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 필수과목 전략적으로 마스터하기-한국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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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 필수과목 전략적으로 마스터하기-한국사(4)
  • 법률저널
  • 승인 2014.12.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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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지 않은, fun한 인물 한국사

절세미남이었던 조광조에 대한 재미난 일화가 전해진다. 조광조의 옆집에 결혼식을 치르기 전 신랑이 사망하는 바람에 졸지에 과부가 된 여자가 살았는데, 어느 날 조광조의 글 읽는 소리에 매료된 과부가 그만 담을 넘어와 조광조에게 음양의 이치(?)를 알려달라고 청했다.

조광조는 절개를 지켜야 할 여자를 나무라며 종아리를 쳐서 쫓아낸다. 여자는 자신의 집에 돌아가 수치감에 목을 맸다. 자초지종을 들은 조광조의 아버지는 아들의 행동을 탓했지만, 평소 자신의 아들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이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것도 같다. 그의 성품을 짐작할만한 일화이다.

조광조에 대해 짧은 글이나마 적으려고 보니, 조선 왕조에서 조광조(趙光祖, 1482~1519)만큼 짧고 굵게 인생을 살아간 사람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33살에 중종에게 발탁되어 화려하게 정계에 진출, 38살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왕의 최측근에서 권력의 정점을 찍으면서 유교적 이상 정치의 실현을 위해 다양한 개혁을 시도한 그였지만, 누군가가 ‘새로운 시도’는 딱 반발자국만 앞서가라 했던가. 그의 급진적이고 거칠 것 없는 개혁 드라이브는 결국 너무 많은 정적을 만들었고, 그를 발탁한 중종마저 돌아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묘사화로 인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고, 그는 하루아침에 반역죄인이 되었다.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연산군 대의 과오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유학을 다시 진작시키고자 하였고, 본격적인 정치 개혁에도 착수하였다. 새로운 피의 수혈이 필요한 때, 중종이 주목한 인물이 바로 조광조였다. 뼛속까지 사림이었던 그를 등용해 기존의 훈구 세력을 견제해보려 한 것이다.

그는 먼저 유교를 정치와 교화의 근본으로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덕과 예로 다스리는 유학의 이상 정치인 왕도를 현실에 구현하고자 하였고, 성리학적 윤리 질서와 통치 질서의 확립을 위해 주자의 가례와 소학 교육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가 추진한 현량과의 실시는 훈구 세력의 반대를 야기했다. 관리등용제도인 하나인 현량과를 통해 진출한 사람들이 대부분 조광조의 측근들이자 신진 사림들이었기 때문이다. 조광조에게는 세력 확대의 기반이었지만, 훈구세력에게는 입지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던 셈이다.

훈구파의 화를 부른 더 결정적 사건은 위훈삭제 사건이었다. 조광조가 중종반정 때의 공(功)이 부당하게 책록되었기 때문에 이름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훈신의 대부분이 훈구파였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위훈을 삭제당한 훈구파 공신 중 한명이었던 홍경주는 왕에게 ‘주초위왕(走肖爲王: 조씨가 왕이 된다)’이라고 갉아 먹힌 나뭇잎을 보여주었다.

조씨가, 곧 조광조가 왕이 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죽음에 이러한 술수가 통한 것을 보면, 정말 홍경주의 말대로 왕보다 조광조에게 백성의 마음이 기울었는지는 알 길 없으나 적어도 그가 왕을 위태롭게 할 정도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임금을 어버이처럼 사랑하고,

나라의 일을 내 집의 일처럼 걱정했도다.

밝고 밝은 햇빛이 세상을 굽어보니

거짓 없는 이 마음을 환히 비춰 주리라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죽기 전 남긴 시이다. 조선의 젊은 개혁가의 꿈이 한 편의 시와 함께 사그라졌다.

학부 때 갔던 답사지 중 담양 소쇄원이 생각난다. 소쇄원은 조광조의 제자 ‘소쇄 양산보’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스승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곳으로, 정유재란 때 건물이 불에 타기도 하였지만, 복원․중수되어 지금까지 예쁘게 잘 가꾸어져 있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소쇄원의 아늑하고, 고즈넉한 가을의 정취가 내내 그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시험에 합격하고 수험생 여러분도 한번 쯤 가보길 추천한다. 조광조의 기개를 닮은 죽림을 걸으며 조광조도 생각하고, 힘들었던 수험생활도 추억이 돼 있기를 바란다.

<관련 기출 문항>

다음 사건을 일어난 순서대로 나열한 것은? 2014 서울시 9급

㉠ 김종직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참수하였다.

㉡ 조광조가 능주로 귀양 가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 명종을 해치려 했다는 이유로 윤임 일파가 몰락하였다.

㉣ 연산군은 생모 윤씨의 폐비 사건에 관여한 사림을 몰아냈다.

① ㉠-㉡-㉢-㉣

② ㉠-㉣-㉡-㉢

③ ㉡-㉠-㉢-㉣

④ ㉡-㉢-㉣-㉠

⑤ ㉢-㉡-㉠-㉣

[정답] ②

[해설] ㉠ 연산군 때 발생한 무오사화의 결과로 김종직이 부관참시되고 김일손이 능지처참을 당하였다. ㉣ 연산군 때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이유로 갑자사화가 발생하였다. ㉡ 조광조의 급진 개혁에 위기를 느낀 훈구파가 위훈 삭제 사건을 계기로 조광조와 관련 사림들을 제거하였다(중종, 기묘사화) ㉢ 외척 세력 간에 싸움이 벌어진 결과 인종의 외척인 윤임(대윤)과 그 지지 세력이 몰락하였다(명종, 을사사화).

자료제공: KG패스원 공무원 전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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