘불용예산’이라고 하는 예산책정이 되었으나 사용하지 않은 자금을 가지고 집행하게 된다. 그런데 이 불용예산이라는 것은 12월 예산집행이 끝이 나야 사용할 수 있을지를 알 수 있다. 청와대가 잡은 실제 예산은 재판이후 집행해야 하지만 올 해 집행되지는 않을 듯한 ‘군소음피해배상금’에서 나온다. 문제는 회계연도가 끝나지 않은 자금을 미리 끌어다 쓴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결정에 따른 비용은 12억 원 정도 된다. 예산중에서 1/4정도는 인쇄비에 쓰일 것이다. 1박 2일 특별휴가증과 대통령명의의 격려카드를 찍어내는 데에 3억 3천만정도가 책정되었다. 이 돈을 제외한 예산이 특식제공에 사용될 것이다. 군에 전달되는 정례화된 명절특식에 더해져서 대통령의 특식이 돌아가는데 특식의 내용물은 김 스낵, 멸치스낵, 약과가 될 것이라고 한다. 56만 명의 장병에게 8억 7천만원을 나누면 개인당 돌아가는 특식 비용은 1,554원 정도로 추산된다.

대통령의 결정과 결정내용에 대해 비판들이 날아온다. 창군이래 최초로 전장병에게 격려를 보낸다는 취지와 달리 격려가 마치 대통령의 ‘용단’과 개인적인 ‘하사’로 치장되어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분위기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비판점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사’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과 이런 인식 자체가 권위주의시대를 못 벗어났다는 점과 예산의 출처를 보면 국민들 세금인데 마치 대통령이 사비를 들여서 쓴 듯이 선전했다는 점과 실질적으로 큰 혜택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을 너무 과도하게 선전한다는 점과 내년 총선에서 지지율을 관리하기 위한 한시적 정치카드라는 점과 자금 사용에 있어서 효과적이지 않다는 점 등이 제시되었다.

한 국가의 군통수권자로서 위기 상황을 헤쳐나온 병사들을 독려하는 것은 정치적 판단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들에서의 준비부족이 비판의 타깃이 되었다. ‘하사’라는 단어의 활용보다는 ‘하사’를 생각하는 인식이 구태의연하다는 점과 대통령주변 참모들이 이러한 인식에 기반해서 문제를 단순하게 풀어갔다는 점이 비판의 요지로 보인다.

이 사안은 대통령의 결단을 두고 몇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먼저 여성대통령이라는 측면이다. 북한 도발이라는 위기 국면을 헤쳐가고 위기 국면이후 사후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여성대통령이라는 특성이 작동하여 이전 대통령들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을 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성으로서 군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아버지를 보좌했던 경험을 살려야 하고 전임정부의 북한도발에 대한 대처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결정과정에서 참모들 중에 누가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하였거나 세심한 주의를 요구했을까 하는 점이다. 만약 주변 참모들이 해바라기처럼 대통령 결정을 그저 추인하거나 칭송하기만 했다면 대통령의 인식과 결정에는 잠깐의 쉼표와 호흡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은 결정의 자체에 무게를 두면서 세부적인 내용과 절차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이 과정은 리더십을 돋보이게 하기보다 주변 추종자들에 의해서 다듬어져야 할 리더십을 단순화시켜버린다. 리더의 ‘결정’을 뒷받침해줄 과정에서의 힘이 없게 된다. 단순하게 말해서 추종자들이 리더를 망치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특식’의 ‘하사’라는 이벤트는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화두이다. 앞서 본 몇 가지 제기되는 비판들은 정치적인 결정의 문제라기보다는 행정적인 절차에 관련된 것들이다. 대통령이 사용하는 예산의 출처와 처리방식은 세부적으로 다듬으면 될 일이다. 대통령이 군의 사기 진작과 관련되어 공적인 용도로 자금을 쓰는 일이니 그것이 세금으로 사용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단 정치적 결정 뒤에 올 정치적 반대를 미리 짚어보지 못한 부분이나 준비부족은 대통령의 결단을 빛나게 해야 할 참모진의 몫이다.

이 보다 중요했어야 하는 것은 리더십이 작동할 때 리더 개인이 강조하는 가치가 무엇인가와 그 가치가 어떻게 시민들에게 전달되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지도자가 젊은 장병들의 용기를 칭찬하고 그 용기에 힘을 불어넣겠다고 하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며 물질적인 보상을 뛰어넘는 명예와 관련된 것인지를 사회에 전달해야 한다. 지도자는 가장 중요한 교사이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시민들에게 국가를 위한 헌신 뒤에 가질 수 있는 뿌듯함을 칭찬함으로서 시민들이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충성을 키우고 그 취지를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이슈에서 아쉬운 점은 창군 이래 처음이라는 대통령의 결정이 사회적논의과정에서 시민들에게 정확히 전달될 수 있게 세부적인 안까지를 잘 다듬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치학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리더십은 양면적인 존재이다. 중요하기에 분석이 필요하지만 쉽게 단언하기 어렵고 변화무쌍한 카멜레온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런 사안들을 보면서 떠올리게 되는 것, “그래서 리더의 자질은 무엇인가?”이라는 질문에 쉽게 일반화된 답을 내리기 어렵다.

리더의 자질이 무엇인가는 리더십에 관심을 가진 사람을 마치 ‘무지개를 쫗는 아이’처럼 만든다.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리더에 대한 요구가 시대마다 국가마다 그리고 그 국가사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다르다. 이것은 움직이는 표적지를 향해서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리더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비유된다. ‘orchestrate’라는 단어는 과거 그리스 시대 무대에 있던 원형 공간에서 하던 음악을 지휘하는 말에서 유래했다. 그날 공연의 성패는 악기들을 잘 조율하고 지휘하는 지휘자에 달려있다. 정치학의 금언은 여기서도 통한다. ‘좋은 지도자가 좋은 국가를 만들’ 듯이 좋은 지휘자가 좋은 공연을 만드는 것이다. 몇 십 개의 악기 각각의 음색을 듣고 그날 그날 연주자들의 컨디션을 보면서 개별적인 연주자의 연주 속에서 전체적인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국가의 지도자에게 기대되는 리더십이기도 하다.

그런데 훌륭한 지휘자는 훌륭한 연주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 좋은 연주자는 좋은 지휘자의 필요조건이다. 지도자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참모가 좋은 지도자를 만든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대공황이라는 터널을 나오게 한 루즈벨트와 같은 지도자도 그의 지도력이 빛을 발휘하게 하기 위해서는 결정에 무게를 실어줄 수 있는 유능한 참모들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좋은 지도자가 좋은 참모를 가려내고 좋은 참모로 훈련을 시킨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의 책임이 지도자에게 돌아가는 이유이다. 리더십이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은 리더와 추종자를 엮어두고 있는 이 ‘뫼비우스의 띠’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이 한국정치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공존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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