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법연수원을 나서며...
상태바
[기고] 사법연수원을 나서며...
  • 김동호
  • 승인 2015.01.23 14: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동호·제44기 사법연수원 수석·서울대 법학과 졸업

“내 능력을 다 발휘 못하는 것은 죄 짓는다는 생각에 열심히”

I. 들어가며

떠들썩한 수료식이 끝나면서 저의 2년간의 연수원 생활도 마무리 되었습니다. 군대에 들어가기 위한 짐을 싸면서 지난 2년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살아온 24년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뿌듯하기도 했지만, 실수를 했던 적도 정말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 날들을 생각하면서 제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 스스로의 부족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에도 연수원 생활을 회고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쓰게 된다니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그래도 연수원에서의 2년은 힘들면서도 즐거운 추억이었고, 여러 분들과 공유하고 싶기도 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회고하기에 앞서 후배님들을 위해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사법연수원은 기본적으로 실무가를 양성하는 기관입니다. 실무가는 자동차 운전사나 비행기 조종사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마치 운전할 때와 같이 예측할 수 없는 돌발상황이 매번 갑자기 등장하는데, 이를 처리하기 위해 짧은 시간만이 주어집니다. 따라서 상황 발생 전에 기본지식은 갖추어져 있어야 하고, 상황을 신속히 파악한 후 일정한 깊이의 사고를 빠른 시간 안에 거쳐서 결론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즉, 법리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법리를 순발력 있게 떠올려 결론을 내려야 하고, 그 결론도 일정한 형식, 기재례에 맞추어 작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활적인 측면에서도 혼자 틀어박혀 공부만 하기보다는 사회생활, 조직에 대한 참여 및 기여를 병행하면서 업무를 처리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연수원의 커리큘럼이나 시험제도 및 각종 행사들을 살펴본다면 전체 과정들이 궁극적으로 위와 같은 실무가의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앞으로 연수원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를 고민할 때 위와 같은 실무가의 像을 생각하면서 그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생활하기로 계획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II. 1년차 과정

1. 1학기

3월에 설레는 마음으로 입소식을 하고, 처음 뵙는 교수님, 8반 동기 형, 누나들과 회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밀려오는 진도를 소화하는 둥 마는 둥 ‘시험기간 다가오면 공부하겠지’ 하며 체육대회 준비를 한 기억도 납니다. 체육대회 끝나고는 본격적인 공부를 앞두고 출정식도 했습니다. 계속 공부하자 공부하자 하면서 출정식만 여러 번 했던 기억이 나네요. 룸메이트 형의 추천으로 스터디에 가입하여 환영식도 하고 공부도 하고 공부한다는 명목 하에 수다만 떨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법정 방청도 설레는 경험이었고 민사 모의재판도 작은 주제이기는 했지만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1학기 시험은 2,3학기 시험에 비해 특수한 면이 있는데, 1학점(또는 2학점) 암기과목이 많고 주요실무과목의 경우 1년차 통합학점의 15% 비중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암기과목이든 주요실무과목이든 일부를 버리기도 아깝고 그렇다고 다 하자니 양도 너무 많은 것 같고 대세에 지장도 없는 것 같아 ‘계륵’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뭔가를 포기한다 하여 나머지에 더 충실한다는 보장도 없고, 뭔가 버리기 시작하면 앞으로도 연수원 과정에 충실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끝까지 어떻게든 끌고 나갔습니다. 되돌아보면 1학기 시험 자체의 영향력이 적은 것은 맞지만, 1,2점의 점수로 학점이 갈리는 상황에서 1학기 시험 나름의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1학기 때 많은 과목을 잘 마무리했다는 자신감이 그 후에도 좋은 영향을 많이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1학기 시험은 정보전이 그나마 제일 의미를 갖는 시험이고 저도 그러한 점이 불안하기는 하였으나, 본질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일반적으로 흘러다니는 정보만으로도 대부분 해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2. 여름방학

단언컨대 여름방학은 방학이 아니었습니다. 쉬고 싶기도 했지만 2학기는 연수원에서 가장 힘든 시기라는 말을 들어서 긴장을 늦추지 않았는데, 매우 다행이었습니다. 만약 여름에 나름 대비를 철저히 하지 않았다면 2학기 내내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 같습니다. 저희 때 방학은 전 기수보다 한 주 줄어 4주 정도였는데, 2학기 대비를 하자면 4주 남짓 되는 기간으로는 매우 부족했습니다. 저희 스터디는 1주를 휴가기간으로 두어 각자 흩어져 가족휴가 등을 다녀오고, 나머지 3주를 민재, 형재, 검찰에 1주씩 배정했습니다. 형재의 경우 2학기부터 검토보고서라는 무시무시한 것이 새로 도입되는데, 44기 여름방학까지만 해도 그 형식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민재, 검찰을 먼저 하고 형재는 마지막에 부담 없이 하는 데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했는데 잘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전 기수 2학기 기록이 민재는 4개, 검찰은 5개였으므로 민재는 하루 쉬고 평일 4일, 검찰은 월~금까지 5일동안 하루에 한 개씩 모여서 기록을 썼습니다. 민사집행법과 형사판례요약집도 1일 단위로 진도를 할당해서 다 보려고 하였으나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 에어컨도 잘 안 틀어주다보니 지치고 힘들었지만, 함께 했기에 버틸 수 있었고 나름 즐겁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스터디원들간의 친목도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기록쓰기가 끝나면 저녁은 항상 맛있는 것을 찾아 먹었는데 그것도 식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었던 점만 빼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3. 2학기

2학기 초에 모의재판이 한 번 더 있는데, 이 때는 정말 재판다운 재판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형사모의재판 기록이 실제 기록과 유사한 것을 알고 실제 사건 장소를 검증한답시고 팀원 몇 명이서 종로에 가서 주된 목적이었던 족발도 먹고 나름 검증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법문화축제도 즐거웠습니다. 9월부터는 공부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중간중간 추석, 반·조 행사 등이 있어 분위기가 조금씩은 떠있는 상태가 되고, 10월은 되어야 완전 공부 모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1학기와 달리 2학기부터는 지식 자체를 직접 묻기보다는 기록의 형태로 문제를 내고 문서 자체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답을 요구하기 때문에, 한 번 앉으면 최소 5시간은 기록에 집중해야 하고, 중간에 다른 일을 하면 기록 쓰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쉴 때는 확 쉬고 공부할 때는 막대한 집중력과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쏟아서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2학기는 기본실무과목의 학점이 나오기 때문에 그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집니다. 그러면서 암기과목 포기 유혹이 다시 한 번 강하게 드는데, 마찬가지 이유로 끝까지 책을 놓지 않았고, 역시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기억에도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시험기간 자체가 2주가 되고 시험시간도 한 과목에 7시간 30분 정도 되기 때문에 체력에도 신경 써야하고, 형식 문제는 2학기까지 완성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III. 겨울방학 이후

1. 겨울방학

일단 공부다운 공부는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저희 때에는 3학기 시험이 5월 중순에 있었기 때문에 시간 여유도 더 많았습니다. 12월에는 울릉도로 법률봉사를 가서 법률상담도 해 주고 특강도 했습니다. 법률상담을 바탕으로 울릉도 내 3개 주유소의 경윳값에 대하여 담합 의혹을 제기하고 주유소 사장님들을 설득하여 경윳값을 리터당 100원씩 즉시 인하시킨 사건도 정말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습니다. 작은 사건이었지만 법률가가 사회 정의를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울릉도는 겨울에 배가 안 뜰 때가 많은데, 저희도 울릉도 들어간 뒤 8일동안 배가 안 떠서 9일째에 비로소 육지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비용이 지원되지 않아 순수 자비를 써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비용 문제를 떠나 정말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2. 3학기

2월에 기숙사에서 나가게 되어 단기 오피스텔 임차를 할까 하다가 인천 집으로 들어와 통학생활을 하였습니다. 고시공부 시절에도 왕복 3시간을 통학했었기 때문에 별로 큰 고민은 하지 않았습니다. 연수원에 수업을 나갈 때 약속을 잡고 수업 없는 날은 집에서 꼬박 공부를 하였습니다. 3월 중순정도까지는 수업이 꽤 있고, 연수원에서 수업을 분산시켜 놓았기 때문에 수업을 하나 들으러 왔다갔다 하는 것이 힘들기는 하였습니다. 하지만 집에 있을 때는 좋은 집밥 챙겨먹으면서 외부의 영향을 전혀 안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았고, 시험 후반부로 갈수록 집의 이점이 더 커졌습니다. 시험기간에는 연수원까지는 수고스럽게도 아버지께서 아침에 태워주시고, 시험 끝나고는 택시를 타고 왔습니다.

2학기 때 다소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 하더라도 겨울방학 및 3학기 기간을 거치면서 대다수 이를 보충하여 일정 수준 이상 갖추고 시험에 임하기 때문에, 3학기 시험은 2학기 시험보다도 성적 변동이 더 심하고 실수가 더욱 용납되지 않습니다. 내용이 어렵고 범위가 제한되지 않으며 리걸마인드를 동원해서 풀어야 하는 이른바 ‘최후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내용에서 일부 틀릴 것을 감안한다면 실수(특히 기재례 등 형식적 실수)는 절대 불가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3학기는 기록 작성시간이 많지 않고 사례연구도 추가로 나오지 않다보니 기록 작성, 답안 작성의 감은 2학기보다도 더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시험 1개월 전쯤부터는 답안작성연습을 다시 하면서 실전 감각을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3학기 때 봐야 하는 판례집의 양이 많다보니 판례집만 계속 보다가 들어가는 경우도 생기는데, 그렇게 되면 2학기 때는 맞추었던 기본 법리적 내용들을 3학기 때 오히려 틀리게 될 가능성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저희 때는 특히 민재 오후시험과 형재시험의 시간이 너무 촉박했던 것 같습니다.

3. 시보기간

시보기간은 ‘즐거움과 뿌듯함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법원, 검찰, 변호사시보 모두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는데, 특히 검찰시보 때 지도검사님께서 검찰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써주시고, 압수수색영장, 체포영장 집행, 검찰시민위원회, 변사체 부검, 검시 등 평소에 접하기 쉽지 않은 일들을 한 번씩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이 기간에 그간 못 만났던 분들도 많이 만나고 대학원도 허가를 받아 다니면서 즐겁고 뿌듯한 6개월을 보냈습니다.

IV. 나오며

교수님으로부터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완전 실감이 나지는 않습니다. 제가 작성한 답안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능력과 제가 들인 성의에 비해 너무나도 과분한 결과를 받게 된 것 같습니다. 수석이 되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한 많은 분들 대신에 제가 이 자리에 있게 되어 무거운 책임감도 느낍니다. 다만 저는 각자가 각자에게 부여된 능력을 모두 발휘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국가와 사회에 손해를 가하는 것이고, 따라서 가지고 있는 능력을 그 노력을 게을리하여 다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연수원 시절에도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최대한 노력을 하였고, 그것이 오늘의 과분한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이러한 큰 결과를 저에게 주신 것도 항상 겸손한 자세로 이 세상에 정의를 펼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먼저, 지금의 저를 있게 해주시고, 지금까지 집에 보탬이 되지 못하고 폐를 많이 끼쳤음에도 묵묵히 저를 지원해주시고 제가 힘들 때마다 기댈 수 있었던 부모님께 가장 감사드립니다. 양가 친척분들께도 모두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저를 항상 올바른 법조인의 길로 인도해 주신 문병찬 교수님, 심규홍 교수님, 정연헌 교수님, 임광호 교수님, 김명섭 교수님, 하재욱 교수님을 비롯한 모든 연수원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으로 검찰시보 기간 동안 지식은 물론이고 인생에 관하여도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사명감과 능력과 겸손함을 갖추어 법조인의 모범을 보여주신 손진욱 지도검사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대학교에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많은 가르침 주시는 서울대학교 김재형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항상 저의 초심을 잃지 않게 해 주시고 나은 사람보다 된 사람이 되라고 이끌어주시는 은사님이자 인생 선배이신 전대희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연수원 2년 생활하면서 부족함이 많았음에도 저를 이해해주고 챙겨준 44기 8반 동기 형, 누나들, 친구 지영이, C조 형, 누나들 특히 반장 창협이형, 조장 정규형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가장 힘들었던 1년차 시기에 힘든 공부 함께 하면서 놀 때는 유쾌하게 놀기도 하고 많은 즐거운 추억을 남겨준 우리 ‘진가’ 스터디 혜선누나, 우중이형, 진하형, 보현누나, 도경누나 모두 감사합니다.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태현이형, 기숙사 옆방 쓰면서 힘들 때 모든 푸념, 투정들 다 받아준 정훈이형 감사합니다. 항상 옆에서 저를 격려해주고 동시에 저의 부족함을 일깨워준 사법시험·변호사시험 검토위원 여러분들에게 모두 감사 전합니다.

저의 고등학교 선배이자 대학교 선배, 기숙사 룸메이트이자 진가 스터디원으로서, 그 의젓함과 책임감으로 저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정용이형에게도 깊은 감사의 말씀과 동시에 훌륭한 성적으로 수료하게 되어 축하한다는 말씀 전합니다. 재혁이, 강익이, 호섭이, 은수, 배현이형, 근호형, 명이형, 재홍이형, 광수형, 창훈이형, 학범이, 민영누나, 민주, 경미, 채란이에게도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참으로 많은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비로소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듭니다. 마지막으로 지면이 좁아 그 성함을 미처 싣지 못하였지만 저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