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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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20)
  • 신종범
  • 승인 2015.01.30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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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서울구치소 접견실

 

 
 

 

 

 

 

신종범 법무법인 더 펌(The Firm)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금요일 아침 출근길은 발걸음이 가볍다. 재판 일정이 없으면 더욱 그렇다. 써야할 서면들이 있지만 왠지 여유가 느껴진다. 점심을 먹고 퇴근 후의 약속을 기대하면서 한 주일을 정리한다. 물론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 하루는 나와 일해야 하지만 그래도 금요일 저녁은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다. 금요일 이니까...

저녁 약속에 들떠 있던 어느 금요일 오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고등학교 동창 A였다. 술 한잔 먹자는 전화인 줄 알았더니 녀석의 조카가 어제 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전화였다. 폭행사건으로 기소되어 재판받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고 법정구속되었다는 것이다. A에게 일단 사건 내용을 파악해야 하니 변호인 접견을 먼저 해 보겠다고 했다. 다른 요일 같으면 그 다음날 접견하는 것으로 신청했을텐데 그날은 금요일이라 다음날이 토요일인 관계로 바로 접견을 신청해야 했다. 서울구치소는 최소 2시간 전에는 접견을 신청해야 한다. 변호인 접견 신청을 해 놓고 접견 시간에 맞추어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이상하지만 서울구치소는 행정구역상 서울에 있지 않고 경기도 의왕시에 있다. 원래 서대문구에 서대문형무소로 개청하였다가 서울구치소로 명칭이 변경되고 그후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였지만 명칭은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성동구치소도 성동구에 있지 않고 현재 송파구에 있다.

지하철 인덕원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니 아저씨가 서울구치소 가느냐고 바로 묻는다. 얼마후 서울구치소에 도착하니 일반 면회객들이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변호인 접견실로 통하는 커다란 철문 앞에 도착하니 한 두번도 아닌데 여전히 심장이 조금은 빨리 뛴다. 신분증과 핸드폰을 맡기고 출입증을 받은 후 육중한 건물안으로 들어선다. 처음 구치소에 접견을 왔을 때 출입증을 받아들고 접견실이 있는 수용동 건물안으로 들어섰는데 안내해 주는 사람도 없고 안내판도 쉽게 찾지 못하여 여기서 길을 잃으면 어떡하나 핸드폰도 없는데 하며 걱정하던 생각이 났다.

변호인 접견실로 들어서니 많은 변호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에 접견온 것은 처음이었는데 주말에 접견이 안되다 보니 금요일 오후에 접견이 많다고 하였다. 순서대로 교도관이 변호인 이름과 수용자 이름을 부르면 서로 만나서 - 마치 집단으로 소개팅을 하는 자리 같다 - 플라스틱유리로 구분된 조그만한 공간에서 접견을 하게 된다. 물론 접견시 교도관이 참여하지 않고 변호인과 수용자 간에 칸막이도 없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서류 등을 보여 줄 수도 있다. A의 조카는 처음에는 긴장한 듯 하다가 조금 시간이 흐르자 여유로운 모습까지 보였다. 그에게서 사건의 경위 등을 이야기 듣고 아픈 곳은 없는지 등을 물었다. 그는 자신의 범죄가 실형이 나올 정도는 아닌데 1심 판사가 터무니없이 법정구속하였다고 하면서 얼마 후 항소심이 열리면 곧 풀려날 것이라고 했다. 필자가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물으니 구치소내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알려 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중에 이곳을 자주 드나든 갑은 누구누구 변호사를 사면 사건이 더 잘 풀릴 수 있다는 말도 하였다고 한다. 구치소내 사건브로커가 있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사실인 모양이다. 얼마간 이야기를 나누고 접견을 마치려고 하는데 맞은 편 구석에 위치한 접견실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제일 구석에 위치해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젊은 여자 변호사와 나이 지긋한 수용자가 접견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필자가 접견을 시작하기 한 참 전에 접견이 시작된 것 같은데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참 열심히 하시는 변호사님이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지켜보니 수용자는 다리도 꼬고 팔짱을 낀채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음을 짓는 반면 여자 변호사는 표정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은 채 마지못해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것 같았다. 보통의 변호사와 수용자의 접견 모습은 아니었다.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얼마전에 들었던 어느 로펌에서 접견만을 전문하는 변호사를 모집하였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날의 금요일 오후는 그렇게 서울구치소에서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후 ‘땅콩회항’의 주인공 조현아씨가 구속되면서 그의 구치소 생활에 대한 기사들이 보도되었다. 그 보도들 중엔 대기업 총수나 유력정치인들은 구치소 수감 중에 밥 먹는 시간만 제외하고 무한정으로 변호사접견을 하고 있다는 내용과 그들의 접견을 위하여 접견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들도 있고 지루하지 않게 여러명의 변호사들이 교대로 접견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더욱이 접견실 안쪽 등 유력인사들이 접견하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는 기사를 보고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변호사 접견권은 미결수용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기본권으로 헌법재판소도 그 권리를 제한할 수 없음을 여러차례 결정을 통하여 확인하였다. 그런데, 매일 마다 하루 8시간 변호인 접견을 하였다면 이를 순순히 방어권 보장을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변호사 수가 많아지면서 사무실을 꾸려 나가기도 어렵게 되었지만 ‘황제접견’을 위해 ‘집사변호사’를 자청하고 나서는 현실을 보며 씁씁한 마음이 쉬이 가시질 않았다.

이번 주말에는 예전에 고시공부했던 신림동을 가볼까 한다. 기거했던 고시원이 그대로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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