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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한 맛 집 탐방객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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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한 맛 집 탐방객의 바람
  • 신희섭
  • 승인 2015.01.16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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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나는 맛 집 탐방을 좋아한다. 사실 탐방인지 사냥인지 모르겠는 경우도 있다. 주변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고 최근 사회분위기가 맛 집 소개에 너무나도 열을 올리고 있어 정보를 쉽게 얻기도 하기에 탐방이라는 경험을 공유하기 쉽다.

맛 집을 찾다 보면 “역시”를 외치는 좋은 곳도 있다. 반면에 실망스러운 곳도 많다. 사실 후자가 더 많은 듯 하다. 그래서 이 분야의 정보는 아는 사람 중에서 맛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추천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이 사람들과의 정보공유에 우선순위를 메긴다.

다녀본 집 중에서 매우 인상적인 곳들이 있다. 가족과 방문했던 서울 주교동에 있는 우래옥이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우래옥의 냉면은 그 면의 향과 육수의 균형이 너무나도 훌륭했다. 그 메밀의 잔향과 고기 육수의 맛이 3일 동안 없어지지 않았다. 참기에 고통스러운 2주일을 보내고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어 다시 가족과 우래옥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바로 우래옥에 중독되고 말았다. 고성에 있는 백촌막국수의 감동도 잊을 수 없다. 막국수의 성지로 정평이 난 이집의 막국수는 처음에 면에 양념을 해서 먹다가 동치미 육수를 부어서 먹는 식이다. 양념만 해서 먹은 막국수는 다른 집과 달리 좀 더 면향이 강하고 부드러운 정도였다. 그런데 동치미를 부었을 때 막국수의 신세계가 나타난다. 동치미로 인해 생긴 청량감은 표현이 어려울 정도였고 가슴이 뻥하고 뚫리는 느낌이었다. 이 집 막국수는 막국수를 냉면의 한참 아래 등급의 음식으로 여겼던 선입견을 깨뜨렸다. 여기도 바로 중독되었다. 행복하게도 전국에는 이런 집들이 제법 된다.

나는 맛 집 탐방을 좋아한다. 그런데 항상 내가 가는 음식점들에는 동행을 하는 누군가가 있다. 가족이 있거나 친구들이 있기도 하고 지인들이 있기도 하다.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도 있고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도 있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하는 경우도 있다. 70세가 넘으신 어르신들도 있고 아직 10살이 안된 아이들과 함께 할 때도 있다. 물론 외국인들과 함께 할 때도 있다. 맛 집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장소에서 시간을 나눌 수 있는 행복이 있다. 맛 집은 이러한 시간의 행복을 증폭시켜준다. 맛있는 음식이 있어서 좋고 이것을 나눌 수 있어서 좋고 그리고 그 시간을 공유하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 집 공유하기를 좋아한다. 새로운 맛 집을 찾으면 어떤 사람과 이 곳을 다시 방문하면 좋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한 번 더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들 마다 취향과 선호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과 어느 장소에서 시간을 보낼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광장시장의 육회집을 찾아가면 다음번에 막걸리를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고 연락을 하게 된다. 공덕시장의 전집 골목에서 같이 소주를 할 사람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약수시장에 있는 연탄불에 구워먹는 돼지갈비를 보면 아버지가 떠오르고 그래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리게도 된다. 가을 저녁에 아버지를 모시고 연탄가스냄새를 맡으면서 구워먹는 돼지갈비는 나름의 행복함이 있다. 그 앞집에 있는 꽃가게에서 소국 한 다발을 사서 댁에 가실 때 보내드리면 더 좋다. 어쩌다 학동역의 밀실같은 맥주집을 방문하여 환상적인 맥주를 즐기면서 맥주애호가분들과 시간을 같이 하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벨기에의 델릴리움 트레멘스(Delirium Tremens) 맥주를 마시면서 그 맥주를 많이 마시면 보인다는 분홍색 코끼리를 기다리는 것은 호사스러운 일이다.

맛집 탐방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맛 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공유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맛 집을 탐방하거나 혹은 사냥하듯이 찾는 것은 “맛” 집이 아니라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이다. 그 중에서 맛은 공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중에서 한 가지일 뿐이다. 그 자리와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이 기억하게 되는 것은 맛 뿐 아니라 그 집의 향기나 그 공간을 같이 한 이들의 이야기나 공감을 할 때의 뿌듯함과 같은 다양한 요인들일 것이다. 시각, 후각, 청각, 감정적 자극과 같은 정보들이 모여서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한 가지 추억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내게 맛 집은 공유의 또 다른 표현이다.

어떤 식도락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잔치국수가 기가 막힌 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부산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국수를 먹고 왔다는 식도락가의 이야기를 전설처럼 들었다. 음식에 얼마나 꽂혔으면 그럴까 싶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 아무리 그래도 비행기 타고 가서 3천 원짜리 국수를 먹고 오는 것은 과하다 싶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 그것을 누구랑 먹었을까하는 질문도 든다. 혼자 가는 것 보다 같이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와 같이 즐겼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또 6천원의 국수를 위해서 한 사람당 왕복 15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혼자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보다는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이 더 즐거운 일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인간이 수행하는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활동은 같이 무엇을 먹는 것이다. 그런데 혼자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는 것은 사회화보다 개인화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같이 하는 즐거움이 줄어드는 것이다.

사회화의 중심에는 같이 한다는 공유가 있다. 그런 점에서 공유의 중요성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다른 사람과 같이 한다는 것은 선호와 취향이 다른 이들이 상호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런 공유는 한국사회에서 다문화로 인한 차별문제와 계급화에 따른 상대적인 박탈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준다. 공유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국제정치의 공간에서도 나타난다.

1월 7일 프랑스에서 믿기 어려운 일이 발생했다.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앱도’의 사무실에 무장 테러범들이 나타나 무함마드에 대해 풍자한 것을 이유로 12명이 넘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종교를 조롱한다는 이유로 만화가와 편집자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다름에 대한 분노가 극대화한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이번 테러사건에 대해 분노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분노는 분노로 이어지는 법이다. 이슬람 테러에 대한 대항테러를 주창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프랑스의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을 이끄는 마리 르펜은 무슬림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을 주장하여 분노의 정치를 구사하고자 한다. 독일의 신생극우정당인 독일대안당도 이 사건을 빌미로 이슬람세력을 적대화하며 독일인들의 극우적 성향을 다시 부활시키고자 한다. 민간 차원에서 독일의 반이슬람 단체의 대표주자인 ‘페기다(PEGIDA)’를 중심으로 무슬림을 반대하는 집회가 대규모로 열리고 있다. 여기에 더해 몇 몇 극우적인 인사들은 무고한 이슬람인들에 대한 보복공격을 자행하고 나섰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1월 11일 파리에서는 360만 명을 넘는 시민들이 테러에 반대하는 행진을 열었다. 특히 행진에서 유럽의 지도자들이 참석하여 이 사건을 악용하여 이슬람에 대한 분노를 매개로 개인들의 극단적인 정서를 끌어 모으고자 하는 시도를 막고자 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 총리 그리고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를 비롯해서 세계 34개국의 정상급 인사들이 행진에 동참했다. 이스라엘의 네탄야후 총리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같이 참석했다는 점은 평화에 대한 호소에서는 모두 공유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테러리즘은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한다. 테러리즘은 인간의 사회화를 거부한다. 개인차원에서 공포라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심리를 자극하여 자신만을 돌보며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게 한다. 두려움으로 다른 이들의 문제에는 눈을 감아버리게 하는 것이 바로 테러리즘이 노리는 바이다. 그런 점에서 테러리즘이 목표로 하는 공포심과 개인화에 맞서는 것은 개인화를 거부하고 사회로 불러오는 것이다. 야만적인 테러리즘과 폭력의 공포를 여럿이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공유하는 것이 공포를 떨쳐내는 지름길이다. 개인화에 맞서는 사회적 공유와 공감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맛 집에서 누군가와 공감을 공유하는 것처럼 세계를 불안하게 만드는 테러리즘에 대한 강력한 거부와 평화에 대한 공감을 공유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가 멀리 떨어진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에 분노하고 애통해 하는 것은 우리가 공감하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우리” 국제시민들의 공감을 더 많이 나누었으면 하는 한 식객의 바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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