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집밥백선생에게 냉장고를 부탁하면 오늘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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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집밥백선생에게 냉장고를 부탁하면 오늘 뭐 먹지?
  • 신희섭
  • 승인 2015.07.0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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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셰프전성시대다. 확실히 대세는 셰프다. TV를 틀면 셰프들이 나온다. 어디를 돌려도 음식관련 프로를 볼 수 있다. 심지어 라디오를 틀면 셰프들이 나와서 음식을 만드는 법에 대해서 알려준다. 음식강국 코리아.

셰프들이 워낙에 인기이다 보니 과거의 스타셰프를 능가하는 울트라스타셰프들도 생겨나는 듯 하다. 백종원씨나 최현석씨같은 셰프들은 TV 광고에도 등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셰프들간에도 시기와 질투가 생겨서 셰프가 셰프를 속된 말로 디스하는 일도 생기고 있다.

셰프들이 뜨고 음식관련 프로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도 생겼다. 얼마 전에 찾은 우래옥은 『수요미식회』의 냉면 편에 나온 뒤에는 11시 조금 넘어 입장할 때부터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단골입장에서는 이런 집들이 알려져서 뿌듯해지는 점도 있지만 너무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도 생긴다.

어느 정도로 우리가 음식에 열광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TV방송 중에서 음식프로들을 찾아보았다. 찾다보니 정말 놀라울 만큼 많이 있었다.

우선 장수 프로그램 중에 ‘찾아라 맛있는 TV’가 있다. 말 그대로 맛있는 집을 찾는 프로그램인데 프로그램 자체적으로 진화를 하며 오랫동안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지역 맛집을 소개하여 관광산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속초나 강릉을 가보면 그 영향력을 알 수 있다. ‘식신로드’도 이런 맛집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다. ‘테이스티로드’는 여자들 특히 젊은 층의 여자들이 가기 좋은 집을 소개하는 방향을 가진 프로그램이다.

이들 전통적인 프로그램 말고 최근에는 ‘수요미식회’와 ‘냉장고를 부탁해’는 다른 컨셉의 프로그램이다. 음식을 만드는 방법과 음식에 대한 역사를 소개하며 음식점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을,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다. 여기에 ‘한식대첩’은 한식요리전문가들이 지역별 음식으로 경쟁을 한다. 최근 ‘인간의 조건’은 농부를 주된 아이디어로 하고 있지만 잘 들여다보면 농부로서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가가 중심을 이룬다. 두 명의 울트라스타셰프들이 나와서 먹방을 만들고 있다.

‘맛있는 녀석들’은 잘 먹을 몸매의 개그맨들이 나와서 특정 음식을 공략하는 프로그램이다. 맛집프로그램이라기 보다는 대식프로그램의 성격이 강하다. ‘집밥백선생’은 엄청난 수의 신도를 가진 프로그램이다. 백종원의 백종원에 의한 백종원을 위한 프로그램인 ‘집밥백선생’은 “도대체 무엇을 해서 먹는단 말인가?”를 고민하는 주부들에게 종교와 같은 프로그램이다. 마트의 간장을 동을 내고 된장을 새롭게 사용하게 하는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음식으로 구원을 얻게 해준다는 점에서 종교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오늘 뭐 먹지’는 두 사람의 진행자가 요리를 배우면서 직접 해서 먹는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아마추어도 충분히 요리가 가능할 수 있게 한다는 아이디어를 가진 프로그램이다. ‘올리브쇼’도 셰프들이 나와서 음식을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셰프들이 직접 경쟁을 한다.

‘해피투게더 야간매점’은 연예인들의 야식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을 보는 이들에게 “지금 뭐하고 있어? 야식 안만들어 먹을 거야?”를 외친다. 힘들고 지친 영혼들에게 바로 나가 편의점을 털어서라도 무엇인가를 먹으라고 요구한다.

연예프로그램말고도 다큐멘타리 형식으로 구성된 프로그램들도 있다. ‘한국인의 밥상’과 ‘생생정보통’과 ‘VJ 특공대’가 대표적이다. 교육방송에서는 요리방식을 알려주는 ‘최고의 요리대결’도 있다. 차승원을 더 스타로 만든 ‘삼시세끼 어촌편’이나 이서진의 이미지를 좀 더 친숙하게 만들어준 ‘정선편’도 있다. 해외에 나가서 극한 상황에서도 무엇인가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글의 법칙’도 있다.

이런 방송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들이 있다. ‘셰프의 야식’ ‘한끼의 품격’ ‘백년식당’ ‘대단한레시피’ ‘신인류식품관’ ‘변정수의 기적의 밥상’ ‘쿠킹코리아’ ‘예스셰프’ ‘마스터셰프코리아’ ‘최강食록’ ‘노오븐디저트’ ‘마트를 헤매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 ‘잘 먹고 잘 사는법, 식사를 하셨어요?’‘ 키친 파이터’ ‘마이리틀텔레비전’과 같은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럼 왜 우리는 이렇게 먹방과 쿡방에 열광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이류를 들자면 세상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한의학박사님의 설명으로는 한의학에서는 위와 뇌가 반대로 작동한다고 한다. 즉 뇌가 작동할 때 위는 쉬고 위가 작동할 때 뇌는 쉰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먹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뇌가 쉬고 싶기 때문이다. 뇌가 쉬고 싶다는 것은 처리할 것이 많아서 복잡하다는 것이다. 즉 단순해지고 싶기 때문에 가장 1차원적인 욕구인 식욕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쉬고 싶고 치유받고 싶어하는 현대인들. 그런데 유독 한국이 먹방에 집중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국이 유독 살기가 더 힘들어져서 그런 것일까? 고통이라는 주관적인 부분을 평가하는 것이 쉽지는 않기에 이것을 가지고 국가간 평가를 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어떤 특성이 있어서 이런 현상이 강해질까? 이 부분을 조금 더 채워주는 것은 SNS로 대표되는 문화적인 현상이다. 정보통신혁명이 더 많은 정보들을 이동시켜 주면서 정보를 더 많이 획득하게 만들어준다. 게다가 SNS와 같은 정보매체들은 인간을 특정그룹으로 집중시킨다. 이 매체는 사적인 정보를 공적인 정보보다 더 많이 전달하게 하는 매체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먹는다는 사적인 것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게 만들 수 있다.

정보매체가 발전한 것은 한국만의 특성은 아니다. 이러한 매체의 효과만으로 외국인들 눈에 너무나도 신기한 먹기에 집착하기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한국이 특별히 먹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 공중파 매체들의 영향이 크기도 하다. 공중파 매체들이 너무나도 많은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내보내고 그 과정에서 진화해가는 프로그램들이 생기나면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설명 역시 공중파매체라고 하는 공급 측의 요인을 가지고 지나치게 시청자라고 하는 수요측 요인을 설명하는 오류를 가진다. 만든다고 사람들이 보는 것이 아니다. 물론 매체에 오래 노출되면 매체에 무비판적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최근 먹방과 쿡방의 부상은 단지 무비판적인 성향으로 치부될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지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런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앞서 한의학적 설명처럼 뇌를 많이 쓸 경우 뇌를 쉬게 하기 위해서 위를 많이 이용한다. 직접 먹거나 먹는 것에서 대리만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한국의 어떤 측면이 있는 것일까? 이 부분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한국사회의 비관과 절망이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현재를 희생하더라도 미래에 투자를 할 수 있다. 나중에 집을 사기 위해 저축을 하거나 미래 직업을 위해 지금 시간과 돈을 쓸 수 있다. 그런데 미래가 비관적이면 현재에 투자한다. 왜냐하면 미래가 없으니까. 이 동어반복적인 논리는 이성보다 먼저 작동할 수 있다. 확실하게 미래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이전에 주변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있다. 주변에 직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아르바이트의 고단함을 겪고 있는 친구들, 얼마 뒤면 끝날지 모르는 직장, 어느 정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하기 어려운 전세값과 월세값. 그런데 이러한 고통의 파도 뒤에 더 큰 고통의 쓰나미가 몰려 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

한국사회가 너무나 빨리 변화해오면서 우리는 그 속도를 경이롭게 바라보아왔다. 그런데 그 변화의 중심부는 사회계층의 변화가 있고 그 속에는 외부위기가 맞물려 언제 사회계층의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두려움이 있다.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인간 개인으로 몸을 숨기고 있다. 한나 아렌트가 아야기한 ‘사사화(privatization)’를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공적인 것을 포기하고 인간 개인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사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향.

사적인 공간인 냉장고를 부탁하고 집밥선생을 불러서 오늘 뭐 먹을지를 고민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너무 개인에게 탐닉하는 것은 아닌지? 사회 즉 사람들이 같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어떻게 하면 오게 될 것인지를 걱정하면서 나는 오늘도 ‘수요미식회’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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