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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시리아 난민과 “대한민국 청년 난민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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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시리아 난민과 “대한민국 청년 난민세대”
  • 오시영
  • 승인 2015.09.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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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2015년 세계는 난민의 시대이다. 대한민국도 역시 난민의 시대이다. 시리아 난민 사태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수천 명의 시리아 난민이 지중해 파도에 휩쓸려 죽어도 꿈쩍하지 않던 인류의 양심이 지난 2일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짜리 어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세뉴의 사진 보도로 비로소 꿈틀거리며 뒤늦게 사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수 천 명이 지중해에 빠져 죽은 그 이전의 수많은 비극 앞에서도 꿈쩍 않던 유럽인의 양심이 세 살짜리 한 어린 아이의 비참한 주검을 직시하고서야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죽은 이가 어린 아이여서? 이미 죽은 수천 명의 난민 속에도 아일란 셰뉴보다 더 어린 아이도 있었고, 노약자와 임산부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 한 아이의 죽음이 이렇게 세계인의 양심을 강타한 것은 해변가 모래사장에 너무나 평화롭게 잠자듯 죽어 있는 그 아이를 찍어 보도한 한 장의 사진의 위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일란 셰뉴의 주검을 찍어 보도한 닐류페르 데미르는 해변가에서 아일란의 주검을 보는 순간 그 아이의 “소리 없는 비명”을 사진으로나마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고, 정치적 이해타산에 골몰하던 유럽의 정치가들과 저 멀리 미국과 남미의 정치가의 심금을 울리고 굳어진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니, 사진 한 장의 위력이 크기는 크다. 시리아 난민사태의 시작은 40년이 넘게 부자세습독재체제를 이어가고 있는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독재정치에서부터 시작된다.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잔인성이 세상에 충격을 주고 있지만 알 아사드 대통령 부자의 시리아 독재정권은 올 들어 7월까지 IS가 죽인 시리아인 1천131명보다 7배나 많은 7천894명을 죽였다고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 인권네트워크”가 밝혔다. 합법적 정부가 합법을 가장하여 너무나 많은 자국민을 죽인 것이다. 이념이 다르다고 서로를 죽였던 6ㆍ25전쟁 이후의 대한민국이 연상되어 오는 장면이기도 한다. 시리아 국민 중 소수에 속하는 시아파 출신의 알 아사드 대통령은 자신에게 반대하는 다수의 국민 수니파를 억압하기 위하여 독재정치를 하고 있고, 이에 대해 국민 다수를 점하고 있는 시아파가 저항하는 과정에서 시리아 내전 사태가 격화되어 시리아인의 난민사태가 폭발하고 있다. 2010년 12월 이래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 즉 중동의 봄사태로 인해 알제리, 바레인, 이집트, 이란, 요르단, 리비아 등지에서 독재에 항거하는 반정부시위가 일어났고, 그 중 일부는 성공하였으나 대부분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시리아는 그 여파로 5년 넘게 내전 중이다. 

특히 반정부사태에 무력으로 잔인하게 대처한 알 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에 대해 반정부세력이 무력으로 무장하게 되면서 사태는 겉잡을 수 없는 사태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 시리아 내전사태라고 할 수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국민 상호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져 정보 공유가 가능해짐에 따라 독재자에 대한 반정부활동이 더욱 원활하게 추진된 결과가 이런 비참한 주검의 상태로 결과지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는 독재자에게 인간이기에 저항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루소와 장쟈크의 계몽시대로 올라가지 않더라도 인간이라면 천부인권을 누릴 권리와 자유가 있다. 어느 정치가도 이를 억압하여서는 아니 되며, 그러한 억압의 독재자에 대하여는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는 수많은 희생과 피의 대가가 요구된다 할지라도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그러한 대가의 과정을 거쳐서 민주주의가 획득되었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정부라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국민의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이를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정부는 제대로 된 정부라고 할 수 없고, 국민은 저항권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찌 되었든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부자의 40년이 넘는 독재세습정치도 이제 곧 종료될 것이다. 시리아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고조될수록 그의 독재정치는 일찍 끝나게 될 것이다. 독재자가 제대로 된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고,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무장세력화한 반군이 승리할지 아사드 대통령의 독재정부군이 승리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알 아사드 대통령은 승리해도 독재자일 뿐이고, 패배하면 더 확실한 독재자로 처형될 뿐이다. 역사는 그러기에 무서운 심판자인 것이다.

시리아 난민의 엑소더스를 보면서, 필자는 왜 자꾸 대한민국 20대 청년들이 연상되는지 모르겠다. 소수의 정치권력을 거머진 알 아사드 대통령과 시리아 난민의 엑소더스는 정치권력과 이에 핍박받는 백성의 관계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불과 5%도 되지 않는 재벌로 상징되는 거대기업군과 이에 억압받는 수많은 청년실업층, 비정규직근로자 등이 대립하고 있다. 과학문명의 발달은 사람의 일자리를 더욱 줄일 것이다.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로봇의 등장은 공장에서 사람을 쫓아낼 것이고, 전쟁터에서 군인을 쫓아낼 것이다. 모든 것이 로봇과 드론으로 상징되는 자동화된 기계장치들이 인류의 노동력을 대체하고, 소수의 기계조작자들과 그들을 통제하는 해더들의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나머지 95%의 사람들은 그냥 시킨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고, 남는 시간은 그냥 게임을 하거나 티비를 보거나 노래를 듣거나 낮잠을 자거나 하면서 살 것이다. 

어찌 보면 30년 후의 세상은 인간 게으름의 최대 종합시장이 될지도 모른다. 소수자가 모든 것을 다 하고, 그들이 독재권력을 돈으로, 먹을 것으로, 입을 것으로, 즐길 것으로 행사하고 시혜를 베풀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것에 만족하며 게으른 향락에 빠져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저항이라는 단어를 상실한 채, 체제에 길들여진 순한 양들이 되어 조지 오웰의 1984년, 동물농장에서 배부른 돼지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이 세상을 방치할 수 없다는 대한민국 청년 난민의 일대 저항운동이 벌어지지 않을까 기대되면서 우려스러운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시리아 난민들도 자국 내에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었을 것이다. 그러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되어 국외탈출을 시도하고 세살배기 아일란 세뉴처럼 어느 해변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나타날지도 모르고, 운 좋게 살아남아 난민수용소에 수용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청년들도 지금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고 있는 중이다. 취직이 되지 않아도 모두가 제 탓인 양, 어찌 보면 쓸모없을지도 모르는 스펙쌓기에 열중하며, 오늘의 최종절망선고를 내일로 미루면서 스펙이 조금 더 쌓이면 길이 열리리라라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오늘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펙쌓기라는 도피구마저 없다면 그땐 엑소더스의 출대한민국을 감행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 시리아 난민처럼 우리의 젊은이들이 중국으로 탈출하겠는가, 일본으로 탈출하겠는가? 결국 그 분노의 최종 목표는 황금곳간을 걸어잠근 대기업과 자본가들을 향할지도 모른다. 필자는 그런 사태가 도래할까 봐 두렵다. 시리아난민처럼 대한민국청년난민이 대한민국 내에서 양산되어 도로를 점거하고 기업을 점거하고, 사회를 점거하고, 국가를 점거하게 될까 두렵다. 아니면 무기력 자포자기상태에 빠져 “난민선언”를 스스로 내리고 무력해질까 또한 두렵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분노를 폭발하고 사회변혁을 주장할 수 있다면 그들의 원동력을 통해 사회발전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고, 국가 전체로 봐서는 다행일지도 모른다.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고, 분노를 통한 자기 발전의 기회를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젊은이들이 스스로 “난민선언”을 하고 “모든 것을 가진 당신네들이 책임”지라고 자포자기상태에 빠지게 된다면 이는 시리아난민사태 이상으로 두려운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지금도 취업포기상태의 젊은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3포세대라는 말이 오가더니 어느새 5포를 걸쳐 7포세대라는 신조어가 일반화되어가고 있다. 연애, 결혼, 육아 포기의 3포세대,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 포기의 5포세대에 이어 꿈과 희망마저 포기하는 7포세대가 언제 “난민세대”라고 선포할지도 모른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신조어가 확산되고 있다. 오죽하면 흙수저빙고게임이라는, 가난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조건을 25개의 빙고판에 집어넣어 맞추어나가다 가로 세로 5칸의 빙고판에 5개의 조건어가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일직선이 되면 “나는 흙수저!” 하고 자조하는 놀이다. 슬픈 현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시리아난민사태는 40년 넘는 알 아사드 대통령 부자의 세습독재정치의 산물이다. 대한민국 7포세대의 양산, 곧이어 나타나게 될지도 모르는 “자포자기의 난민세대”는 탐욕스런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정신의 부재에서 오는 탐욕의 산물이다. 하지만 시리아난민사태가 비극이지만, 아직 시리아에서는 독재권력을 타도하겠다는 반군의 저항이 치열히 전개되고 있다. 반군의 저항이 치열하면 할수록 알 아사드 정부군의 반격 또한 치열해져 그 양쪽 치열성의 피해가 고스란히 난민으로 나타나고 있다. 만일 시리아반군의 승리가 이루어진다면, 그리하여 그 나라에 독재권력이 사라진다면 수많은 시리아난민은 스스로 조국땅으로 돌아갈 것이다(필자의 이런 생각이 순진한 것일 수도 있다, 난민으로 시작한 시리아인들이 유럽등지에서 정착에 성공할 수 있다면 그들은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설사 반군이 승리한다 하더라도 그들 역시 체제 유지를 위해 또 다른 독재정치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리아 내전 사태에 수수방관했던 유럽과 미국 등 여러 선진국들은, 어쩌면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그 전쟁을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어느 한 쪽에 무기를 공급하면서 보이지 않는 이득을 얻고,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중동국가의 불안한 정정을 이용하여 자국의 외교적, 경제적 이익을 챙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결과가 자신들이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국경선의 경계 마지노선이 무너지고,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는 시리아난민 앞에 속수무책이 되어버린 아이러니로 유럽의 정치가들의 입맛이 씁쓸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미리 좀 손을 쓸 걸, 미리 좀 적은 관용을 베풀어 이러한 사태를 사전에 막을 걸 하고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리아난민사태는 좀 더 확대될 것이다. 계속해서 유입난민은 늘어날 것이다. 어디 시리아뿐이겠는가? 그 인근국가들의 난민도 덩달아 증가할 것이다. 유럽은 그들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차라리 소극적 수용의 난민대책에서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적극적 육성정책을 도모하는 것이 보다 더 피해를 줄이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좋은, 선한 방법을 쉽게 쓰지 못하는 것이 정치가의 딜레마일지도 모른다.

어디 난민이 시리아에만 있는가? 대한민국에는 난민이 없는가?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목구멍에 풀칠할 정도의 생계비를 받아 희망 없이 꿈도 없이 스스로 칠포세대라고 자조하며 버티고 버티다가 “나? 난민이야, 아무 것도 안 해, 당신들이 책임져!” 하며 스스로 난민세대라고 선포하는 세상이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이제 가진 자들이 탐욕을 자제하고,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험한 세상이 되는 것을 방치하지 말고, 국가가 앞장서서 정책과 법률을 통해 바로잡는 콘텐츠 개발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한민국 정치가들에게 어디 그런 올바른 정신이 있겠는가? 더욱 더 편가르기에 골몰하여 시리아반군과 정부군처럼, 대한민국반군과 대한민국정부군으로 나뉘어 정쟁만 일삼지 않을까?

청년들이여, 힘을 모으고, 지혜를 모으고, 난민세대가 되는 것을 스스로 막으라. 스스로 개척하지 않으면, 용기를 내지 않으면, 그대들은 머지않아 난민세대가 되고 말 것이고, 저 자본으로부터 배제된 황량한 벌판에, 자갈밭, 가시밭길가에 세 살짜리 아일란 세뉴처럼 한 장의 사진으로 찍힐지도 모른다. 아무도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들 뭉쳐 그대들의 스펙을 최대한 활용하여 분화구를 폭발시켜라. 내일을 향해 정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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