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32)- 취미를 말한다.
상태바
차근욱의 'Radio Bebop'(32)- 취미를 말한다.
  • 차근욱
  • 승인 2015.03.04 11: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의(衣)’, ‘식(食)’, ‘주(住)’ 세가지이다. 하지만 ‘밥만 먹곤 못살아’라는 말처럼, 인간이 살아가는데 정작 필요한 것은 ‘의식주’만은 아니다. 가끔은 뜬금없는 질문들이 떠오르는 경우들이 있는데, ‘행복하니?’라는 질문도 그 중의 하나였다.

‘생존’은 기본적인 것이기에, ‘삶의 질’이라는 것은 생존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그렇다면 ‘취미’는 어떤 의미일까? 사람을 행복하게도 해 주고, 삶의 질을 풍요롭게도 해 주는 것이 아마 ‘취미’가 아닐까 했다. 예전에는 ‘취미’ 운운하는 것이 좀 배부른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먹고 사는 것도 쉽지 않은 마당에 무슨 취미? 하는 느낌. 그건 아마도 꼭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지 않았을까. 다들 하루 하루가 쉽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책이나 TV를 보면 꼭 ‘취미’이야기는 나오니까, 혹시 누가 물어볼라치면 나는 ‘취미’를 뭐라고 답해야 하나, 라고 해서 ‘자신’의 취미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대답’할 취미를 고민하기도 했었다.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몇 가지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취미’도 그 중의 하나이다. 원래 나의 취미는 ‘사진’이었다. 우연히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사진을 배웠고, 선생님의 암실에서 몇 날이고 밤을 새우며 현상이며 인화며 하곤 했었다. 사진을 처음 배웠을 때에는 정말 온 세상이 달라보였고 더 좋은 구도를 고민하다 만족스러운 사진이 나오면 그렇게도 기뻤다.

특히 명작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비명에 가까운 찬탄이 나오기도 했었는데, 자연광을 이용해 질감을 극대화해 자신만의 감성을 담아낸 사진의 아름다움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물론, 포토샵이 있으니 디카 파일을 조금 가공한다면 그까이 것, 감성 사진이야 못만들겠느냐 싶기도 하지만, 필름 카메라를 이용해 포토샵 없이 담아낸 사진이야 말로 장인혼이 담긴 진짜 사진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었다.

그런데 이 ‘사진’이라는 취미는 문제가 한 가지 있다. 기본적으로 ‘시간’과 ‘돈’이 드는 취미라는 점. 그러니 ‘시간’도 ‘돈’도 여의치 않은 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사진과는 멀어지고 만다. 처음에는 노출감도나 셔터속도를 따지면서 그렇게 몰두하기도 했었지만, 어느새인가 그 모든 소리가 꿈결 속 공상처럼, 기억도 나지 않는 이야기들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취미’라는 것은 ‘균형추’와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기 자신의 균형감각을 잃지 않도록 해 주는 것. 밸런스를 잡아주는 것. 그것이 바로 ‘취미’라고. 그리 거창할 것도 없고 그리 화려할 것도 없이, 무언가 몰두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정신적으로 쉴 수 있는 것이면 좋은 취미이다. 가끔 프라모델을 취미로 삼고 계신 분들의 작품을 사진으로 접할 때면, 그 들어간 엄청난 공력에 식은 땀이 날 때마저 있다. 우선은 그정도 공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엄청난 스트레스인지라 골부터 지끈거려온다. 하지만 이런 무식한 소리는 ‘관심사’에 따른 차이이자 오해이기도 하다.

예전에 개인적으로 괴로운 일을 겪으신 분께서 아들의 부탁으로 억지로 프로모델을 만들다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몰두하게 되어버려 괴로운 일을 잊고 잠시나마 정신적인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는 글을 읽은 뒤 프라모델의 미덕을 새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렇다. ‘취미’에 유치하다 고상하다 따위의 평가란 무의미하다. ‘취미’는 그냥 그 자체로 본인에게 만족감을 주고 정신적인 평화를 줄 수 있다면 되는 것이 아닌가! 비록 프라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정도의 섬세함과 꼼꼼함도 필요하지만 그러한 노력을 통해 심신이 평온해 진다면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지 ‘명상’의 한 종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글을 읽고 깨달았던 적이 있었다. 품이 많이 들어간다고 해도, 그런 디테일함을 추구하는 것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분들은 얼마든지 계시니 이를 두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던가 다 큰 어른이 장난감을 갖고 논다는 식의 품평은 무식하기 이를데 없는 말이다.

그래도 ‘취미’는 생활 속에서 접하기 쉽고 즐거워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깊게 몰두해 모든 괴로움도 슬픔도 달랠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 잠깐이라도 일상에서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말 좋은 ‘취미’라고 말이지. ‘취미’라고 해서 굳이 대단할 필요는 없다.

그런 면에서 가장 부러운 취미는 ‘연주’가 아닐까 싶었다. 피리처럼 아주 가볍고 작은 악기부터 피아노처럼 무겁고 큰 악기까지.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스스로 연주하면서 자신의 기량을 즐길 수도 있고 아름다운 선율에 감정을 추스를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악기 하나만 있으면 그 이상의 돈도 시간도 강요당하지 않는다. 물론, 일정한 실력 이상이 되기까지는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매번 단계 단계마다 자신의 연주를 즐길 수 있다면 그 시간도 별다르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시간일 다름이니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진처럼 날을 잡아서 바디와 렌즈를 부랴부랴 싸들고 화창한 날씨를 기다려 나가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렸을 때 부터 악기 연주를 하나쯤 배워 놓았다면 그것은 정말 부모님께 감사할 축복이다. 어른이 되어서 새롭게 악기 연주를 배운다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니까. 특히 악보를 보는 방법을 따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갑갑해진다. 집에서 원고 작업을 하고 있노라면 가끔 어딘가의 누군가 피아노를 치는 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는데, 진심으로 연주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무식한 나도 알 수 있을 정도의 연주였다. 가끔은 감미롭게, 가끔은 격렬하게. 그 연주를 들으면서 진심으로 피아노 연주를 취미로 가지신 분들이 부러워졌었다. 특히 악기 연주는 역시 사람의 심성을 달래주기 때문에 최고의 취미라고 할 밖에는 없다.

취미로서 생각들을 잘 하지는 않지만 근사한 취미 중의 하나는 ‘요리’이다. 나는 원래 게으르고 손재주가 없는 인간인지라 ‘요리’를 취미로 삼기에는 좀 무리다. 그렇기에 정말 감각이 남달라 즐겁게 만들고 즐겁게 드시는 분들을 뵐 때면 새삼 존경스럽다. 특히 대단치 않은 재료로 굉장한 요리를 만들어 내는 현장을 보고 있노라면 신은 분명 존재하는 것이리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단순한 계란찜이나 계란말이를 해도 맛이나 식감 자체가 다르고, 요리를 준비할 때부터 뒷정리를 하는 과정까지의 모두가 마치 하나의 춤사위를 보듯, 매끄럽고 거침이 없다. 특히, 요리를 함께 하는 과정이란 굉장히 즐거운 것이어서, 미주알 고주알 수다를 떨며 요리를 만드는 시간은 그야말로 노동이 아니라 휴식이라는 느낌. 그렇게 요리를 즐길 수 있다면 충분히 자신의 삶을 지탱해 내는 ‘취미’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무리 괴롭고 힘든 문제라 할지라도 요리를 하면서 풀어낼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정말 경이로운 취미는 ‘청소’였다. 나는 원래 청소를 잘 못하는 편이라 아무리 정리 정돈을 해도 금방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그렇게 한동안만 지내도 청소에 대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가 되어 버리는데, 그런 나와는 달리 ‘청소’자체가 즐거움이라는 분도 뵌 적이 있다. 물론, 요리나 청소를 하나의 가사노동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미학적 측면에서 창조의 과정이자 인테리어의 연장선으로 접근하는 시각도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의 재능이란 어느 정도 타고 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요리나 청소에 있어서는 그 감각의 차이가 그야말로 명확하다.

나같은 인간은 세상에는 고갈되는 체력을 절감해가며 끙끙대면서 청소를 해도 차이가 별로 느껴지질 않는가 하면, 콧노래를 부르며 토끼춤을 추는 듯 했을 뿐인데 공간을 새롭게 창조하는 분들도 계시는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청소’가 ‘인테리어’라고 할 정도의 경지인데, 정말 삶의 질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 주는 취미이다. 특히 청소는 ‘버림의 미학’이라고도 생각하는데, 버리지 않고는 정리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미련을 버리고 쓰지 않는 물건들은 과감하게 처분하는 결단력이나 미루지 않고 그때 그때 오밀조밀하게 구조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는 천재성을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감탄할 다름이다. 그 분들에게 청소란 즐거운 놀이의 일종이고 성취감의 매개체일 뿐이지, 내가 느끼듯 스트레스의 일종이 아니기 때문에 분명히 ‘취미’인 동시에 ‘라이프 스타일’이기도 하다. 정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의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려면 자기 자신만의 무기인 ‘취미’가 하나 정도는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다지 시간과 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만족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생활의 일부로서,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세계에 집중하며 온갖 근심을 풀어내 다시금 세상에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담력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취미가 아닌가 하고.

물론, 남들이 갖고 있는 취미라고 해서 억지로 따라할 필요는 없다. 자신은 자기만의 성향에 따라 스스로 즐거운 취미를 발견해 내면 족한 것이니까. 남들이 아무리 무어라 해도 나 자신이 몰두해서 기쁜 일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취미이다. 이제와서 새로운 취미를 갖기엔 너무 늦지 않았냐고? 후후후, 만약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다시 한번만 묻겠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