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102 / 도로의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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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102 / 도로의 가격
  • 이용훈
  • 승인 2015.08.2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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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든’ 자리는 표가 안 나지만, ‘난’ 자리는 눈에 띤다. 질소과자의 오명을 쓰고 있는 몇몇 과자는 좀 심했다. 과자 반 공기 반이다. 부피는 한껏 늘이고, 내용물을 덜 넣는 방식으로 밀도를 확 줄였다. 순차적으로 진행했겠지만, 한창 때 비하면 현재 과자양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처럼 보인다. 4부 합창곡에서도 마찬가지다. 있는 듯 없는 듯 들리는 성부라도 없어지면 어딘가 허전하다. 표가 안 나는 ‘든’자리 같은 성부가 있다. 1년에 한 번씩 참석하는 한 합창지휘세미나 리딩세션에서 강사가 이런 발언을 하자 좌중이 폭소했다. ‘드디어 알토의 설움을 날리는 마디가 왔습니다.’ 알토가 주선율로 등장하는 마디를 이렇게 표현했으니, 뒤집어보면 곡 대부분에서 알토의 존재감이 희미하다는 것이다. 주선율을 타고 가는 소프라노에 밀리고, 맑은 테너 음성과 묵직한 베이스 소리에 비해 특색 없는 성부로 인식돼 인기도 없다. 비중 있는 조연에도 못 미치고 그냥 행인 1,2,3으로 취급받는 처량한 신세처럼 보여도 ‘난’자리에서는 확실한 존재감을 피력한다. 

집 근처 어마어마한 규모의 백화점이 들어왔는데, 인근 도로가 몸살을 앓고 있다. 공중이 통행하는 도로인데, 특정 시설이 한 차선 정도는 독점사용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실질적 도로 점용에 대해 관리청과 협의를 거치긴 했을 것이다. 진입, 통행을 위한 목적으로 설치, 조성되는 ‘도로’는 「도로법」,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로인 경우 도로구역으로 지정되고 협의와 수용의 절차를 거쳐 취득한 토지에 아스팔트가 깔린다. 「도로법」에 의해 설치되는 경우다. 시내 도로 대부분은 앞선 것과 조성 과정은 다르지 않지만 도로구간이 몇 십 미터에 불과한 것도 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도시계획시설도로’로 불리는 것이다. 물론, 택지개발계획 안에, 그리고 지구단위계획 안에 이런 도로의 설치와 조성 계획이 포함돼 있기도 하다. 도로만 설치하기 위한 사업과 도로를 포함한 광범위한 지구 개발의 차이로 이해하면 된다. 어쨌든 도로의 신설, 기존도로의 확장을 위한 공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목이 도로인 것도 있지만, 다른 지목으로 남아 있으면서 도로로 사용 중인 토지도 널렸다. 도로를 확보하지 못하면 건축허가, 개발행위허가를 안 내주니 구석구석 도로가 자리를 잡는다. 도로인 토지를 국가나 지자체가 소유하기도 하고, 사인(私人)의 소유로 남아 있는 것도 많다. ‘기반시설’에 포함되는 도로는 ‘행정재산’으로 불리며 공중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관리되고 있다. 도로의 보전을 위해 ‘접도구역’을 지정해 도로의 손궤를 불러오는 이용에 제약을 가하고, 꼭 사용해야만 하는 경우 ‘점용허가’를 내 준다. 개인 도로는 도로의 사용문제 때문에 마찰이 적잖다. 통행을 못하게 하거나 과다한 사용료를 요구하면 분쟁은 불가피하다. 

‘도로’로 사용 중인 토지를 평가하는 문제, 감정평가에서는 난제 중의 하나다. 도로의 성격, 개설 경위, 소유자가 통일되지 않는 것도 그렇고, ‘도로’ 인 토지를 평가하는 규정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공도, 사도, 사실상 공도, 사실상 사도, 예정공도, 사도법상 사도 등 법률상 용어부터, 새마을도로, 단지 내 도로, 부체도로 등 도로의 성격에 따른 분류까지 들어가면 일반인들은 머리가 지끈거린다. 도로의 평가 규정 역시 변천을 거듭했다. ‘도로’인 토지를 평가하는 사유 중 단연 토지보상을 빼놓을 수 없으니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의 규정이 가장 상세하다고 이해할 수 있다. 

사도법상 사도를 인근 토지의 1/5 이내로 평가하고, 사실상 사도는 1/3 이내로 평가한다는 규정을 보면, 도로인 토지가 그 주변 대지나 공장용지, 농경지로 사용 중인 토지에 비해 상당히 헐값으로 취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로의 사용료를 역산해 봐도 실제 몸값은 그리 높지 않다. 인근 대지를 매매할 때면 진입도로가 그에 묶여 하나의 거래대상이 되는데 매매계약서에 ‘도로 몇 평’이라고 쓰는 걸 보면, 일반 대지와 같은 대우는 기대할 수 없다. 감정평가실무기준에서 ‘사도’를 평가할 때 평가 대상에 그 도로를 사용하고 있는 다른 토지들도 포함돼 있다면 전체를 한 묶음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은, 도로만의 가격을 별도로 내놓기 어려운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또한 다른 토지에 얹혀 매매되는 현실을 반영할 것일 수도 있다. 

감정평가기법 중 원가법을 도로의 평가에 사용하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건축허가를 위해 특정 부분을 진입도로로 확보했을 텐데, 도로로 사용할 부분이라고 매매할 때 다른 가격을 책정했을 리는 없다. 그럼, 도로예정지의 취득가격에 포장 등의 비용을 더해야 하고 도로가격은 일반 대지 가격을 넘어선다. 불합리하지 않은가. 거래사례비교법은 어떨까. 확실히 ‘도로’만의 매매가 빈번하다면 적용을 마다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일반인들이 도로에 부여하는 심리도 알 수 있으니 통계적인 분석만 거치면 된다. 그러나 사례가 적고 상황이 일률적이지 않다. 표본이 충분하지 않고, 질적 특성의 계량화가 어렵다면 아쉽지만 접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현재 도로의 평가 규정도 궁여지책으로 볼 수 있다. 사도의 가치가 인근 토지의 1/3 이내라는 것은 33% 수준이면 괜찮다는 내용인데, 판례는 이를 ‘용도의 고착화’, ‘통행제한 불가’, ‘독점적 사용·수익 포기’ 같은 문구로 치장했다. 감정평가실무기준에서 ‘용도의 제한이나 거래제한 등에 따른 적절한 감가율’, ‘해당 토지로 인하여 효용이 증진되는 인접 토지와의 관계’, ‘토지보상법의 도로평가기준’을 고려해서 감정평가 하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공도는 사정이 다르다. 용도의 제한을 풀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의 소유물이라고 특별 대접을 받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정리하면, 도로 하면 흔히 떠올리는 ‘사도’에 적용되는 ‘0.33’이란 수치를 가장 일반적인 값으로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과세를 위한 개별공시지가 산정 시에도 도로인 토지는 바로 인접한 대지 가격의 33%로 결정된다. 그런데 이것도 들여다보면 애매하다. 1필지 도로부지가 띠 모양으로 수 백 미터에 걸쳐 있다면 인접한 대지만 수 십 필지일 수 있다. 어느 가격의 33%인지 자의적일 수밖에. 필자의 생각에 도로는 논리적인 도출 과정이 아니라 합리적인 책정의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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