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굶주린 변호사와 정글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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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굶주린 변호사와 정글의 법칙
  • 안혜성 기자
  • 승인 2014.12.0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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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성 기자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변호사 수를 두고 말들이 많다. 사법시험 1천 명 시대를 지나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서 연간 1천 5백 명 이상의 변호사가 매년 배출되고 있다. 변호사 업계에서는 송무 업무에 치중된 변호사 시장의 파이는 한정돼 있는데 입은 자꾸만 늘어나니 굶어죽을 판이라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굶주린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위험하다.” 지난 3일 개최된 ‘변호사 수 이대로 좋은가’ 심포지엄에서 나온 말이다. 변호사 업계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과당경쟁으로 이어지며 변호사들의 윤리 의식을 약화시키고 그 피해가 의뢰인, 즉 국민들에게 이어진다는 의미다. 실제로 의뢰인에게 불필요한 분쟁을 조장하거나 광고, 법조브로커 등을 통한 비용 증가분을 의뢰인에게 전가하는 등 사례가 심심찮게 들려오곤 한다.

변호사 수 증가로 인한 문제들의 원흉으로 로스쿨 제도를 지목하는 시선도 있다. 고작 3년의 법학교육으로 실력 있는 법조인을 양성하는 것이 어렵다는 전제하에 실력도 없는 변호사를 쏟아내는 것은 오히려 국민들에게 큰 피해를 안겨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소송과 변호사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을 생각하면 일견 타당성 있어 보이는 지적이기도 하다. 일반 서민의 입장에서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송사를 이왕이면 실력 있는 변호사에게 맡기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한 마디로 변호사 배출 인원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변호사 수 증가를 곧 법조서비스의 질 저하와 연계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말 그런 것일까?

일련의 논의를 대하면서 최근에 읽었던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법조의 질의 실증적 연구’라는 오오타 쇼우죠(太田勝造) 동경대 교수의 기고에 관한 것이었다. 연구는 103건의 민사소송을 통해 드러난 변호사의 업무수행 상황을 숙달된 변호사가 평가하고 분석하는 방식으로 로스쿨 이전의 법률가와 로스쿨을 경험한 법률가를 비교하고 또 변호사 수가 급증하기 이전에 변호사가 된 자와 그 후에 변호사가 된 자를 비교했다.

일반적으로 변호사가 연륜이 있고 실무경험이 많을수록 소송수행 능력도 뛰어나다고 여겨진다. 때문에 로스쿨에서도 실무 교육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들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오오타 교수의 연구는 일반적인 인식과 정반대되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변호사의 실무경험이 짧을수록, 또 젊은 변호사일수록 민사변호의 질이 높다는 결과가 도출된 것.

연구팀은 실무 경험이 짧을수록 품이 많이 드는 사건이 적고 한 건 한 건에 시간과 노력과 정열을 쏟아 붓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과 사법시험을 공부한 성과가 신선하게 남았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끌어낸 것으로 분석했다. 반대로 실무경험이 많은 변호사의 경우 복잡한 사건이 많아 사건 하나에 들일 수 있는 시간과 노력에 한계가 있고 실무를 계속하는 동안 법적 지식이 낡고 새로운 판례와 법령을 충분히 따라갈 수 없게 되며, 실무 경험이 길어짐에 따라 필요한 절차와 수고를 생략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고 평가자에게 이같은 점을 간파당한 것으로 봤다.

이 연구는 우리나라 법조계에도 시사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변호사 수의 증가가 치열한 경쟁을 불러오고 그로인해 일부 부정한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더 나은 서비스와 더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에서 이기는 것도 가능한 선택이다. 병원이 늘어나면 망하는 병원도 생기고 수입을 늘리기 위해 필요 없는 검사를 권하는 의사가 늘어나는 등 환자에게 불리한 측면도 존재한다. 하지만 양심적이고 친절한 진료로 생존하는 병원도 있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경쟁자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발상은 어떻게 보아도 밥그릇 지키기로 보이기 쉽다. 부정한 사례들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수요자가 서비스를 확인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변호사 2만 명 시대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정한 생존의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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