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 필수과목 전략적으로 마스터하기-한국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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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 필수과목 전략적으로 마스터하기-한국사(3)
  • 법률저널
  • 승인 2014.12.0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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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지 않은, fun한 인물 한국사

올해 방영된 사극 드라마 <정도전>은 90년대 공전의 히트를 쳤던 <용의 눈물>과 견줄만한 인기를 끌며 종영했다. <용의 눈물>과 시대적 배경을 같이 하고 있기도 하고, 용의 눈물을 애청했던 시청자라면 비교해가며 더 재미있게 드라마를 시청했을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용의 눈물>이 이성계, 이방원 등 왕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사건과 인물이었다면, <정도전>은 신하인 정도전의 시각에서 역사를 풀어냈다.

<용의 눈물>의 오프닝이 이성계의 입장에서 중요한 ‘위화도 회군’이었다면, <정도전>은 공민왕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하는 정도전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식이다. 같은 옷, 다른 느낌이 아니라 같은 시간,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다.

올해(2014년) 국가직 문제에도 조선 시대의 사상을 물어보면서 정도전이 통치 이념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보기로 출제된 바 있다(설마 드라마의 흥행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과연 정도전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세상을 꿈꾼 것일까?

정도전은 고려 말, 역성혁명을 꿈꾸며 조선이라는 새 나라에 대한 꿈을 실현했다. 건국이념에서부터 통치 규범과 각종 정책들에 이르기까지 그는 조선의 근간을 완성했는데, 이후 조선 왕조 500년을 지탱한 수도 한양의 건설도 그의 작품이며 궁궐 이름과 작은 길 이름 하나에도 그의 손길이 미쳤다.

이성계를 왕으로 옹립하긴 했지만, 왕조 교체를 주도하는 혁명의 시작부터 새 나라의 모든 것이 갖추어지기까지 그는 실질적으로 조선을 세운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거칠 것 없었던 그는 재상 정치를 주장하면서 이방원과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그의 최후를 앞당겼다.

“임금의 직책은 한 사람의 재상을 논정하는 데 있다 하였으니, 바로 총재를 두고 한 말이다. 총재는 위로는 임금을 받들고 밑으로는 백관을 통솔하여 만민을 다스리는 것이니 직책이 매우 크다. 또 임금의 자질에는 어리석음과 현명함이 있고 강함과 유약함의 차이가 있으니, 옳은 일을 아뢰고 옳지 않은 일은 막아서, 임금으로 하여금 대중의 경지에 들게 해야 한다.”

정도전이 왕에게 지어 올린 법전, 「조선경국전」에 삼봉의 재상 정치에 대한 꿈이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재상(총재)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권력욕이 크지 않았던 이성계는 몰라도 이방원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태종이 차후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기 위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이방원은 칼을 들고 마지막까지 정도전에게 자신의 신하가 되어주길 청한다.

정도전이 주장하는 재상 정치를 제외한 모든 것 - 요동정벌, 숭유억불, 민생, 민본정치 등등 - 을 다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줄이 엉켰을 땐 풀지 않고 잘라 다시 묶는다’는 이방원다운 방식으로 정도전은 결국 제거되고 만다. 이성계는 이방원이 정도전을 찾아갔다는 소식에, 당장 칼을 갖고 오라며 삼봉을 구해야 한다고 울부짖지만 안타깝게도 삼봉을 구하진 못했다.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후 정도전은 조선에서 금기시되는 존재가 된다. 허균이 정도전의 시를 즐기다가 역적으로 몰린 것만 보아도, 이후 그가 조선 사회에서 어떤 존재로 여겨졌는지 짐작할 만하다. 태종은 정도전을 폄하하기 위해 심지어 자신이 죽인 정몽주를 다시금 충절의 상징으로 만든다. 반사이익(?)을 누리게 된 정몽주는 웃었을까, 슬퍼했을까?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가수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노랫말이 문득 생각난다. 이성계에게, 이방원에게 그리고 정도전과 정몽주에게, 시간은 다르게 기록되었을 것 같다.

<관련 기출 문항>

조선시대의 사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014 국가직 9급

① 정도전은 성리학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사상을 포용하였으며, 특히 「춘추」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② 이황은 16세기 조선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통치 체제의 정비와 수취제도의 개혁 등을 주장하였다.

③ 18세기에는 인간과 사물의 본성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호론과, 이를 같다고 주장하는 낙론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④ 유형원과 이익의 사상을 계승한 김정희는 토지제도 개혁론을 비롯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정답] ③

[해설] 18세기에 노론 내부에서 호락 논쟁이 벌어졌다. ① 정도전 등 관학파는 부국강병을 위해 다양한 사상을 포용하였으나 그들이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중시한 것은 「춘추」가 아니라 「주례」이다.

자료제공: KG패스원 공무원 전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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