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37) - 등려군, 그리고 피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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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37) - 등려군, 그리고 피아프
  • 차근욱
  • 승인 2015.04.0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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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사람은 슬픈 일이나 충격적인 일을 당하면 일정 순간 두뇌가 정지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드물다기 보다도 거의 없기 마련인데,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것이 바로 노래가 아닌가 싶다. 최근 들어, 개인적으로 좀 울적한 일들의 퍼레이드가 멈출 줄 모르고 있다.

아니, 울적하다기 보다는 일진이 험하고 사납고 무시무시한 나날의 연속이었달까. 자해공갈단 할아버지가 차량 앞에 뛰어 든다거나, 도로에서 차가 고장이 난다거나.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 원고를 쓰려고 하니 갑자기 데스크탑 컴퓨터의 모니터가 켜지질 않아, 랩탑 컴퓨터를 꺼내들고 작업을 하고 있다. 컴퓨터와의 연결에는 아무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니터가 켜지지 않자, 왠지 불운이 계속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새벽하늘을 보며 섬뜩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간의 모든 일들이 순전히 운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기에는 많은 일들이 내 아둔함에 기인한 것들이겠지만, 불운이 계속된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마치 적의를 띈 어떤 사악한 운명이 골목골목에서 음험하게 웃으며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고 작심이라도 한 듯.

최근에는 젖은 콩나무 씨앗을 산 ‘잭’ 꼴이 되어서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랩탑 컴퓨터를 켰을 때 우연히 등려군의 ‘月亮代表我的心’이 재생되었다. 우연히 만난 이 노래를 들으며 마치 첨밀밀의 두 주인공처럼 우두커니 멈춰 노래를 끝까지 듣게 되었는데 덕분에 작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月亮代表我的心’은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라는 뜻의 등려군의 노래이다. 중국어를 배우게 되면 가장 먼저 이해하게 되는 노래이기도 하고, 외국어로 노래를 느끼는 설레이는 경험을 하게 해 주는 노래이기도 하다. 나 역시 중국어를 배울 때 가장 처음 귀에 들어왔었고, 그 이후에는 모든 노래를 막론하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되기도 했었다. 유일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이기도 하고. 내가 노래를 좀 못하거든. 뭐, 목이 아파서 잘 부르지 않기도 하지만.

등려군은 일본에 진출하기도 하며 20대에 정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정치적 이유로 중국에서 금기시 되기도 했었다. 게다가 싱가포르 여권을 사용하면서 대만국민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었고. 파란만장한 인생 속에서 대중의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았지만, 그럼에도 잊혀질 수 없는 가수로 남았다.

등려군의 주옥같은 노래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등려군 다운 곡은 바로 ‘月亮代表我的心’이라고 생각한다. 달이 순수함을 나타내듯, 등려군 또한 순수함을 간직한 흔치 않은 사람이었기에.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

당신은 내게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었죠.
나의 정은 진실하고, 내 사랑 또한 진실하답니다.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
내 정은 움직이지 않고, 내 사랑 또한 변하지 않아요.
살폿한 입맞춤은 이미 내 마음을 흔들었고 그 깊은 정은 오늘도 당신을 그리워하게 하네요.
한 번 생각해 보고, 다시 한 번 바라보세요.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

갑자기 신기하게도 문득 ‘에디뜨 피아프’가 떠올랐다. 등려군 노래의 특징이 따스한 위로라면, ‘에디뜨 피아프’ 노래의 특징은 가슴을 찢어내는 오열이다. 두 사람 모두 40대에 인생을 마감한 여가수였고 결국 전설이 되었지만, 등려군이 천식질환으로 사망한데 비해 에디뜨 피아프는 간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두 분 모두 조금은 외로웠다고 할 마지막 이었기에, 더 가슴이 아려오지만 등려군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니 에디뜨 피아프의 ‘L'Hymne à l'amour(사랑의 찬가)’를 듣고 싶어 졌다.

‘사랑의 찬가’

푸른 하늘이 우리들 위로 무너진다 해도 모든 대지가 허물어진다 해도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신
다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만약 당신이 원하신다면 조국도 버리고, 친구도 버리겠어요.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 준다면 사람들이 아무리 비웃는다 해도 나는 무엇이건 해 내겠어요.
만약 어느날 갑자기 나와 당신의 인생이 갈라진다고 해도 만약 당신이 죽어서 먼 곳에 가 버린다해도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겐 아무 일도 아니에요.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어려서의 영양실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키가 142cm에 불과해 ‘작은 참새’로 불리웠던 피아프는 어머니가 자선병원에 가던 중, 파리의 빈민가 거리에서 태어났다. 안타깝지만, 그녀의 출생처럼 그녀의 인생 또한 불운했다. 본명은 ‘에디트 지오바나 가시옹(Édith Giovanna Gassion)’. 하지만 서커스 곡예사였던 아버지나 거리의 가수였던 어머니 모두 피아프를 양육할 능력은 되지 못했기에, 결국 매춘업소를 운영하던 할머니에게 맡겨져서 홍등가에서 자란다.

16살 무렵에 낳은 딸 ‘마르셀’ 역시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전전해야 했던 현실 때문에 뇌수막염으로 잃어야 했고 가수로서 성공한 이후 사랑했던 ‘마르셍’도 결국 잃고 말았다. 피아프의 연인 ‘마르셍 세르당’은 피아프를 만날 당시 프랑스의 유럽 헤비급 복싱 챔피언이었다. 에디뜨 피아프가 뉴욕에서 공연이 있던 날, 마르셍은 프랑스에서 시합이 있었지만 에디뜨 피아프가 자신을 보러 뉴욕에 빨리 와 달라는 말을 들은 1949년 10월 26일, 그는 시합이 끝나자 마자 배를 타고 가는 것 대신에 비행기를 타기로 한다.

하지만 비행기는 1949년 10월 27일, 대서양 중부 아조레스 제도의 로돈타 산봉우리에 추락해 버렸고, 64 KO의 109승 4패라는 위업적 기록을 남긴 이 남자는 결국 34년간의 인생을 뒤로 한 채 하늘로 사라지고 만다. 뉴욕에서 이 소식을 들은 피아프는 절규했다. 하지만 예정된 공연을 취소하지는 않았다. 그날 저녁, 피아프는 무대에 올라 ‘사랑의 찬가’를 노래하기 전 이렇게 말했다.

“오늘밤은 마르셀 세르당을 위해 노래하겠습니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서.”

불운했지만 위대했던 피아프는 사망하기 3년 전 자신의 자서전적인 노래인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를 남긴다. 이 노래는 4번의 결혼과 더불어 수없이 많은 남자와 염문을 뿌렸지만, 결국 자신이 사랑한 사람은 마르셍 뿐이었다고 말했던 그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을지도 모른다.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아니에요!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게 줬던 행복이건 불행이건 그건 모두 나완 상관 없어요.
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거예요. 아니에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의 삶 나의 기쁨이 오늘 그대와 함께 시작되거든요.

‘Non, Je Ne Regrette Rien’을 듣고서 나는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최근들어 이상하게도 불운이 계속되었지만, 그래도 후회하지 말자고. 그리고 굴하지도 말자고 다짐하면서. 살아가다보면 가끔은 내 잘못이 아니어도 심한 꼴을 당하기도 한다. 세상엔 악행의 자살골을 잔재주로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는다. 선하게 살면 결국 그 선한 마음이 자신에게 돌아오고, 악하게 살면 그 악한 마음은 본인에게 돌아간다고.

비록 세상물정 모르는 호구인 ‘잭’이 되어 버렸지만, 어쩌겠나. 남 속이지 않고 공부만 하며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을.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고 살기 위해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지. 돈은 억장이 무너질만큼 비싸게 들었지만, 귀한 교훈을 하나 얻었다. 언제나 사람 조심, 인터넷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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