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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한 해를 추억하며 새로운 한 해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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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한 해를 추억하며 새로운 한 해를 기대하며
  • 신희섭
  • 승인 2015.01.0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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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는 2014년 12월 31일이다. 2014년을 보내는 날이다. 또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날이다. 보내는 점에선 아쉬움이 가득한 날이지만 새 것을 맞이하는 점에선 설렘으로 가득한 날이다.

먼저 보내는 입장에서 보면 ‘다사다난’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한 해였다. 특히 사고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게 되는 것은 세월호가 바다 한 가운데서 가라앉았고 침몰하는 장면을 두 눈으로 그것도 실시간으로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판교에서 환풍시설 위에 올라간 사람들이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고까지 겹쳐지면서 2014년은 안전불감증의 해로 만든 듯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을 태우고 얼마나 빨리빨리 하는지가 안전의 중요성보다 강조된 것은 올해 갑작스럽게 생긴 문제는 아니다. 성장시대의 잔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그림자가 한국사회를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성장과 효율성이라는 시대가치가 안전을 너무나 쉽게 무시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이제는 자신의 시대가 지났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건 사고는 세월호에 국한되지만 않았다. 세월호로 총리가 사임하겠다는 뜻을 비추었고 6월 달에는 문창극 총리후보자 지명과 자진 사퇴가 이어졌다. 현직 총리가 대안 후보자가 없어서 유임되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사회에 과연 이 정도로 인물이 없는지를 자문하게 만들었다. 인사 관련 문제는 연말로도 이어졌다. 베일속에 있던 정윤회라는 인물이 국정에 개입하였는지를 두고 10상시와 문고리 삼인방이 언론을 타면서 청와대에서 실세가 과연 누구인지가 초미의 관심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현직대통령의 동생까지 언급이 되면서 권력의 적나라한 치부가 드러났고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최저치로 떨어졌다.

여기에 더해 군내부의 성추행과 성폭행의 문제가 줄줄이 터져나왔다. 고위직과 간부직을 막론하고 여군에 대한 성추행사건들이 폭로되면서 군의 기강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가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전쟁이 없는 시대이자 전쟁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시대의 군대를 유지하는 것이 가져오는 문제들에 대한 대책이 사회전체에서 논의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된 것이다.

올해의 대미는 조현아 전부사장이 만들었다. 땅콩으로 인한 회항의 결정은 항공사의 기록을 갈아치운 사건으로 이 덕분에 청와대문건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 사건은 한국사회의 갑을 논쟁에 다시 불을 지피우며 진정한 갑의 횡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한해의 우울한 이야기는 이쯤하자. 지나간 것들을 비판하는 것 보다 이제는 이런 문제가 가진 원인들을 찾아서 고치고 재발을 막는 것이 에너지를 올바로 사용하는 방법일 것이다.

새해를 기대하게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자. 12월 27일 토요일에 방송된 무한도전을 보게 되었다. 본방송을 보지 못했는데 주변에서 워낙에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안보면 대화에서 배제될 것 같아 지난 방송을 구매해서 보았다. 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가수들이 나와서 1990년대를 추억하는 노래를 부르며 경쟁하는 컨셉의 방송이었다. 방청객들도 1990년대 당시의 옷차림으로 복고를 즐겼다. 1990년대가 살아난 듯 했다.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가수들도 있었다. 터보라는 그룹이 다시 두 사람으로 나와 노래를 부른 것은 199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즐거움을 넘어서 소름을 돋게도 했을 듯하다. 그룹 SES는 이제 결혼하여 육아를 하는 슈를 다시 무대에 복귀시켰다. 그녀는 과거 요정일 때와는 다른 ‘육아’ 요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결혼으로 참석하지 못한 멤버 유진의 자리를 소녀시대 서현을 영입해서 공연을 완성했다. 요정들의 결혼으로 이들이 요정이 아니었다는 점과 시간이 정말 많이 지났다는 점을 알면서도 공연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롱다리 가수로 유명했던 김현정이 나와서 특유의 고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회오리 춤을추자 참석한 관객과 가요제에 참여한 이들 모두가 따라 했고 무대열기는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보는 동안 시간은 멈춘 듯했다. 아니 시간이 거꾸로 돌아간 듯 했다. 그때 사람들과 그때 분위기는 그때의 기억을 너무나 생생하게 불러왔다. TV를 보는 내내 너무나도 편안하다는 느낌을 가진 것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때가 좋았는데...” 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이 프로를 즐겼을 것이다. 다음 주 방송이 더 기대가 되는 것은 이 프로가 끌어들인 90년대 향수와 그 깊은 매력 때문일 것이다. 예상컨대 이 프로는 하나의 문화현상을 만들 것이다. 몇 사람들은 다시 가요계와 공연계에 복귀할 것이고 이들을 찾아 과거 기억을 떠올리는 일들이 다른 매체들을 통해서 요란하게 진행될 것이다. 마치 몇 년 전의 세시봉처럼.

그러면 왜 사람들은 과거를 이렇게 향수하는 것일까? 왜 과거로 돌아가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일까? 이것은 익숙한 것에서의 편안함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감정적보수주의의 잔재로만 넘길 것은 아니다. 물론 반대편에는 의도적으로 동원된 기억이라는 점도 있다. 감정의 과잉을 폭발지점까지 잘 끌고 가서 펑하고 터뜨리지 않으면서 길게 호흡을 이끌고 갈 수 있었던 무한도전 PD의 천재적인 편집능력도 한 몫을 한 듯하다.

다른 한 면을 생각하면 일상생활의 팍팍함이 과거를 향수하게 만든다고도 볼 수 있다. 연일 사상최고라고 이야기하는 경기침체와 극단으로 내몰리는 생활의 고단함은 주변에서 크리스마스의 캐롤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느끼는 위로받고 싶음과 위로하고 싶음이 공존하면서 이성보다는 감정이 먼저 고개를 드는 것. 그래서 그저 옆자리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은 그래도 추억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찾게 한다. 반면에 좀 더 현실적으로 보면 구매력이 있고 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30대와 40대들에게 어필함으로서 추억을 구매할 수 있게 하는 자본주의의 강력한 상품화의 한 면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응답하라시리즈에서부터 나타났다. 30대 후반과 40대들 특히 IMF를 거치면서 그 이전세대들보다 혹독한 환경을 경험한 이들에게 고통스러웠던 20대를 다시 추억하게 하고 그 속에서 누렸던 작은 행복들을 불러오는 것은 자본주의가 가지는 자본화의 강렬한 욕구와 발빠른 대응을 보여주는 것이 될 수 있다.

어려운 이야기를 빼고 좀 편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너무나 재미있게 보았고 다음 편을 기대하게 하는 무한도전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과거의 추억과 다음 것에 대한 기대”라고 할 수 있다. 추억을 끌고 와서 공감대를 만들고 그 속에서 짧은 시간동안 마음을 나눌 수 있게 하는 것은 복잡한 세상에서 잊고 싶은 것은 빨리 털어내고 즐겁고자 하는 인간의 기대심리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최근 수많은 사람들이 맛 집에 열광하는 것과 셰프들의 새로운 요리에 환호하는 모습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네일아트에서 아니면 디저트카페에서 작은 사치를 즐기는 것도 똑같은 감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정치학원론으로 돌아가 보자.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수많은 현인들의 답이 있다. 여러 답들 중에서 정치는 ‘망각과 기대’를 반영하는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고통을 빨리 망각하고 새로운 것의 기대로 고통스러운 공간을 채우게 해주는 것. 그래서 이 공동체에서 아직은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 예전을 떠올리면서 “아 맞아 그땐 그랬지”를 이야기 하고 “그런데 그때 친구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라며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게 하는 것. 그런 것이 정치의 본질은 아닐까?

정치를 이렇게 정리하면 정치지도자에게 바라는 리더십도 단순해진다. 추억하고 기대하게 하는 것이다. 무한도전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 속에서나마 잠시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로 돌아가게 하는 것. 그래서 흥겨워 주변사람들과 그 시간을 같이 하고 싶게 하는 것이 망각의 자리를 채우는 것. 과거말고 미래에 대해서도 기대를 가지게 하는 것. 이런 것들이 우리가 우리의 리더들에게 바라는 바일 것이다. 더 단순하게 하면 우리가 고통을 잊고 더 기쁠 수 있는 일들이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어려웠던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마음 아팠던 자리를 채우고 같은 시대를 동행하며 우리 이웃들과 같이 잘 살아가고 있다는 희망과 기대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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