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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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15)
  • 신종범
  • 승인 2014.11.2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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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소송

 

 

 

 

 

 


신종범
법무법인 더 펌(The Firm)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보도연맹에 가입되어 있던 갑은 경찰로부터 소집통지를 받고 경찰서에 출두하였다가 영문도 모른채 유치장에 구금되었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밤에 몇몇 사람들과 함께 불려나간 갑은 트럭에 태워져 인근 산골짜기로 이동 후 군인들이 난사한 총탄에 맞고 사망하였다. (국민보도연맹 사건)

#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을은 국군이 마을로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환영하러 나갔다가 친구인 병과 함께 군인들에 이끌려 인근 논으로 끌려간 후 총을 맞고 사망하였다. 군인들은 청년인 을과 병이 피난을 가지 않은 것을 보고 인민군에게 부역하였다고 생각하고 총을 쏜 것이었다. (6·25 전쟁 민간인 희생사건)

# 1950년 6월 말 당시 ○○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정은 갑자기 들이닥친 헌병대에 이끌려 인근 골짜기로 끌려갔다. 정은 눈이 가린채 나무에 묶인 후 헌병들의 총에 맞고 사망하였다.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위 사건들은 6·25 전쟁 당시 군인들에 의해 민간인들이 희생된 사건들이다. 첫 번째 사건은 ‘국민보도연맹사건’이다. ‘보도연맹’이란 1949년 좌익 운동을 한 사람들을 교화하고 전향시킬 목적으로 정부가 강제적으로 조직한 단체인데 6·25 전쟁이 일어나자 정부와 경찰 및 군은 후퇴를 하면서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무차별인 검속(檢束)과 즉결처분을 단행하였다. 희생자는 최소 30만명에서 100만명까지 추정하고 있다. 두 번째 사건은 ‘민간인 희생사건’으로 전쟁 중 군인이 적법한 사실 확인과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인민군에 부역하였다는 의심만으로 민간인들을 희생시킨 사건이다. 세 번째 사건은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으로 전쟁이 일어나자 형무소에 수감 중인 재소자들을 군인들이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사살한 사건이다.

위 사건에서 희생자들은 대한민국 군인에 의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희생되었지만 그 가족들은 빨갱이 집안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 두려워 시신을 찾을 생각도 못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진실의 규명과 정당한 배상 요구를 할 수 없었다. 서슬퍼런 군사독재정권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억울한 희생이 있은지 무려 반세기가 지난 2005년에 와서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제정되고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상조사를 통하여 비로서 진실이 조금씩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소위 위 ‘과거사법’은 희생자에 대한 배상에 관하여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희생자의 유족들은 또 다시 개별적으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여야만 했다.

필자가 국방부에서 소송을 총괄하는 업무를 하는 동안 희생자 유족분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위 ‘과거사 소송’이 봇물 터진 듯 몰려 왔다. 하루에도 원고가 적게는 수 십명에서 많게는 수 백명에 이르는 소장 부본이 몇 건씩 접수되었다. 이 ‘과거사 소송’은 국가배상소송에서 문제될 수 있는 중요한 쟁점들이 있었고 오늘은 그 쟁점들을 이야기 해보자 한다. 특히, 소멸시효와 지연손해금의 쟁점은 수험준비를 위해서도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사실인정과 관련한 문제가 있다. ‘과거사 소송’의 원고들은 대부분 희생자들의 유족들로 ‘과거사위원회’에서 진실규명결정을 받고 그 결정문을 증거로 제출하여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묻고 있다. 초기에 법원은 ‘과거사위원회’에서 진실규명을 받은 사람들은 과거사위원회의 자료만으로 사실을 인정하여 국가의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소송 과정에서 “과거사위원회가 개별 피해자들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판단하지는 못한 만큼 최소한 재판과정에서 사실관계는 따져 봐야 한다”는 국가측 주장이 있자 대법원은 전체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과거사위원회’가 진실규명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원에서 충분한 사실관계 규명없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면서 신빙성 등에 대한 심사 없이 대상자 모두를 국가에 의한 희생자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위 판결에서 과거사의 결정은 증명력이 매우 높다고 봐야 하며 이를 뒤집을 수 있는 증명은 국가의 책임이라는 소수의견이 있었다. (대법원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둘째, 소멸시효와 관련한 문제이다. 위 ‘과거사사건’들은 1950년 6·25 전쟁 중에 발생한 사건들로 사건이 발생한 시점을 기산점으로 보면 소멸시효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 국가는 ‘과거사소송’에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소멸시효 완성 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하였고, 그로부터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내에 채권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였다면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이 또 다시 문제되었다. 필자가 소송을 수행했던 어떤 1심 재판부는 “상당한 기간”을 “법적 안정성을 이념으로 하는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 민법상 시효중단이나 정지 등의 관련 규정과의 균형있는 해석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상당한 기간은 6개월로 봄이 타당하다”고 하면서 진실규명 결정이 있은 후 6개월이 지나 청구한 사건들을 무더기로 기각하였다. 이러한 1심에 대하여 일부 항소심은 위 “상당한 기간”과 관련하여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사라진 이후 유족 등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낼 수 있는 신의칙상 상당한 기간은 불법행위의 단기소멸시효 기간인 3년보다 짧아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진실규명 결정이 있은 후 3년내에 청구한 사건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럼 대법원의 판단은 어떨까? 위 대법원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그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민법 제766조 제1항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셋째, 지연손해금 관련한 문제이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는 이행을 구하는 별도의 최고가 없더라도 불법행위 성립과 동시에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위 과거사 사건들은 1950년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하고 국가는 50년이 넘는 동안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불법행위시와 변론종결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되어 손해배상액을 산정함에 있어 반드시 참작해야할 통화가치 등에 상당한 변동이 있다면 지연손해금은 사실심 변론종결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6·25 전쟁 당시의 민간인 희생사건 외에도 ‘혁명재판소 사건’,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긴급조치위반 사건’ 등 그동안 감춰왔던 우리의 어두운 역사들이 진실을 찾아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희생자의 유족들은 억울하게 희생되신 분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소송을 통해 묻고 있다. 구지 소송을 통하지 않고 입법을 통해서 해결할 수는 없었는지 아쉬움도 들지만 소송과정에서 희생자들의 억울함이 풀리고 희생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과거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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