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임혁백 교수의『비동시성의 동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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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임혁백 교수의『비동시성의 동시성』
  • 신희섭
  • 승인 2015.01.30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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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최근에 한국정치에 관한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애정이건 애증이건 본인의 주장과 달리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한국정치에 대해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관심은 “친한 사이에는 정치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말라”는 조언에서 잘 드러난다. 오죽 관심이 많으면 “정치=투쟁”으로 이해하고 자신과의 투쟁을 피하라고 조언할까!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은 한국정치를 한 가지 개념을 통해서 전체윤곽을 가지고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복잡다난한 한국정치를 한 눈에 꿰뚫어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은 복잡한 이론해석이전에 시원한 맛을 준다. 

서두가 길었다. 흥미를 더 떨어뜨리기 전에 책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임혁백 교수의 한국정치를 다룬 책인『비동시성의 동시성: 한국 근대정치의 다중적 시간』(고려대출판부)이 2015년 새해와 함께 출판되었다.  

이 책은 책 제목처럼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정치에 대한 많은 책들이 있다. 정치사에 관한 책들이 있고 정치론에 관한 책들도 있다. 정치사가 역사에 초점을 두고 정치론은 이론적 해석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설명의 방식은 다르다. 물론 역사를 설명할 때 이론적 관점을 배제하고 서술하지는 않지만 주 관심이 무엇인가에 대한 입장은 차이가 있다.

 

이 책은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한 가지 개념을 통해서 한국정치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접근한다. 일관성 있게 한 가지 이론으로 역사를 살펴본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정치사와 정치론을 병행하고 있다. 일반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론의 관점에서 한 가지 설명요인을 가지고 살펴보는 책들은 많이 있다. 반면에 사람들로 이루어진 특수성을 강조하는 역사를 한 가지 이론요인으로 다루는 것은 역사적 동력을 드러내주기 어렵기에 이론적 일반화를 거부한다. 그런 점에서 『비동시성의 동시성: 한국 근대정치의 다중적 시간』은 중요한 이론적 동력원을 통해서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흥미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개념은 두 가지 상이한 반응을 가져올 수 있다. 첫 번째는 개념자체가 가지는 난해함과 그로 인해 “이게 뭐지”라고 뒷걸음치게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정치학이 포함된 사회과학 분야를 다루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면 개념자체가 주는 난해함과 그에 따른 위압감에 압도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애물을 지나치고 나면 두 번째 반응을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아 그럴 수 있겠네”하며 관심을 가지고 한 걸음 다가가게 하는 것이다.

물론 위의 두 가지 반응은 다른 책들에서도 나타난다. 대부분의 책들의 경우에 첫 번째 장애물을 통과할 수 있으면 두 번째 반응이 나타난다. 특히 첫 번째 장애물이 높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 책 역시 장애물을 넘어서 볼 수 있는 그림이 재미있다는 것은 유사하다. 좀 더 특별히 재미있는 부분은 책이 이끌어 주는 일관성에 관한 것이다. 각 시대를 다른 틀을 가지고 분산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전체를 아우르는 줄기를 잡고 진전한다는 점은 책을 계속해서 읽게 만든다. 마치 진주알들을 잘 꿰고 있는 목걸이 줄을 연상하게 한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시대전체를 줄줄이 엮어준다는 것은 확실히 이 책의 장점이다.

그렇다면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무엇인가?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같은 시간에 존재할 수 없는 역사적인 시간이 같은 시대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동시에 존재할 수 없을 시간(비동시성)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동시성)는 것이다. 이 개념은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가 체계화하였다. 1935년에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와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시기 독일에서는 프러시아를 독일로 만들었던 1870년대의 권위주의적인 방식의 전근대적인 문화가 유지되고 있었다. 또한 가장 민주화된 헌법과 정치제도라고 하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근대적인’ 자유민주주의 문화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히틀러가 주도한 낭만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전체주의라고 하는 근대에 대한 반동적인 활동과 운동이 있었다. 그런가하면 다다이즘과 같은 초현실주의적인 문화가 ‘탈근대’를 이끌고 있었다. 블로흐가 주목한 것은 이처럼 같은 시기에 존재하기 어려운 다른 역사적인 시간이 동시대에 같은 공간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가 주목한 부분은 바로 이점이다. 저자는 복잡하지만 한편으로 축약가능성이 높은 이 개념이 한국 정치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한국을 보면 이 개념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알 수 있다. SNS를 이용하여 정보를 주고 받는 현재 시점은 ‘탈근대’를 대표하고 있지만 계파정치와 가신정치의 모습은 ‘전근대’의 유산이다. 완전한 국민국가를 위한 남북통일과 더 높은 산업화를 위한 성장동력과 민주주의를 질적 상승하기 위한 제도적인 모색은 ‘근대’를 대표한다. 이처럼 우리는 비동시성의 동시성 개념학습 이전에 한국정치가 복잡하게 시간적으로 얽혀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자는 한국정치의 근대가 1876년 개항에서 시작해서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회과학적인 분석적 틀로 볼 때 시간은 상대적이다. 에릭 홉스봄은 ‘긴 19세기’와 ‘짧은 20세기’로 20세기를 짧은 시기로 규명한데 비해 조반니 아라기는 20세기를 ‘긴 20세기’로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긴 20세기’를 어떤 틀로 보아야 할 것인가? 이렇게 제기된 문제제기는 블로흐의 개념을 통해서 일관될 뿐 아니라 입체적으로 파악될 수 있다. 

프롤로그에서 던져진 문제제기를 풀어내기 위해 이 책의 1부는 이론적 틀과 한국근대시간의 일반화를 시도하고 있다. 1장 “이론적논의: 비동시성 시간의 공존과 충돌”에서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개념을 구체화하고 있다. 또한 이 개념의 설득력을 위해 비교의 방법을 통해서 독일뿐 아니라 서구국가들과 주변부국가들에서 나타나는 비동시성의 동시적 공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장에서는 ‘다중적인 시간’, ‘다양한 근대’, ‘지정학적 비동시성’에 대해 한국정치를 일반화하여 한국정치의 거시적 시각을 제시한다.

제2부는 한국의 정치사를 각 시기별로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이 설정한 근대의 시간이 넓은 만큼 다루는 범위도 개항시기부터 이명박정부까지로 상당히 넓다. 3장에서는 한국근대의 전사를 간략히 다룬 뒤 일제 강점기를 한 개의 장(4장)으로 설명한다. 이후 책은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역사를 분석해간다. 해방시간의 정치(5장), 1948년체제의 형성(6장), 한국전쟁과 근대국가의 건설(7장), 이승만체제의 성쇠(8장), 혁명의 시간과 쿠테타의 시간(9장), 박정희와 산업화의 시간(10장), 유신시대의 등장과 몰락(11장), 5공군벌주의(12장), 1980년대 민주화의 시간(13장), 1987년 체제(14장), 3김시대 이후의 민주주의(15장).

제3부에서 한국근대화의 특성과 미래 예측을 통해 한국정치의 과제에 대한 제안을 한다. 그리고 책은 긴 역사적 분석을 “비동시성의 극복과 지양”으로 맺는다. 

거시적 관점에서 한국정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통해서 체계화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이 다른 책들과 가장 구분되는 점이다. 한국정치에 있어서 경로의존적인 구조적 부분과 행위자 수준으로 치환될 수 있는 부분을 동시에 고려하게 한다는 점은 균형감이라는 이 책의 장점을 더욱 부각시킨다. 좌와 우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저자의 노력은 최근 진보-보수 갈등의 한국정치가 보여주는 성급함과 이데올로기적인 편향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지도자적 관점과 민중적 관점의 동시적 분석 역시 한국정치를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현상파악의 지침이 될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민중의 시각을 반영하기 위해 책 중간중간에 시대를 반영하는 시들이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딱딱한 사회과학서적에서 느끼는 인문학의 새로움이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이 책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될 수 있다. 전체 850페이지가 주는 책의 부피감은 한국정치 전체를 아울러 볼 수 있게 해준다는 통쾌함과 더불어 심리적인 부담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세부적으로 느끼게 될 책의 장점과 단점은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판단할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치에 관심이 있거나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일독하기를 권할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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