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98 / 담보대출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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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98 / 담보대출의 미학
  • 이용훈
  • 승인 2015.08.0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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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지난 정부, 제조업체의 운용자금 대출 창구를 확보한다는 취지 아래 도입한 ‘동산담보제도’. 항시 일정 수준 재고량을 유지하기만 하면, 원재료를 담보로 대출하는 상품이다. 은행의 수익개선 노력이 빚어 낸 신상품은 아니었다. 정부의 작품이었고 강력한 정책적 드라이브까지 걸려 있었다. 은행별로 동산 담보 대출 건수가 할당되기도 했다. 정확히는 취급 물량을 배정해 준 것. 일정 실적을 채우기 위해 단 하루 만에 동산 담보평가서를 다급히 요구하던, 은행 담당자의 부탁을 생생히 기억한다. 빚 좋은 개살구 될 줄은 짐작했다. 이보다 리스크 큰 상품이 있었던가. 원재료를 잠시 빌려다 쌓아놓고 재고 관련 서류를 위조하기만 해도 ‘유령 담보물’에 대한 대출이 실행될 수 있었다. ‘정책적 자금 지원’, ‘중소기업 지원’. 이런 홍보효과만을 노린 전시용 상품개발로 판명되었다. 

얼마 전 가계대출 관리 대책이 발표됐다. 요약하면, 주택 담보대출 구조를 장기간 거치식대출구조에서 원리금 분할 상환구조로, 대출 심사 시 소득에 따른 상환여력은 확실히 따져봐야 하고,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상호금융권으로 돈 빌리는 자가 쏠리는 풍선효과를 관리하라는 것. 곧이어 LTV, DTI 규제 완화 조치를 1년 연장한다는 발표도 있었다. 엇박자라는 지적은 합리적인 시각이다. 앞에서는 가계부채 부실 위험 때문에 몸을 사렸고 바로 뒤에서 숨통은 트여 준다는 말이니. 어느 경제학자는 DTI 규제야말로 부동산 대출 규제의 ‘꽃’이라고 했다. 현금흐름을 증빙한 자만 대출해 주면 부실화될 수 있는 ‘애매한’ 대출, 무리한 대출자의 진입을 원천봉쇄할 수 있지 않는가.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일. 이건 오랜 기간 생활의 한 단면이었다. 일수부터 친목계까지, 돈 굴리는 시장 은 곳곳에 형성돼 있었다. 패물을 담보로 등록금을 융통했고 농사꾼의 유일 자산 서너 마지기 전답은 큰 돈 빌리는 데 일조했다. 초기 급전 거래의 형태를 띠었을 자본 거래는 곧 투자의 영역으로 발전했다. 부채와 자본 총계가 자산이다. 빌린 돈 갚아 나가는 과정이 곧 자본형성·확충 과정으로 이해될 쯤 부동산 금융이 정치화됐다. 자본부족을 빌린 돈으로 충당하는 구조, 이것이야말로 부동산금융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지분수익률(순수 투자금액에 대한 수익률)의 극대화다. 복리의 비밀을 찬양하는 금융기관 상품 소개서처럼 소위 ‘부동산투자’의 영역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자극적인 홍보 문구는 지렛대 효과(Leverage Effect)일 수 있다. ‘잔여법’의 논리가 적용되는 지분수익률은, 전체를 자기 자본으로 충당하는 것보다 일부분 타인 자본을 활용했을 때 천장을 친다는 것. 수익 규모는 물론 전체 자기자본일 때가 크다. 그러나 수익률은 타인 자본 혼합 시 높아지게 된다. 특히 타인 자본 융통의 기회비용이 그리 높지 않은, 요즘 같은 저금리 구조에서 의미가 있다. 수익률을 어림셈법으로 계산했다가 낭패를 볼 경우도 생각해 봐야 한다. 보유비용 역시 항시 고민할 대목이다. 장기간 공실이면 수익률은 (-)로 귀결될 수 있다. 재산세, 주기적인 임차인 교체 에 따른 중개수수료 등도 임대수익 규모가 크지 않은 소액 투자 건에서는 비중이 상당함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렛대 효과는 결국 대출 금리를 사뿐히 밟고 설 수 있을 때 위력을 발휘한다. 담보대출 금리는 유형에 따라 적지 않은 격차를 보인다. 일단 주택인지, 비 주택인지 여부만으로 차별이 심하다. 동일한 금액을 대출하려 해도 아파트 담보대출과 상가 담보대출은 많게는 1% 남짓 금리 차이를 보인다. 요즘, 주택담보대출금리가 대출 금리의 하한선을 지키고 있다. 비 주택의 경우, 물건 종류별로 대출한도비율 LTV도 차등 적용된다. 대지와 임야를 차별 대우하고, 동산보다 부동산을 선호하는 경향은 오랜 관습이다. 정리하면, 금리 우대 혜택이 집중되는 주택담보대출이 가계부채의 뇌관인 셈이다. 그간 거치식대출이 주를 이뤘다. 이자만 부담해도, 기간이 경과하면 자연스레 시세 상승이 있고 자본 차익을 실현할 때 원금 상환은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활성화된 것이다. 그러나 ‘자연스런 시세 상승’이 실현되지 않으면 이런 구조는 치명상을 입는다. 

한편, 담보대출에는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정상적으로 대출이 안 되는 물건에 실력자가 들러붙어 불씨를 만들곤 했다. 대출브로커는 어쨌든 실력자라 부를 수밖에 없다. 대출 ‘예외’ 또는 ‘제외’되는 자산을 ‘일반’과 ‘정상’인 물건으로 바꿔놨으니. 이 때 대출 부실은 위험 물건에 정상적인 위험 프리미엄을 적용하지 않아 발생하게 된다. 혹은, 담보물의 위험성을 고의로 숨겨 잠재 부실 대출을 양산할 수 있다. 감정평가업자가 연루되지 않고서는 발생하기 힘든 유형이다. 예컨대 실질은 집단대출인데 100여 개 상가 중 20개 정도만 분양된 미분양상가를 ‘쪼개기’ 수법으로 접근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미분양 호를 통째로 매입하는 사람에게 대출을 집행하면, 현재 미 분양률과 분양된 물건의 공실률을 고려해 담보평가액은 최초 분양가 대비 수 십 퍼센트 할인율이 적용돼 결정된다. 이것을 낱개로 대출하듯이 서류를 꾸밀 수 있다. 여신 담당자의 조작으로 상가 호마다 채무자 명의를 다르게 하면, 마치 한 개의 상가마다 대출이 이뤄지는 모양새고, 감정평가도 개별 상가별로 수행되고, 잠시 공실 상태라는 점 때문에 각 상가의 담보평가액이 종전처럼 크게 폭락하지 않는다. 이런 부실 대출은 잊을만하면 기사화된다. 

이와는 달리 부동산 경기 침체, 자산 가치 하락, 디플레이션에 의해 발생하는 담보부채권의 일부 부실은 ‘쪼개기 대출’로 인한 ‘악성’ 부실과는 달리 ‘정상’적인 부실로 취급해야 한다. 부실 방지책으로 LTV가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LTV를 꼭지까지 쓰지 않고 여유분을 남겨두는 일은 없다. 한 푼이라도 더 대출받으려는 채무자의 일반적인 사정을 고려해야 했다. 채무자는 대출한도액을 더 보장하는 쪽으로 발길을 돌리기 때문이다. 예년 강수량 혹은 연 평균 강수량을 고려해 한계 수위를 정했지만, 그 해 태풍 몇 개 더 들이닥치면 수량이 급격히 불어나 홍수 위험 수위를 넘는 것처럼 예외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정상적인 부실은 감안해야 한다. 

감정평가업계 내 대출을 위한 감정평가 영역은 가장 안정적인 수익원 역할을 해 왔다. 총 매출액의 2~30%를 차지할 정도다. 그러던 중 감정평가 수수료는 대출자가 아닌 금융권이 부담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로 시장 분위기가 냉각됐다. 연간 수 백 억 원의 평가 수수료를 절감하기 위해 금융권이 자체 감정을 늘리고, 정식 담보 평가를 위한 부대 서비스인 ‘탁상 감정’을 악용해 무임승차하는 사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담보물 평가 영역의 위축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순수 투자금만으로 투자가 이뤄지겠는가. 차입 당사자 입장에서는 타인 자본의 융통이겠지만, 빌려 주는 쪽은 또 다른 투자자다. 결국 대출을 끼고 부동산을 구매하는 행위는 자기 자본과 타인 자본이 각각 투자 지분으로 공동 참여하는 것이다. 향후 인터넷 은행의 등장으로 소액 대출은 활성화될 것이다. 그간, 시중 은행 입장에서 소액 대출은 감정평가수수료 등 고정비용 대비 이자수익이 미미해 저 수익 영역으로 분류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 사각지대를 인터넷 은행이 보완할 수 있다. 

매년 예금보험공사에서는 파산재단 보유자산을 공매 처리하고 있다. 이 사업장에 돈을 담근 금융권 곧 타인 자본은 상당부분 지분을 날렸다. 공매까지 왔다면 채권자의 지위에서 어떻게라도 이 부실 자산을 매각해 대출 원금 피해를 최소화시키려 발버둥치는 것이다. 순수 거주 수요만으로 주택 경기는 살아나지 않는다, 과도하지 않은 투기 수요, 투자수요의 개입이 부동산 경기 활성화의 촉매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경제학자들도 동의한다. 투자활성화를 위한 자금 확보 수단이면서 대규모 부실의 파장이 미칠 때면 그 원인 제공자가 된다는 점에서 대출의 ‘미학’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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