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삿포로에서 맥주를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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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의 독서산책-<삿포로에서 맥주를 마시다>
  • 법률저널
  • 승인 2003.12.2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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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근황을 전하는 책

전여옥/해냄/254쪽/10,000원

<삿포로에서 맥주를 마시다>라는 제목을 보면서 1990년 초반 일본에 잠시 머물던 시절 생각이 난다. 큰 마음을 먹고 일본 열도를 여행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동경에서 출발해서 아오모리에 막 도착할 즈음이었다. 한 일본인이 배냥 차림에 나를 보고 삿포로 맥주를 권한 적이 있다. 시간은 아주 밤이 늦은 시간이었고 열차 안에서 몇 사람만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무튼 전여옥씨의 글은 우선 재미가 있어서 좋다. 여행객들이 좀처럼 엿볼 수 없는 곳을 전여옥씨는 마치 전조등을 비추듯이 일본의 이모저모를 밝혀준다.


남아를 선호하는 한국인이라면 전여옥 씨의 글 가운데 ‘딸 낳을 때가지 GO!’라는 제목의 글에 관심을 가져보라.

“저기요. 얼마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2층에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가 계신데요. 며칠 전부터 보이질 않네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신고가 들어와서 경찰이 가보면 아들만 둔 부모일 가능성이 높단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해 준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도 할머니가 오래 사는 경우는 별 문제가 없다. 자기 몸 간수부터 먹고 사는 일을 독립적으로 해 왔던 할머니들은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도 꿋꿋하게 잘 산다. 그런데 문제는 할아버지들이다. 세 끼 끓여 먹는 일도 큰 일이거니와 여성과 달리 사적인 네트워크가 없어 그 말년은 말 그대로 외롭고 쓸쓸하다.”


“인간은 오래 산다. 인간 유전자 지도가 완전히 읽혀졌고, 인간 복제가 가능한 지금-이제 사람의 수명은 120-150년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사는 나라인 일본은 초고령 노인들의 문제가 심각하다.

나의 노후-국가도 사회도 손이 닿을 수 없는 그곳에 ‘딸’만은 손을 뻗쳐줄 것이라는 기대로 ‘딸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일본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부분에서도 전여옥씨의 번뜩이는 관찰력은 돋보이고도 남음이 있다.

“일본에서 이미 우정이란 말도, 친구라는 말도 실종되었다고 한 소설가가 글을 쓴 적이 있다. 그것은 미국식의 담대한 개인주의라기보다는 남들과 스치기 싫다, 닿고 싶지 않다. 혼자 있고 싶다는 ‘수동적 개인주의’. 한국에서는 ‘아이러브스쿨’이 뜰 수 있지만 일본에선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되도록이면, 어떻게 해서든 ‘접속’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시간에 느끈하게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일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그러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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