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상태로 총선 치르려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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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상태로 총선 치르려하는가
  • 장영수
  • 승인 2004.01.0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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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법대교수·법학박사


정당법이나 선거법을 비롯한 각종 법률들은 국회 내에서 정치과정을 통해 제정·개정된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 과정은 또한 법이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야 한다. 즉, 법과 정치는 한편으로는 서로 의존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견제하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법을 가볍게 생각하다가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대통령이 충분한 법적 검토 없이 재신임 국민투표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특검과 관련해서 여야 간에 시비가 발생되고, 대선자금과 관련한 각종 비리가 세상을 어둡게 만들더니, 국회의원들의 불체포특권 남용이 문제되곤 했다. 그리고 이제는 헌법재판소에 의해 2003년 말까지로 정해졌던 선거법 개정 시한을 넘김으로써 현재의 지역선거구 자체가 위헌이 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현행 지역구에 대해서 이른바 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2001년 10월 25일이다. 현행 선거법이 지역선거구를 나누어 놓은 것은 인구비례에 지나치게 어긋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장 위헌으로 선언하여 입법의 공백상태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1년2개월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고 국회에서 스스로 선거법을 개정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유예기간 동안에도 선거법은 수차례 개정됐으면서 정작 지역구에 관한 내용은 개정되지 못했다. 지역구를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국회의원들 간의 이해관계가 극도로 날카롭게 대립했기 때문에 타협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 미루다가 결국은 선거구를 새로운 기준(헌법재판소가 제시한 기준은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의 인구편차가 3 대 1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에 맞춰서 정하지 못한 채 기한을 넘긴 것이다.

그 결과 현행 국회의원 지역선거구 구역표는 무효가 됐으며, 이제는 모든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없는 국회의원이 되고 말았다. 물론 선거법 개정에 의해 새로운 지역구가 정해지는 경우에도 과거의 지역구와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에 적지 않은 혼란이 있고, 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그와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역구의 분할은 선거를 위해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금년 4월 총선에 지장이 없는 기간 내에 정해지기만 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기존 선거구의 기득권을 지키려고만 할 경우에는 총선 전까지 합의가 도출될 수 있으리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며, 자칫하면 선거 자체가 불가능해지는(그래서 국회 자체가 구성되지도 못하는) 엄청난 사태로 비화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런 극단적인 경우는 잠시 접어두더라도 당장 발생되고 있는 문제들 또한 적지 않다. 총선 전에 재선거나 보궐선거를 치를 일은 없겠지만, 지역구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각 정당들의 지구당은 어떻게 되는가, 지구당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 근거를 상실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까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신당을 창당하는 것과 관련하여 그 요건 중의 하나인 일정 수의 지구당 확보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도 가볍지 않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2월의 임시국회에서 이 문제를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 임시국회의 회기가 8일 끝나는데, 그 전에 처리될 전망은 없다는 것이다. 정당 간의 이견 조정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위헌적인 상태를 1개월 이상 끌게 되는 데 따른 부담은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됐다고 해서 책임질 일도 없고, 어차피 선거법 개정은 국회의 손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분명 법률은 정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아무 기준 없이 내키는 대로 법률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 위헌심사제도가 존재하는 것이고, 국민이 직접 만든 헌법이 법률의 기준과 한계를 정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무시할 경우, 그에 대한 통제는 헌법재판소가 아닌 국민이 하게 된다. 헌법의 주인은 헌법재판소가 아닌 주권자, 즉 국민이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 심판을 기다리는 국회의원들은 이런 위헌적 사태에 대해 국민 앞에 무어라 변명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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