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57) - 변신, 불안 그리고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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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57) - 변신, 불안 그리고 행복
  • 차근욱
  • 승인 2015.09.0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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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처음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을 때, 불쾌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주인공 ‘잠자’의 모습은 리얼할만큼이나 바퀴벌레를 연상시켰기 때문에, ‘잠자’가 움직이는 모습이 바퀴벌레의 모습 하나 하나를 제법 떠올리게 해 읽는데 꽤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잠자의 그 애닯은 마음 한구석이 가슴까지 와 닿았기 때문에 안스러운 마음 또한 책을 읽는 내내 계속되었다.

‘변신’은 제법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었고, 읽고 나서의 그 불편한 기분을 떨치려는 듯 다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랐다. 정말 뜬금없이 스프링이 상사에서 갑자기 튀어 나오듯 오랫동안 생각지도 않았던 ‘변신’이 떠올랐다. 그리곤 알랭드 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알랭드 보통은 ‘불안’에서 이렇게 말한다. ‘불안이란, 현재의 지위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내 기억이 틀릴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바에 의하면 보통은 불안을 그렇게 정의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과연...’이라고 생각했다. 불안이란 말 그대로, 잃을 것이 두려운 마음일지도 모르겠다는 실체적 감각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가을이 다가오는 여름의 끝자락이라서 그런지, 감정적으로 뭔가 예민해지기도 한다. 저녁에는 선선하니 밖을 걷고 싶기도 하고, 아침엔 밝아오는 하늘을 보면서 달리고 싶어지기도 하고. 작은 말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작은 일들에 울적해지기도 한다. 계절 우울증은 어쩌면 이렇게 뜬금없이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동안 작은 무력감에 시달렸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현재진행중 인지도 모른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들 하지만, 우울한 마음과 무력감에 힘겨워 하는 데에 남자와 여자가 어디 따로 있던가. 차라리 가을은 우울의 계절이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자살률이 가장 높은 봄은 자살의 계절이라고 부르게 될지도 몰라서, 가을을 그냥 남자의 계절이라고 돌려말하는 것이려나.

‘잠자’는 자고 일어나니 흉악한 해충이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로 카프카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원하지 않았던 변신은 어쩌면 현재의 지위를 잃어버린, 불안의 이후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절망이 되고 어쩌면 현실과 초현실의 갭을 만들어 내는 것일지도. 가을은 어쩌면 이런 극적 계절변화에서 불안을 유발하는지도 모른다.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던 더위도 갑자기 세상의 모든 색이 변하면서 시원해지기 시작하는 변화. 그리고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며 덧없음과 불안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원하지 않았던 변신의 존재는, 그래서 사람을 극단적인 불안으로 내몬다.

현재의 지위를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 그 불안의 실체. 알랭드 보통의 ‘불안’을 읽고서 들었던 생각은, 그 심리적 기저를 밝히기 위해 애써준 수고에는 깊이 감사했지만, 결론으로서 새롭게 도전하라는 제언에 대해선 조금 떨떠름했다. 도전이, 어디 그렇게 불안하지 않던가.

보통의 말은 이렇다. 쉽게 말해, 차 떼고 포 떼고 다 떼어 놓고 간단히 말하자면, 불안은 기존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삼을 때 발생하는 것이므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면 불안할 것이 없다, 새로운 가치관은 기존의 것이 없으니 잃을까 두려워할 일도 없지 않은가, 라고도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에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말고.

현재 다포세대인 우리들에게 나이 지긋하신 시니어들은 이렇게 말한다. 빌 게이츠를 봐라, 스티브 잡스를 봐라. 차고에서 시작해서 세계적인 기업을 이룩하지 않았느냐. 도전해라. 차고에서라도 시작하면 된다. 왜 취업이 안된다고 울상을 짓고 있느냐. 창업하고 성공하면 된다. 힘내라, 하고. 그런데, 우리는 일단 차고가 있는 집이 많지 않을뿐더러, 도전하고 창업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사회구조적으로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한번 실패하면, 다시는 재기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실패에 관대하지 않고 성과주의만을 강요하기에 자살률이 최고가 아니던가. 물론, 실패를 밑천삼아 교훈을 얻어 다시 원하는 꿈을 이루는 분들도 분명 계신다. 아마존도 성과주의로 시장을 제패했다. 하지만 단 한번 실패한 청춘에게, 우리 사회는 어쩌면 너무나 냉정하다. 시대가 바뀌었고, 시니어들이 그렇게 찬양하는 도전정신과 패기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실이 당신들의 시대와 비할 바가 없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단순히 개인의 정신력과 의지만을 강요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문제일 수도 있다.

내게 불안은 무엇일까. 어쩌면 나의 불안은, 변화하지 못하는 것. 변화하지 못해 도태되어 현재에서 멀어져 버릴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은 아닐까 생각했다. 가을은, 결국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절이기에, 변화하지 못하고 정체된 자신의 모습이 우울을 불러오는 것은 아닐까.

변신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늘 신상을 좋아하지 않던가.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변신은 쉽지 않은 반면, 원하지 않은 변신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오기에, 사람은 불안해지고 우울해진다. 그것은 정체와 도태를 의미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에 보면, 행복에 대한 정의로 시작된다. ‘행복이란 자신의 이웃보다 더 버는 것’이라고. 정말 달라이 라마답게 쿨한 비유였던지라,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그리고는 말한다. 불행의 원인은, 상황이 바뀌면 새롭게 포지셔닝을 하며 자신의 가치관과 관점을 바꾸어야 함에도, 기존의 프레임을 고집하는데에서 현실과의 괴리가 생겨 끝내 고통이 되어 버린다고.

2015년도 4개월만을 남겨두고 있다. 작렬했던 더위도 물러가고 이젠 새로운 계절을 마주한다. 미국에서 9월에 학기를 시작하는 것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면서 조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가을은 어쩌면 끝이자 시작일지 모르므로.

불안하고 우울하다면, 변신할 때 일게다. 그 시점이 가을이라면 특히나 더. 자신이 원하는 변신.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잘 모르기에, 자신이 어떻게 변신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라고 지금 이 계절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변신이란 어쩌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인간이 갑각류로 변하는 것만이 변신이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변신일지도 모른다. 어제보다 조금 더 건강해지거나 어제보다 조금 더 깊어졌다면, 그것 역시 충분한 변신이 될지도 모른다.

변신을 원한다면, 청소를 먼저 권하고 싶다. 대체로 변신을 갈구하거나 우울감에 빠진 사람들의 경우는 청소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심적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달리시기를 바란다. 달리기가 힘들다면 걷기라도 해 보시길 바란다. 어제보다 늘어난 활력만큼, 내일 변신할 가능성은 더욱 커질테니. 그러다보면 혹시 또 모르지. 보통의 말처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서 불안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게 될지도.

행복이란, 이웃집 사람의 연봉보다 많은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어제의 나보다 더 희망찬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희망은, 아주 작은 변화에서부터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를 비롯해, 가을을 마주하며 계절성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들도 계시리라.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어도 책임만 늘어가는 현실에 흥미보다는 불안이 앞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른다. 그럴 때면 변신을 하자. 자신을 조금 더 아끼고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근사하게 만들자. 외모도, 말도, 행동도. 그런 노력을 통한 변신이 지금의 우리를 불안에서 건져낼지 누가 아는가. 차고가 없어서 시험준비에 매달리지만, 결과가 계속 좋지 않아 우울하시다면, 걱정 마시라.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고 했다. 매일 매일 한 걸음. 대단치는 않지만 한 걸음씩만 변신한다면, 조금씩이라도 꾸준히만 노력해 실력을 쌓는다면, 결과는 분명 배신하지 않는다.

썩은 사과에만 맞지 마시라. 자신을 사랑하고 노력하는 그대에게 봄은 반드시 올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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