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100 / 시장 가격정보 신뢰할 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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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100 / 시장 가격정보 신뢰할 만한가
  • 이용훈
  • 승인 2015.08.1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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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노출’. 요즘 연예뉴스에서 ‘열애’ 다음으로 등장 빈도수가 높은 키워드가 아닐까. 특정 가수는 십 여 년 간 신비주의를 전략으로 삼기도 했고, 본의 아니게 소속사의 판단으로 한동안 얼굴은 안 되고 목소리만 노출했던 노래꾼도 있다. 연기력이 형편없는 젊은 배우를 광고만 내보내며 ‘이미지’가 식상할 때까지 버티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어느 모습이 ‘허상’이고 ‘실상’인지 노출기간이 충분하지 않으면 대중은 알 수 없다. 한편, 필자의 지인 중에는 최근 다른 의미의 ‘노출’ 고민을 하고 있다. 인터넷 뉴스팀을 맡게 된 경력 기자가, 자극적인 ‘노출’ 기사를 양산하지 않고 이 부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 정보 상당수가 강제 노출되고 있다. 2006년부터 시행된 실거래신고제에 따른 것이다. 내달부터는 주거용 오피스텔, 아파트 분양권도 거래 내막이 일반에 공개되게 됐다. 사실상 ‘주택’의 범주에 들어가는 모든 유형의 부동산은 이제 거래 이력을 숨길 수 없다. 원래 신고는 계속 해 왔다. 가격의 신뢰성 문제를 이유로 공개를 차단했던 것뿐이다. 분양권 거래량만 작년 30만 건에 달한다고 하니, 부동산 거래가격 검증시스템을 가동시켜 노출 대상으로 전환시키지 않았을까. 

「부동산 거래신고에 관한 법률」제 3조는, 거래당사자는 부동산등에 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경우 그 실제 매매가격 등을 거래계약 체결일로부터 60일 이내 부동산등이 소재하는 시·군·구에 공동으로 신고하도록 하고 있고, 개업공인중개사가 거래계약서를 작성·교부한 경우 공인중개사에게도 신고 의무가 부과된다. 동법 5조에 따라, 신고 받은 내용이 누락되거나 정확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보완 요청도 할 수 있지만, 소속 공무원이 거래당사자, 개업공인중개사에게 거래계약서, 거래대금 지급 증명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사전 검증시스템 구축에 대한 내용도 있다. 동법 6조에서 신고내용, 토지 및 주택의 공시가격, 부동산 가격정보를 활용하여 부동산거래가격 검증체계를 구축·운영토록 의무화시켰으며, 현재 한국감정원이 이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동법 시행령 2조에 나열한 부동산 거래 신고의 내용 중 핵심은 역시 ‘실제 거래가격’이다. 시행령 3조에서는 거래대금 지급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로 입금표, 통장 사본, 거래대금 지급을 위한 대출, 예금 수령 및 해약, 주식·채권 등의 처분 내역을 열거하고 있다. 가계 대출 풍선 효과를 억제할 때마다 ‘DTI’카드를 뽑는데 이 역시 상환 능력을 소득으로 입증시키도록 하고 있으니, 돈 나올 구멍을 확인하겠다는 이치는 같다. 

이상매매, 급등, 주가조작 등 주식시장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현상을 감지하는 ‘경보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끊임없이 ‘조기경보시스템’을 정치하게 구축하려고 시도해 왔다. 그럴 조짐이 있으면 사전 예방책을 쓰는 게 상책이고, 토지거래허가구역, 투기과열지구 등의 지정 역시 이런 대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실제 거래가격이라고 신고 된 숫자가 엉터리인지를 누군가는 검토해야 할 터인데, 부동산 거래가격 검증시스템의 실질적 운영자로 지정된 곳이 한국감정원이다. 허위 신고에 의한 탈세도 문제지만, 잘못된 신고가 어떤 제재도 받지 않는다면 일반에 공표되는 이런 거래 자료는 쓰레기일 뿐이다. 사회적 비용만 낭비하고, 잘못된 의사결정에 조력할 수 있다. 과태료를 무기로 내세웠지만, 뭔가 미심쩍은 물건을 사전에 발굴하는 시스템이 잘 가동돼야 순도 높은 정보가 사회에 유통된다. 

그럼 어떤 식으로 허위 신고 물건을 포착할 수 있을까. 정상적인 가격만을 노출시키기 위한 검증이겠지만, 검증기관이 내부 검증 기준을 노출할 리 없다. 이 기준이 일반에 알려지면, 이 범위 안에 한 발 걸치는 면피성 신고가 폭주할 게 뻔하다. 불법이 안 되면 편법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게 우리 사회다. 당장의 거래비용을 낮추기 위해 기준선 바로 안쪽에 대다수 신고 가격이 몰릴 것이다. 추정컨대, 검증기관은 공시가격, 이미 신고 된 정상적인 거래내역 등을 가공해 일정 지표를 만들었을 것이다. 여기에 신고 물건의 내용물과 거래 금액을 넣어 큰 편차를 보이는지 걸러 보고, 의심물건으로 분류된 것들만 추려 재검토의 단계로 보낼 것이다. 

책이 만능은 아니지만, ‘양서’는 만능일 수 있다. 부동산 가격 정보도 질 좋은 것들만 유의미할 뿐이다. 계량분석에서도 이상치를 제거해야만 아름다운 추세와 회귀식이 도출되고 통계량도 만족스럽다. 물론, 알아서 이상치를 제거해줄 수 있는 기능이 통계 패키지에 포함돼 있다. 이상치로 볼 수는 없지만 차라리 없었으면 좋은 자료라면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데이터 마사지’라는 미명하에 연구자의 연구결과에 도움이 안 되지만 유의미한 정보를 담고 있는 자료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요즘, 이상치가 발생하는 영역을 집중 분석하는 고급 통계 기법도 다수 등장했고 오히려 그런 영역을 논의의 주제로 삼는 연구자도 생겨나고 있다. 

부동산 거래가격 신고와 관련해, 그간 축소신고 관행이 주류였다. 토지의 경우 개별공시지가에 맞춰 매매가격을 신고한 건수가 다수였다. 그러나 공시가격을 시가로 인식하고 급매물 가격이 그에 맞춰 나오기도 한다. 공시가격이 일반인에게 중요한 가격 자료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그런 면에서 요 몇 년, 공시가격 현실화와 지역 별 상대적 균형 제고를 위한 조치는 시의적절하다. 

경실련 등에서 고급주택의 공시가격 문제를 들고 나와, 거래가격과 공시가격의 격차가 일반주택보다 크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가진 자가 세금을 덜 내고 있다는 명분 있는 논평이다. 실무적으로는, 고급주택 몇 채를 위해 표준주택을 신설하자니 과소 활용의 문제가 걸리고, 현재 공시가격 결정 방법이 토지와 건물 가격을 합산하는 구조이므로 고급 주택만이 갖는 가격 프리미엄을 반영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문제도 있다. 

참여정부 시절, 보유세의 정상화를 위해 공시가격의 급격한 상향 압력이 가해졌다. 시장가격이 올라 한참 낮게 공시된 가격을 끌어 올리는 것으로 출발했지만, 공시가격의 상향 추세를 보고 시장가격은 급등의 추동력을 얻었을 개연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과관계는 입증해봐야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가격 정보를 담고 있는 모든 자료는 노출된 순간, 어떤 식으로든 시장에서 다른 가격 자료의 형성에 미미하게나마 영향을 주지 않을까. 

남들 다 축소신고하며 거래비용을 낮추려는 마당에, 외람되게 비싸 보이는 가격을 떡하니 올려놓는 사람도 있다. 분양권 액면가가 이들의 신고 금액이다. 없는 가격은 아니다. 할인 분양 광고가 대문짝만하게 인터넷을 도배하고, 대폭 할인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주변지역에 널려 있는데, 버젓이 명목상 최초 분양 금액으로 매수했다고 신고했으니, 선심성 매수자가 아니면 의도적인 부풀리기다. 취득세 등 거래비용은 조금 더 부담하고, 잔금대출을 양껏 받으려는 심산이지 않겠는가. 

감정평가 시, 이처럼 오염된 가격 자료는 이상치로 간주된다. 주거용 부동산의 공시가격과 거래가격이 노출됐고, 노출 전 거래가격의 사전 검증절차는 덩어리 큰 찌꺼기들을 한 번 걸러주고 있다. 부동산의 가격이 이제까지의 추세와 각종 통계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순도 높은 가격 정보가 거래, 투자, 과세 등의 영역에서 시장 투명성을 높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시장은 ‘질 좋은’ 가격 정보에 목말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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