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연평해전』이 던진 화두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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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연평해전』이 던진 화두는 무엇일까?
  • 신희섭
  • 승인 2015.07.2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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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여름 계절 학기를 끝냈다. 계절학기 수업의 마지막 날 재미있는 학습방법을 한 가지 선택했다. 학생들과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하고 영화 본 뒤 영화를 주제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영화가 『연평해전』이었다.

이 영화가 최근 흥행성적이 좋다. 특히 20대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으면서 흥행기류를 타고 있다. 왜 젊은 층이 열광할까에 대해 영화를 보기 전부터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연평해전에 대해 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무엇이 젊은 층을 극장으로 끌어 모을까가 궁금했다. 결론도 이미 나와 있고 해전과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면 영화적인 요소가 채워야 할텐데 왜 많은 이들이 그리 유명하지 않은 배우들로 구성된 이 영화에 매료될까?

영화를 보는 동안 몇 장면에서 주변 사람들이 눈물을 보였다. 가장 강렬하게 운 사람들은 주변에서 영화를 보던 아주머니들이었다. 같이 보러 간 학생들을 포함해서 젊은 관객들중에서도 우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기성세대들 특히 아주머니들은 많이 울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에게는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장병들이 자기 자식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들에게는 자식을 매개로 공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젊은 관객들에게는 무엇이 공감을 이끌어낼까? 자연스레 질문이 옮겨간다. “세대가 다른 이들이 무엇에 공감하는 것일까?”

어떤 이는 20대 여성관객들이 공감하는 부분을 떼로 나오는 꽃미남으로 돌렸다. 원빈주연의 『아저씨』의 군인버전 확장판으로 돌려세웠다. 한편으로 20대의 젊은 남성들은 자신들의 무기력한 현재 상황과 달리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동경과 공감이 있다고 해석을 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영화를 만들어 가는 언론매체의 긍정적인 해석과 부정적인 해석이 영화를 밀어가는 힘이 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우파진영의 애국주의 마케팅과 좌파진영의 민족주의관점의 부정이 극장에 가서 이 영화를 보고 판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속에서는 세대를 아울러 공감을 만들어내는 이 영화의 본질적인 메시지 즉 화두가 무엇일까가 맴돌았다.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몇 가지 생각들을 뒤로 물리고 화두에 집중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생각을 분산시키는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 왜 감청정보를 무시했나? 왜 교전수칙이라는 표준운영절차(SOP)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누가 더 이상의 북한군함에 대한 발포를 막았는가? 왜 정부는 희생을 뒤로 숨기게 되었나? 이런 개별적인 질문들에 따로 답을 찾다 보면 미로 속에서 스스로가 갇히게 될 것 같았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대화만한 것이 없다. 영화를 같이 본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동안 고려하지 못 했던 점들을 배우게 되었다. 가장 강력한 질문은 “진짜 저런 일이 있었나요?”였다. 이 질문은 이 사건의 역사적인 의미이전에 존재자체를 묻는다. 그럴 수 있겠다. 지금 20살에서 21살의 나이에 있는 학생들은 7살이거나 8살에 연평해전이 일어난 일이고 월드컵에 열광할 때의 일이기 때문에 기억자체가 없을 수 있다. 다른 인상적인 질문은 “그런데 왜 (우리 군은) 저렇게 대응했나요?”와 “왜 (참수리호의 순국한 장병들은) 세월호희생자들보다 못한 대접을 받나요?”였다. 학생들은 특별한 훈련이 없이도 과정과 결과에서의 ‘정의(justice)’를 이야기 한다.

이런 질문을 단지 젊은 층의 애국자 코스프레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그저 겉치레적인 애국주의 흉내로 젊음의 한 면을 드러내 보인다고만 할 수 있을가? 젊은 세대들이나 기성세대들이나, 여성이나 남성이나 관계없이 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엄청난 스케일의 화면이나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배우들의 연기는 아니다.

이 영화가 성공하는 것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어 보인다. 첫 번째 ‘스토리’가 있다. 두 번째 ‘메시지’가 있다. 세 번째 ‘실화’에 기반한다. 네 번째 현재 정치상황에 대한 ‘불만’이다. 연평해전을 끈질기게 준비한 감독의 노력과 자금동원의 어려움과 그 과정에서 국민성금을 모으면서 이슈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은 스토리와 관련된다. 두 번째는 월드컵에 열광하는 국민과 대조적으로 서해바다라는 소외된 공간에서 외롭게 싸운 이들의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있다. 세 번째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그 과정과 결과가 공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북한의 기습적인 공격에 21살에서 27살 정도의 청년들이 좁은 배안에서 느꼈을 공포와 분노. 현재 정치지도력부재에서 정치지도자 대신에 일상에서 우리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이 보여주는 리더십. 영화 『명량』에 대한 열광과도 같은 코드. 이것이 네 번째 요인이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연평해전』은 영화적인 부분이 실망스러운 영화이다. 전투장면을 돋보이고 싶다는 의도에 비해 너무 길게 처리된 배경부분은 영화적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러간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영화적 완성도가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닐 듯 하다. 필요한 것은 전투신과 그 전투신을 통해서 올라오게 되는 파토스(pathos: 그리스어로 정서)이다. 즉 ‘감정’이 이미 전투장면을 기다리는 영화.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파토스를 자극하게 될 것인지의 방식이 문제가 되는 영화. 우리가 가진 감상을 떼어내고 보면 30분의 전투신을 위해 구성된 영화 전반부와 영화 끝 부분의 실제 영결식필름과의 연계는 특별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영화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영화 자체가 아니라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이다. 이 메시지를 얻기 위해서 많은 관객들은 영화표를 구매한다. 그리고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동안에 받고자 하는 것은 파토스가 아니라 에토스(ethos)이다. 돌아갈 때 관객들은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하는 도덕적인 규범과 이념적 원칙인 에토스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파토스 속에서 얻게 되는 에토스. 감정을 일으켜 얻고자 하는 사회의 원칙. 이런 모순이 이 영화를 구축하고 있다.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로서 에토스는 애국주의(patriotism)와 애국심이다. 영화가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애착과 국가에 대한 헌신이라는 애국주의가 얼마나 중요한지라는 화두이다. 열심히 눈물을 흘리면서 그 감정 깊숙한 곳에서 왜 눈물이 나는지를 돌아볼 때 야트막하게 보이는 것이 애국심이다.

『연평해전』은 영화적 재미를 영화의 해석이 넘어선다. 또한 영화자체 해석을 사회적의미 해석이 넘어선다. 그런 점에서 감독의 제작의도보다 더 정치적인 영화가 되었다. 감독이 몇 군데 전략적으로 짚어 넣어둔 정치적 해석을 넘어서 이 영화는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 이 영화를 두고 진보언론과 보수언론이 나뉘어서 영화를 평가하고 각 정당이 내년 선거를 의식해서 그 의미를 달리 해석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의 전략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이 영화가 정치의 중심에 선 것은 또 다른 이유들 때문이다. 이 영화가 다룬 현실이 정치다. 본래 해전은 군사안보로 정치와는 다른 영역이다. 하지만 군사안보에서 어느 정도 개입하고 어느 정도의 힘을 사용할 것인지는 정치적 판단의 문제이다. 정치가 판단의 문제라면 이 영화는 역사를 소환하여 불편한 사실을 마주하고 다시 판단을 해보자는 점에서 그 자체가 정치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할 때 정치의 중심에 선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는 명확하다. 영화 『연평해전』이 정당과 대선후보들에게 어떻게 해석되고 활용되는지나 정치세력이 이를 어떻게 동원하여 자신의 지지를 끌어들일 것인지는 본질은 아니다. 대통령이 과연 확전을 하지 않은 것이나 영결식에 참여하지 않고 일본의 월드컵행사에 가서 한일정상회담을 한 것이 과연 국가를 위해 죽어간 이들을 기리는 것 보다 더 중요했는지도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의 핵심은 아니다. 또한 보상액수가 왜 그리 작은 것인지 도대체 그 의도가 무엇인지도 이 영화의 가장 핵심은 아니다. 1차 연평해전의 처리 과정에서 대한민국해군의 대응이 과도했는지와 당시 결정한 해군 제 2 함대사령관에 대한 처리과정도 이 영화의 화두는 아니다. 관객들이 이런 것들을 따지면서 보는 것은 너무 복잡한 것이다. 누구도 영화를 보면서 계산기를 굴려서 왜 이 병사들은 일반병사의 연봉에 36배에 불과한 액수만을 받았을까를 따지지 않는다. 관객들 대다수는 “자 이제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어 사실을 보여줘!”라고 외치며 스크린에 집중한다. 그리고 집중하는 것은 장병들이 죽음으로 써가는 애국심이다. 그럼 다음에 던져질 질문은 도대체 애국심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애국심! 이제 질문은 던져졌고 답은 명확치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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