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 필수과목 전략적으로 마스터하기-한국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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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 필수과목 전략적으로 마스터하기-한국사(1)
  • 법률저널
  • 승인 2014.11.2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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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지 않은, fun한 인물 한국사

 “양제의 요동 전쟁은 출동 병력에서 전례가 없을 만큼 컸다. 고구려가 모퉁이에 있는 작은 나라임에도 이를 방어하고 스스로를 지켰을 뿐 아니라 그 군사도 섬멸해버릴 수 있었던 것은 문덕 한 사람의 힘이다.”

「삼국사기」 열전에서 김부식이 을지문덕을 평한 글의 일부이다. 신라 중심 사관으로 역사서를 저술한 김부식의 평가치고 대단히 후하다. 「삼국사기」 열전에도 김유신 다음 두 번째로 을지문덕이 나온다.

나름 파격적인 지면 구성 아닐까. 이뿐 아니라 민족 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도 시대적 울분 속에서 고대사 속 인물 중, 을지문덕을 조명한 바 있다. 그가 을지문덕에게 투영하고자 한 정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물론, 공무원 한국사 시험에서 ‘전쟁 영웅’에 대한 단독 문제가 나오긴 쉽지 않겠지만(심지어 이순신 장군조차도 그렇다), 7세기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과 수, 당과의 국제 정세는 충분히 출제가 가능한 시기이니 살펴볼 필요가 있다.

5세기 장수왕의 전성기를 끝으로 6세기 고구려는 귀족들의 연립정치로 국가안팎이 혼란했는데, 7세기 초에는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와 큰 전쟁도 치르게 된다.

그리고 고구려는 이 전쟁에서 위대한 영웅을 탄생시킨다. 을지문덕이다. 589년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와 고구려는 처음에는 그럭저럭 관계를 유지했으나 요동과 요서 지방을 사이에 두고 곧 갈등을 일으켰다.

영양왕 9년, 고구려가 ‘먼저’ 요서 지방을 공격했다(우리가 늘 방어만 했던 것은 아니다!). 수 문제는 즉시 군사를 동원해 고구려로 쳐들어왔다. 하지만 전쟁은 고구려의 승리로 끝이 났고, 살아 돌아간 수나라의 군사는 열댓 명이라고 전한다.

이렇게 돌아간 수나라가 영양왕 23년(612), 113만 명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다시 침략해왔다. 113만은 병사들만 헤아린 숫자이므로 보급 부대까지 합치면 엄청난 인원이 동원된 것이다. 이 숫자가 사실이든, 기록상의 숫자이든 이렇게 대군을 이끌고 왔다는 것은 당시 수나라가 고구려를 상당히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 아닐까 싶다.

어쨌든 고구려는 수나라를 물리치기 위해 고구려가 전통적으로 적을 방어하던 ‘청야(淸野) 작전’을 폈다. 청야 작전이란, 들판이나 집안의 곡식들을 적이 활용하여 전쟁에 필요한 힘을 기르지 못하도록 모두 불태워 버린 후, 성에 들어가 버티는 작전이다.

시간이 흘러 식량 보급에 문제가 생긴 수나라 군대가 주린 기색을 보이자, 을지문덕은 그들과 싸운 후 패하여 달아다는 척 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여 지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 수나라 군대가 피곤함을 이기지 못할 즈음, 을지문덕은 우중문에게 결정적인 한 방인 5언시를 보낸다.

 “귀신같은 계책은 천문을 꿰뚫었고, 기묘한 전략은 지리를 통달했구나. 전쟁에서 이긴 공은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거든 그치는 게 어떠한가.”

겉으로는 우중문을 칭찬하는 말이지만 속뜻은 적진 깊숙이 들어와 있는 수나라 군대의 위험한 상태를 야유하는 시였다. 이를 알아차린 수나라는 곧 퇴각을 결정하지만, 을지문덕은 퇴각하는 적을 공격하여 지금의 청천강 즉 살수에서 대파한다. 그 유명한 살수대첩이다.

수나라는 이후에도 두 차례나 더 쳐들어왔지만 모두 실패하고 돌아간다. 그리고 고구려 원정으로 인해 국력을 지나치게 소모한 나머지 결국 멸망하고 만다. 하지만 수, 당과의 연이은 전쟁 과정에서 민족의 방파제 역할을 한 고구려 역시 국력을 많이 소진하였다.

관련 기출 문제를 확인해보자.

삼국의 쟁패와 신라의 삼국 통일 과정에 대한 설명 중 옳지 않은 것은? 2013 서울시 7급

① 1.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강국을 건설한 나라는 백제로서, 한성에 도읍하였던 500여 년간을 백제의 전성기로 볼 수 있다.

2.고구려의 남하정책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는 백제로서, 5세기 말 수도를 웅진으로 옮긴 것은 국력이 역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3.신라가 최대 강국으로 등장한 계기는 한강을 차지함으로써 마련되었다.

4.고구려는 수·당과의 거듭된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국력을 키울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신라를 압박하였다.
⑤ 5.백제는 의자왕이 한때 신라의 대야성을 비롯한 40여 성을 빼앗는 업적을 세우기도 하였으나,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정[답] ④
[해[해설] 고구려가 수나라에 이어 당과의 거듭된 전쟁에서도 승리한 것은 맞지만, 이 과정에서 고구려 역시 국력을 많이 소진하였다.

자료제공: KG패스원 공무원 전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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