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105 / 감정평가업계에 대한 ‘단상’(斷想)
상태바
감정평가 산책 105 / 감정평가업계에 대한 ‘단상’(斷想)
  • 이용훈
  • 승인 2015.09.18 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용훈 감정평가사 

연예뉴스만큼 가벼운 기사가 있을까. 깃털 정도의 무게도 아니다. 연예인의 신변잡기 소개는 이미 도를 넘었다. 그들의 일상을 중계하는 걸까. 특정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주기적으로 노출되면 드라마, 영화, 새 음반 출시를 예감한다. 물의 빚은 연예인의 자숙기간이 다 채워졌다 싶으면 ‘군불’기사가 하나 둘 얼굴 내민다. 연예기사의 현 주소다. 그러나 못마땅한 건 이들 연예통신만이 아니다. 

전문기자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여전히 공부하고 나온 기사 비중은 미미하다. 시간이 없을 것이다. 양질의 기사도 중요하지만 기사의 양도 채워야 하는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 그래도 베껴 쓰는 기사가 너무 많다. ‘넓고 얕은 지식’이 전부는 아니다. 심층 취재가 품은 들지언정 사회 토양을 살찌게 한다. 혹 시사주간지의 설 틈을 마련해 주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하면 할 말은 없다. 한 종편 뉴스는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꼭지를 배치했다. ‘사실’을 밝히기 위한 노고가 기자의 확신에 찬 발언에 묻어난다. 매일 이 정도 품질을 유지하려면 아마 종일 매달렸을 것이다. 

기사 제목은 기사 내용을 칼질했을 때 남는 뼈대다. 무난한(?) 제목은 외면받기 십상이니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인 게 현실이다. 요 근래 등장한 ‘민간 감정평가 72% 부실’이라는 기사 제목도 같은 반열이다. 그 내용은 기자보다 필자가 더 정통할 것이니 ‘팩트체크’ 한 번 해보고 싶어 집어 들었다.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최초 보도 이후 베껴 쓴 모든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2012년 이후 감정원이 민간 감정업체를 대상으로 시행한 감정평가 적절성 여부 조사결과 현재 진행 중인 9건을 제외한 총 44건 중 부적정 11건, 미흡 12건, 다소 미흡 9건 등 32건(72.72%)이 부실감정’이다. 이들 부실감정에 대한 징계가 솜방망이라는 부연설명도 있다. 

열에 일곱이 부실하다. 그것도 전문직 종사자의 결과물이. 기사 작성하기 좋고 활용하기도 편하다. 후속 조처에 방점 찍어 연재도 가능할 터. 부실 평가 사례 서너 개만 취합해도 지면 채우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어떤 기사도 ‘72%’ 결과물이 도출된 과정을 취재하지 않는다. 44건 중 32건이 미흡하니 분석의 필요성이 없는 걸까. 그래서 서두에 베껴 쓰기 기사를 탓했던 것이다. 일간지 기자라면 최소한 도입부가 휑하다고 느꼈어야 한다. 

국토부가 감정평가업계의 관리감독기관이니 제출 자료의 신빙성은 논란이 없다. 어쨌든 44건에 대한 정식 조사도 있었고 32건이 ‘적정’ 판정을 비껴갔다. 일단 두 어 가지만 살펴보자. 먼저, ‘다소 미흡’은 좀 애매하다. 결과에는 아무 영향이 없지만 약간의 부족함이 있다는 표현이다. 보험사에게는 고객이 상품 가입 전 상품 설명 의무가 부과되는데, 이를 안내하는 설계사의 말이 빠르거나 사투리가 심해 알아듣기 힘들었으면 가입 안내 설명이 ‘다소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고객이 상품 가입을 판단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이를 ‘부실 응대’라고 단죄하기는 지나치다. 다소 미흡만 ‘부실’ 집계에 빠져도 당장 수치는 50% 전후로 낮아진다. 

‘팩트체크’의 본론은 표본인 ‘44’건에 있다. 감정평가 적절성 조사 기간 첫 해인 2012년 민간 감정평가기관의 감정평가 건수는 39만을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5년 국감 전까지만 취합해도 100만 건을 훌쩍 넘을 것이다. 표본 수가 0.0044%에 불과하다. 계량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표본비율에 못마땅하겠지만 일반인들에게 그것까지는 논외로 하자. 과연 표본 44건의 추출 기준은 뭘까. 임의추출 방식이라면 과소한 표본이지만 그 결과물은 의미가 있다. 그런데, 원래 문제 소지가 다분한 44건의 선별 추출이었다면 표본은 모집단을 대표하지 못한다. 

검찰이 제보 받는 모든 건을 조사할까? 투서든 고발장이든 내용물을 검토해보고 수사를 착수한다. 무혐의로 결론 날 때도 있지만 단서를 포착할 수도 있다. 칼을 빼들었다가 밸 곳이 없어지니 ‘별건수사’니 ‘표적수사’니 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타당성 조사도 정상적인 평가보고서를 왜 뒤지겠는가. 사회적 문제가 돼서 국토부의 직권으로 조사할 때도 있다. 이해당사자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당사자 누군가가 시시비비를 가려 달라 타당성 조사를 의뢰할 때도 있다. 그 말을 뒤집으면 조사 모집단에 포함되지 않은 대부분의 감정평가는 문제의 소지가 없게 된다. 이때의 기사제목은 ‘민간 감정평가 99.56% 적정’ 또는 ‘민간 감정평가 오류 제로 수준’으로 잡아야 할 것이다. 

샘플이 대표성을 띠는지 못지않게 자료제공자의 조력자가 의도를 갖고 이를 편집했는지도 확인할 사항이다. 이런 문제가 불거지면 당연히 논의는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라’로 귀결된다. 관리감독자가 그럴 여력이 없으면 이를 대행할 기관이 얼굴을 내민다. 감정원이 그 해답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건 아닐까. 그러나 밥그릇 때문에 민간 이양 업무를 제때 넘기지 못하고 차일피일 눈치 보며 붙잡고 있는 감독기관 희망자의 변명도 들춰봐야 하는 것 아닌가. 

비위, 비리, 범법 이런 용어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어디일까. 과연 전문직 중 청정지역이 있을까. 그러나 업계만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 발뺌할 수 없다. 개인의 직업윤리에 맡겨서 될 일은 아니다. 업계 내 일부 함량미달 평가사가 있는 건 부인하지 않는다. 얼마 전, 한 소송에서 피고 측 변호사가 의견서에 원고가 추천한 소송 감정인 기피 신청 사유를 적었는데, 여러 번의 부실감정으로 업무정지 경험이 있고 뇌물 수수 전력이 있어 신뢰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가관이다. 그 정도 화려한(?) 이력이면 감정평가사 등록 자체를 막았어야 하지 않을까. 국민의 상식 수준에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징계를 더 엄격히 하는 것에 동의한다. 다만, 징계 청원을 할 수 있는 기관이 감정평가업계의 경쟁자가 돼서는 안 되지 않을까. 감정원이 그간 수차례 심판 기능만 집중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인터뷰용에 그칠 뿐, 후속 조처는 실망스럽지 않았던가. 

국감 때마다 등장하는 ‘부실 감정평가’ 지적에 감정평가사 모두가 사회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 응당, ‘제 식구 감싸기’ 행태를 벗어버려야 한다. 위법, 부실 평가에 대한 더 강도 높은 징계 조치 역시 수용해야 한다. 업계는 부실평가의 근원지가 대부분 업무 유치에 대한 치열한 경쟁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용직도 아닌 전문직이 부실 평가의 사유를 ‘생계문제’로 돌리는 것 역시 우습지 않은가.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