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투키디데스 관점에서 보는 한국의 사드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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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투키디데스 관점에서 보는 한국의 사드논의
  • 신희섭
  • 승인 2015.04.0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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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그가 남긴 ‘인류의 영원한 재산’인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지만 약자는 그들이 해야만 하는 것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while the strong do what they can and the weak suffer what they must)”라고 했다. 그리스반도의 오랜 전쟁에서 인간과 권력의 실체를 본 투키디데스는 이것이 국제정치의 본질로 보았다.

강대국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만 약자는 해야만 하는 것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언명은 국제정치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힘의 정치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고 있는 현실주의자들의 관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마치 정글의 법칙이 작동하듯이 국가들 간의 관계는 지난 역사의 기간 동안에 투쟁과 갈등의 연속이었고 그 속에서 강자는 지배적인 모습을 보이고 약자는 생존을 위해 분을 삼키면서 강대국들의 자비를 기대하였다. 물론 모든 힘이 약한 국가들이 비굴하게 역사를 살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약소국들도 자국의 방어를 위해서 때로는 강대국을 먼저 공격하기도 했고 강대국의 공격을 승리로 막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체로 힘의 우열관계가 국가들의 행동패턴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기원전 5세기의 역사가이자 장군이었던 투키디데스의 이야기를 2015년 현재 다시 꺼내든 이유는 시진핑 주석의 ‘투키디데스의 함정’발언 때문은 아니다. 시진핑 주석은 2014년 1월 외신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것은 시진핑 주석이 역사적인 관점에서 미중간의 관계를 투키디데스의 틀로 보았기 때문에 나온 주장이다. 투키디데스는 성장하는 국가와 쇠퇴하는 국가간의 힘의 변동을 그리스 패권전쟁의 원인으로 보았다. 즉 성장하는 아테네의 국력을 바라보는 스파르타의 두려움이 펠레폰네소스전쟁의 원인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시진핑의 발언은 중국의 성장을 두려워하는 미국의 안보우려가 불필요하게 두 국가를 분쟁과 충돌로 가게 하는 것을 피하자는 의미이다.

시진핑 주석이 읽고 있는 역사적 관점에서 힘의 변동이 패권국가간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요인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당시의 맥락과 현재의 맥락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아테네가 델로스동맹을 통해서 해상에서 우월한 제국을 구축하고 있었다는 점과 대륙국가 스파르타가 이러한 힘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예방전쟁’(preventive war)을 했다는 점은 현재와는 차이가 있다. 이것을 그대로 현재 미중 간에 대입하면 해양국가 미국의 패권에 대해 대륙국가 중국이 힘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것을 우려해서 미국의 위협이 없음에도 전쟁을 먼저 예방적인 차원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진핑 주석의 발언 취지는 강대국이 힘의 변동을 마치 하나의 불가피한 요인으로 이해하고 이것에 의해서만 강대국관계를 몰아가지는 말자는 의미이다. 또한 신형대국관계에서 중국의 핵심적인 국가이익에 간섭을 하여 미중관계를 나쁘게 만들지 말자는 것이기도 하다. 이 발언을 중국의 우려로 볼 것인지 중국의 자신감 표현으로 볼 것인지는 더 깊숙하게 맥락을 보야 할 것이다. 특히 민족주의를 활용하고 있는 중국정치를 볼 때 더욱 그렇다.

강대국 간의 관계에 초점을 둔 시진핑 주석의 이야기가 아닌 대한민국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앞에서 투키디데스의 구절을 인용한 것은 미중간의 패권경쟁이 가져오는 대한민국에 대한 영향 때문이다. 강대국들이 경쟁구조로 들어갈 때 약소국은 “자국이 원치 않지만 해야만 하는 것을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 현재 대한민국 안보외교의 중요한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급속하게 한국사회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문제가 안보의 중심키워드가 되었다. 중국의 고위급 지도자들의 발언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논의가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2014년 7월 시진핑 주석은 한중정상회담에서 미사일방어체계문제에 신중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도 2014년 11월 26일 국회 남북관계 및 교류협력발전 특별위원회에서 사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2015년 2월 4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 국방장관 회담에서 창완취안(常萬全) 중국 국방부장 역시 우려를 표명했다고 알려졌다. 3월 16일에는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 조리는 “중국 측의 관심과 우려를 중요시해달라”는 강경한 발언을 했고 이는 외교적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의 최근 행보에 대해 미국도 강하게 응수했다. 3월 16일 방한중이던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제 3국인 중국이 아직 구체화도 안 된 이론적 논의에 대해 지나치게 강력하게 반발하고 간섭하는 것은 의아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과거의 일이지만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은 2014년 6월 한국국방연구원(KIDA) 주최 국방포럼 조찬 강연에서 사드는 북한의 위협에 대해 “미국이 추진한 부분이며” 한편으로 “개인적으로 (미군 당국에) 요청한 바가 있다”고 말해 사드문제가 미국의 중요한 방어전략 임에도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알린 적이 있다. 그러다 최근 중국의 날카로운 반응으로 미국도 이 문제를 수면위에 올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5년 4월 애슈턴 카터 미 국방부 장관 방한을 계기로 미국과 한국의 군당국자들이 사드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특히 카터 국방장관은 2월 달에 있었던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 가능성을 들어 본토방어를 위해서 미사일방어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발언을 했을 정도로 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사드문제가 불거지면서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도 미중간 알력의 연장선상에 서게 되었다. 중국이 기존 금융질서에 불만을 표명하면서 2013년에 제안한 AIIB는 2015년 연말에 공식적으로 출범할 예정에 있다. 2015년 3월 31일까지 참여를 신청한 국가가 47개 국가이고 여기에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의 동맹국가인 영국, 호주, 프랑스, 독일, 대만이 참여 신청을 했다. 미국에 편승하고 있는 일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들이 참여를 신청했다는 점에서 미국은 크게 한 방을 맞았다.

아시아투자인프라은행의 사례는 막강한 경제력을 갖춘 중국의 영향력과 미국중심질서에 대한 도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작년까지도 중국의 자본을 거부하던 영국 마저 중국자본의 투자 유치를 위해서 개발은행에 가입하기로 한 것은 중국의 달러외교와 요우커로 상징화되는 중국자본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의 권력 강화는 한미동맹을 안보토대로 하고 있는 한국입장에서는 부담이 된다. 미국은 2011년 11월 ‘아시아회귀정책(Pivot to Asia)’을 발표하였고 이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외교안보 노력을 기울여왔다.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서 중국을 적극적으로 견제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미국은 이 문제를 지정학을 통해 접근하고 있다. 미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게는 일본의 군사력증대를 용인할 뿐 아니라 대만에 대한 군사력증강을 위한 미사일판매를 결정하였다고 한다. 베트남에 대해서 무기금수조치를 해제하였고 필리핀에는 22년 만에 병력을 다시 배치하는 결정도 내렸다. 호주와의 동맹을 강화하고 해병대병력을 증대했고 미-일-호주 간의 실질적인 3각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넓게는 인도와의 관계도 강화하고 있다. 2015년 1월 오바마대통령은 인도 모디총리간 정상회담에서 중국영향력확대에 대해 서로 힘을 모아 중국에 대응할 것을 약속하고 방위산업의 합작투자를 통해 기술 이전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날선 경쟁은 외교적 수사 뒤에서 그리고 평화로운 국제정치의 수면아래서 진행 중에 있다. 사드는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많은 논쟁들에도 불구하고 패권국가 미국과 신흥도전 중국 간 힘겨루기가 이 문제의 본질이다. 이런 적나라한 권력의 경쟁구조의 중심에 놓인 채 한국은 어느 입장인지를 질문 받고 있다. 사드가 얼마나 많은 미사일을 맞출 것인가와 레이더가 과연 중국으로 향할 것인가와 같은 세부적인 질문이전에 과연 한국은 누구 편에 설 것인가라는 힘의 논리와 줄서기의 논리에 한 복판에 서 있는 것이다. 강대국 국력의 적나라한 충돌 사이에서 중견국가외교는 무색해지면서 강대국-약소국의 힘의 정치논리가 더 강해지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3NO(No request, No Consultation, No Decision)으로만 대처하고 있다.

투키디데스는 그의 책에서 멜로스인들과 아테네인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서 권력정치의 적나라함을 지금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권력정치의 세상에서 약소국이 바라는 것은 신이 도울 것이라는 기대나 가슴 벅찬 정의감이 아니라는 점을 아테네인들의 입을 빌려서 이야기 한다. 강력한 권력 앞에서 국가이익의 냉정함을 생각해야 한다는 당시 아테네인들이 준 교훈이 2015년 한국에게 그저 소박한 옛날이야기처럼만 들리지 않는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본질을 이야기 하는 투키디데스를 오늘 날의 한국이 다시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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