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리더십, 그 가능성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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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리더십, 그 가능성의 예술
  • 신희섭
  • 승인 2015.07.16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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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최근에 깊은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눈을 감아도 일이 끝나지 않고 달려든다. 무엇인가를 정리하고 조정하고 결정하라고 달려드는 것들이 있다. 새로운 일이 가져다 준 선물들.

최근에 모임을 이끌어야 하는 자리를 하나 맡게 되었다. 성향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속한 모임인데다 모임이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어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제법 많다. 기술적으로 처리하고 넘어갈 일들과 결단을 요하는 일들과 상의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섞여서 하루라는 시간과 뒤엉켜 압력을 가한다. 원래 하고 있던 강의와 책 만드는 일들과 병행하면서 새로 맡은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잠을 줄이고 식사를 건너뛰기 일쑤이다. 그래서 고통스럽기만 한가?

그렇지는 않다. 안 해본 일들을 한다는 것과 이 일들이 하나씩 처리되면서 자리를 잡아갈 때 가지게 되는 만족감도 매우 크다. 하루가 딱 5시간만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지만 그래도 주어진 시간에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나의 의미가 있구나”를 느끼게 한다. 이것처럼 뿌듯한 게 있을까?

50년이 가깝게 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저력있는 모임에서 가장 어린 사람에게 모임을 이끌라고 했을 때 그 취지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내가 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 내가 해주기를 바라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하기를 바라는 것.

무엇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최근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내 자신이 얼마나 판단력이 부족한가 하는 점이다. 내가 가진 경험은 이럴 때 정말이지 너무나 적나라하게 밑천을 드러내준다. 모든 사안들이 항상 처음 하는 일처럼 다가온다. 우왕좌왕. 여러 일들이 한꺼번에 진행되면서 일들은 자기 스스로 꼬이기도 한다. 실타래를 풀 듯이 풀어나가다가도 어느 순간에 스스로 일을 꼬아버리고 있는 나를 넋 놓고 바라바고 있는 나 자신. 안쓰러움을 넘어서는 무기력함.

이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두 가지 논리가 끊임없이 끼어든다. “그래 경험의 부족은 몇 번만 비슷한 상황을 지나면 해결될 거야.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어.” 첫 번째 논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시간의 문제로 돌리면서 앞으로 앞으로 더 나갈 수 있는 희망을 준다. 다른 편에서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인생에서 경험했겠나? 언제 이렇게 적나라하게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겠나?” 나이가 더 들면 더 자신을 더 들여다보기 어렵지 않았을까라는 논리로 미래와 현재를 대비하면서 현재적의미를 강조한다.

이런 자기방어 논리와 심리에도 불구하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있다. 그것은 나의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다. 공부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이다. 정치학을 공부하고 정치학을 강의하면서 리더십을 내내 강조해왔다. 학위논문을 만들 때 신고전현실주의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국제정치에서 지도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일본의 대미전쟁결정과정을 설명했다. 그 핵심에는 리더십이 있다. 그런데 실제 모임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머릿속에 있던 리더십이라는 것이 허상이 된 것이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그렇기에 아리스토텔레스도 아는 지식과 실천지식은 다르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그 격차를 지금 몸으로 격렬하게 배우고 있는 것이다.

다시 리더십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치학 원론적 질문을 하게 되었다. ‘리더십의 본질은 무엇이고 이것을 어떻게 실천으로 옮길 것인가?’ 머릿속에 있는 지식말고 가슴이 받아들이고 생각하지 않고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내 것으로 만드는 지혜의 관점에서 리더십은 무엇인가?

그때 머리를 땅하고 때리는 것이 있었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라고 외친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였다. 비스마르크가 이야기했던 것을 외교사책에서 수없이 보아왔지만 이때만큼 가슴을 꿰뚫고 들어온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그동안 책을 헛 본 것이다.

비스마르크가 말한 정치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리더가 내리는 판단이라고 하면 “리더십은 가능성의 예술”이 된다. 그렇다. 리더십은 가능성의 영역이자 예술의 영역이다.

먼저 리더십은 예술의 영역이다. 이것은 과학이 차지할 공간이 아니라는 의미다. 리더십은 실체를 알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많은 조건들에 의해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2015년 7월 8일 한나라당의 원내대표인 유승민 의원이 대통령과의 갈등 끝에 사퇴한 사안을 일례로 들 수 있다. 사퇴를 하면서 그는 대한민국의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했다. 원내대표로서 몇 달간 보인 그의 노력보다 ‘배신정치’로 명명된 이번 대통령과의 불화와 그의 이 발언은 그의 지지도를 확고하게 높였다. JTBC가 리얼미터에 의뢰한 ‘여권부문 차기대선주자 지지도’에 대한 7월 8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승민의원의 지지도는 16.8%로 김무성 대표의 19.1%에 근접할 정도가 되었다. 6월 24일의 여론조사에서 5.4%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이번 사안으로 어느 정도 지지율이 올랐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유승민 의원의 대통령에 대한 저항이 소신있는 정치이자 박근혜대통령의 리더십에 굴복하지 않는 정치로 비춰지면서 이렇게 지지율이 높아질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반대로 어려운 국정운영을 돕지 않고 청와대를 흔들어댄다고 비난의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유승민 의원의 소신있는 정치는 본인의 정치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여 무엇을 한다는 것은 과학적인 예측을 넘어서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이 도박의 영역이라고 했던 것처럼 리더십을 행사하는 것도 도박의 영역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리더십은 가능성의 공간이다. 무엇이 가능하며 무엇이 가능하지 않은가를 구분하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무엇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가와 어떠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능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야 한다. 주변사람들의 좋은 평판과 영광스러움이 눈을 멀게 하면 가능한 것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비스마르크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뛰어난 것이다. 그는 독일 통일을 위해 3차례의 전쟁을 치루었고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라는 2개의 거대한 강대국을 굴복시켰다. 10년 이내에 치룬 이 전쟁들 속에서 독일의 군사력은 가장 정점에 달 할 수 있었고 독일인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프러시아로서 받아온 굴욕을 없애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독일인들이 독일이 가진 위대해진 힘을 보여주고 싶었겠는가!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딱 거기서 멈췄다. 독일이 더 강력해지는 것 그래서 현상을 변경하는 행동은 영국을 걱정스럽게 할 것이고 러시아로 하여금 프랑스와 관계를 강화하게 할 것이다. 프랑스의 자랑인 베르사이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독일황제의 대관식을 치룬 독일에 대해 프랑스인들이 가지는 적개심은 불 보듯 뻔한 것이다. 독일 힘의 과시는 프랑스의 복수를 가져올 수 있도록 유럽의 강대국들을 집결시킬 것이었다.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비스마르크는 독일의 현상타파정책을 멈추고 독일이 유럽의 현상유지를 받아들이는 국가라는 점을 주변 강대국들에게 인식시켰다.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 미래를 내다보고 현재를 절제시키는 능력. 이것이 비스마르크가 말한 리더십의 본질이다.

이런 리더십이 분할되어 있던 독일 영토내에 독일제국을 건설하게 하였다. 조직을 이끌어 가야 하는 입장이 되어서 보니 그런 판단력이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켜내는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가능한 것 그리고 가능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내는 지혜와 가능한 것을 만들어내는 실천력 그리고 도박과 같은 불확실함을 극복해내는 예지력. 책속에 언제나 있었지만 새로 배울 것이 너무 많다. 가슴으로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 보니 비스마르크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더 깊은 울림을 가진다.

“자기 앞에 어떠한 운명이 가로놓여 있는가를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그리고 대담하게 자기의 운명에 도전하라. 이것은 옛말이지만 거기에는 인생의 풍파를 헤쳐 나가는 묘법이 있다. 운명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운명에 먹히고 운명에 도전하는 사람은 운명이 길을 비킨다. -비스마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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