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이정주 시인의 “물리치료”, 미생과 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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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이정주 시인의 “물리치료”, 미생과 완생
  • 오시영
  • 승인 2014.11.21 11:2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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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이정주 시인의 신작 시집 “아무래도 나는 육식성이다”를 받아든 날, 필자는 밤새워 그의 신작 시집 전부를 읽고 말았다. 새벽녘이 되도록, 이정주 시인의 시에 파묻혀, 그의 인간에, 그의 생각에, 그의 정신에, 그의 눈빛에, 그의 영혼에 파묻혀 그의 글을, 그의 말을, 그의 몸짓을 읽고 또 읽고 생각에 잠겼다. 같은 세대를 살아온 동년배의 시인, 같은 삶의 연륜에 찌들고 머물러 있는 시간과 공간이 공감되어서일까, 그가 느끼고 토로했을 문자의 기역자 하나, 디귿자 하나에 내 생각이 따로 가고 있었다. 한 권의 시집에 참으로 주옥 같은 시를 이리 많이 발표할 수 있다니, 그의 시적 역량이 부러울 뿐이다.
 
그의 시 중 “물리치료”를 본다. “여자는 내 어깨 아래 핫백을 밀어 넣는다/ 나는 데워진다/ 따뜻하고 어지럽다/ 여자는 내 어깨에 멘소레담을 바르고 근육들을 만진다/ 시원하고 아프다/ 여자는 내 어깨에 전극을 붙이고 스위치를 올린다/ 찌릿찌릿 간지럽다/ 여자는 물리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미진하다/ 이 통증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내 팔은 다른 것을 찾고 있다/ 지난 여름의 돌을 더듬고 있다/ 돌에 걸려 넘어져 얼굴이 처박혔던/ 백사장을 더듬고 있다/ 얼굴 쳐들고 하늘로 뿜었던 욕설을 그리워하고 있다/ 옆에서 박수치며 웃던 여자를 그리워하고 있다// 나는 여자에게 인사한다/ 여자는 나를 보지 않고 고개만 끄덕인다/ 여자는 이미 다른 사람을 데우고 있다// 목이 마르다/ 하늘에 맑은 물 한 잔과/붉은 알약 하나가 떠 있다” (‘물리치료’ 전문, 천년의 시작 간).

세상에는 그 나이가 되어야만 아는 것들이 있다. 그 나이가 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세계, 가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가보았던 사람들은, 가보지 않은 사람들의 말을 하찮게 여긴다. 가보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공허하다고. 하지만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말한다, 가보니 별 것 있더냐고, 가본 사람이 어찌 그 따위로밖에 못 하느냐고. 이정주 시인은 그 나이쯤이면 겪게 되는 어깨통증으로 물리치료를 받았나 보다. 뜨거운 핫백을 통증 부위에 밀어 넣고, 몸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그 순간, 어쩔 수 없는 삶의 외로움에 빠져들고 있다. 몸은 찌릿찌릿하고, 간지럽고, 물리적으로 최선을 다 하는 물리치료사 앞에서 점점 더 고갈되고 초라해지는 초로의 시인은 영혼의 갈증에 내몰리고 있다. 추억의 백사장을 뜀박질하며, 옆에서 박수 치고 웃어주던 사랑하는 여인을 떠올린다. 몸이 존재하지만 영혼이 존재하지 않은 물리치료사와 영혼은 존재하나 몸이 존재하지 않은 옛사랑 여인 사이의 간격과 괴리는 너무나 넓고 깊다. 자기의 환자에 대한 최선을 다한 물리치료사는 물리치료만으로도 감사해 하는 환자의 인사에도 건성일 뿐, 또 다시 주어진 다른 환자에 대한 치료를 위해 진짜 물리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감사해 하는 환자가 물리치료사 그녀에게는 처리해야 할 한 건의 업무일 뿐이다. 물리적인 치료에만도 감사하는 환자와 물리적인 치료조차 지겨워하는 물리치료사의 간극 또한 너무 멀고 넓다. 악한 배부른 현실과 선한 배고픈 추억이 교차한다.

까닭에 물리적으로만 친절한 물리치료사와 정신적으로 그리운 옛사랑 사이에 끼인 초로의 남자는 혼자서 괜히 당황스럽다. 문득 두 간극 사이로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와 캐디에 대한 성추행 협의로 고소된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골프장 여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신승남 전 검찰총장 겸 골프장 회장이 오버랩되어 온다. 아무런 스팩이 없는 고졸 출신의 인턴신입사원 장그래는 아직 젊다. 그에게는 미생이지만 미래라는 시간이 주어져 있다. 하지만 현재 그는 인턴사원에 불과하고, 어떻게 높은 사람에게 잘 보여 하루하루를 헤쳐 나가야 하느냐는 목숨을 건 전쟁 중이다. 하루하루가 미생일 수밖에 없는 현대판 대한민국 젊은이의 모델이다. 다가 올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제대로 계획도 세우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미생으로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은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힘들고, 고통스럽다. 300만 명에 이른다는 대한민국 실업자들의 대부분이 장그래 같은 젊은이이니, 하루하루를 미생으로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의 비애를 그 젊은이가 아닌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나 신승남 전 검찰총장처럼 매일매일을 완생으로 살아온 이들이 어찌 알겠는가?

완생의 삶을 살아온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나 신승남 전 검찰총장은 장그래의 미생의 삶을 알지 못한다. 미생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 이가 어찌 미생의 삶을 알겠으며,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단지 70을 넘어선 노인네가 되어 가면서 자신의 젊은 시절 영화로웠던 시절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고, 말라 빠져가는 뼈마디 사이로 그 시절의 영화를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은 노욕이 꿈틀거릴 뿐이다. 완생의 삶을 살았던 인생일망정 세월 앞에 장사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미생의 삶을 살고 있는 장그래나, 성추행 피해를 입은 골프장의 캐디나 여직원에게는 어떤 의미에서 완생의 삶을 살아온 노추의 노인네들을 비웃어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래서 인생은 공평한 것인가? 완생의 삶을 살면서, 세상 지위와 명예, 부귀를 그리도 누렸으면, 노년을 맞는 인격도 함께 완생의 길로 들어서도록 갈고 다듬었으면 좋았을 것을, 인격과 품위는 반대로 미생의 길을 걷고 있는 노인네들의 추태를 어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정주 시인은 말한다. 물리적으로 최선을 다한 물리치료사는 결국 몸에서조차 멀어져 가고,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지만 박수 치며 웃어 주던 그 여름의 백사장이, 그 여인이 정신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목이 마르고, 현실은 붉은 알약을 먹어야 하는 통증에 사로잡힌 한 남자로 존재할 뿐이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생각게 한다. 이정주 시인의 시 “물리치료”가 어찌 물리치료에 국한될 문제일 뿐이겠는가? 이정주 시인이 어찌 단순히 물리치료에 관한 단상만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겠는가?

우리네 삶 전체가 물리치료 중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물리치료를 받아야 할 중증 통증 단계이다. 곳곳에 미생 장그래가 넘쳐나고 있고, 딴 세상에서는 완생 회장이 넘쳐 나고 있다. 미생은 완생을 모르고, 완생은 미생을 모른다. 완생은 미생을 단지 자신의 말 한 마디에 목이 잘리고, 성추행해도 말 한 마디 못하는 약한 존재라고 착각하고 있다. 예전에 그랬듯이 완생은 자신이 영원히 완생일 걸로 생각한다. 그러기에 돈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권력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지위로 폭력을 행사하고, 말로 폭력을 행사하고, 부실하고 말라비틀어진 몸으로조차 폭력을 행사하려 한다. 미생이 먹어주지도 않는 몸으로 말이다. 미생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하겠는가?

곳곳에 널브러진 미생들은 계속 꿈틀거려야 한다. 완생이라고 껍죽대던 이들이, 한 장의 고소장 앞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가도록 해야 한다. 어둠의 완생이 밝음의 미생들 앞에서 진짜 미생이 되어가고 있다. 미생의 대한민국에서, 4대강사업부실에 이어 해외자원개발사업의 문제점과 비리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어찌 수십조 원의 국민혈세를 묻지마 투자를 한 후 저리 쉽게 땡처리를 한 뒤 그 빚을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리고서도 나 몰라라, 배째라 할 수 있는지, 그런 나쁜 짓을, 거의 업무상배임행위나 다름없어 보이는, 범죄 같은 업무처리를 할 수 있는지 그 전말을 소상히 밝히고, 담당자들을 엄히 문책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떡고물들을 얻어 쳐먹었기에, 그렇게 방만하게 부실한 투자개발업무를 할 수 있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전체를 합쳐봐야 1조 원에 불과한 초중고등학생들의 급식비가 없다며 재정지원을 끊겠다는 중앙정부와 경남도를 비롯한 일부 지방자치단체 장들의 행위를 생각할 때 수십조 원에 이르는 해외자원개발낭비를 생각할 때, 그리고 일 년에 그 개발낭비를 위해 차입한 부채의 이자만으로도 1조 5천억 원씩을 매년 지원해야 한다는 사실 앞에, 미생들은 분노해야 한다.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미생 장그래를, 캐디를, 젊은 청년실업자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지 완생들은 고민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지만, 정권을 쥐고 있는 박근혜 정부는 계속 여야 간의 싸움박질만 붙이거나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며, 사실과 진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지금 당장 이명박 정권 시절의 모든 비리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대대적 국가의 사법권을 총동원해야 한다. 무혐의 처리한 내곡동 사저 문제까지 다시 재검토해야 한다. 시작과 끝을 마무리해야 한다. 오죽하면 여권 내부에서조차 이명박 정권에 대해 “도둑놈정권”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겠는가? 미생 장그래가 프로기사 시합에서 떨어져 프로기사의 길을 걷지 못하고, 고졸 자격으로 회사에 입사했지만, 미생 장그래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 한국바둑프로기사가 채 300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수백만의 아마추어 기사들은 거의 대부분 프로기사에 도전했던 장그래와 바둑을 두면 질 것이다. 미생 장그래의 바둑 수준은 그 정도로 뛰어나다. 아니 대한민국의 미생 모두가 각자 각자 살펴보면 그렇게 뛰어나다.

이것이 발전도상 시기를 살며 손쉽게 완생이 될 수 있었던 전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 완생이라고 현재의 미생들을 우습게보면 결코 안 되는 이유이다. 미생들이 쓰기 시작하는 고소장은 성추행사건에서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이제 곳곳에서 별의 별 고소장을 쓸 것이다. 사대강사업비리에서, 해외자원개발비리에서, 방위산업비리에서, 기존 완생체제에 대한 반란을 계속할 것이다. 그것을 박근혜 정권이 제대로 밝히면 살아남은 완생이 될 것이지만, 그것을 계속 은폐하고 감추고, 헛돈으로 낭비하는 수십조 원은 아까운 줄 모른 채 1조 원 남짓에 불과한 수백만 학생들의 학교급식예산을 지원하지 않겠다며 깎는 잘못된 깎쟁이 완생노릇을 계속 하거나, 생활보호대상자나 어르신들의 노령연금 등을 깎는 방법으로 예산편성의 효율성(?)을 도모하겠다는 어리석은 행태를 계속 보인다면, 진짜 완생이 될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진짜 완생은, 모든 완생이 마지막으로 가는 길, 죽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정주 시인은 아련하다. 물리치료사의 철저한 물리적 치료를 통해 잊었던 영적 자가치료를 스스로 해내는 이정주 시인은 사하라모래사막언덕에 우뚝 홀로 서 있다. 물리치료를 받으며 따뜻함과 어지러움을 동시에 느끼며 미생과 완생의 경계에 홀로 서 있다. 그 옆에 다른 미생들도 함께 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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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14-11-25 21:50:04
잘 읽었습니다

나그네 2014-11-25 21:50:04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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